<알랭 뒤카스: 위대한 여정>을 보고
<알랭 뒤카스: 위대한 여정>은 90년대 오트 퀴진의 락스타급 인물 알랭 뒤카스를 부자 꼰대로 표현하는 것에 그친 형편없는 영화다. 프리 프로덕션 단계를 전혀 밟지 않은 듯한 게으른 전개 방식, 핸드헬드와 클로즈업의 남용 그리고 단순한 편집이 한심하기 짝이 없다. 알랭 뒤카스는 21개의 미슐랭 스타를 보유하고 있는 셰프이자 전 세계적으로 25개의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는 비즈니스맨이다. 뒤카스가 아주 현대적인 셰프는 아니기 때문에 요즘의 힙한 넷플릭스 쇼 같은 데에는 자주 등장하지는 않지만,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노마의 르네 레드제피, 모모푸쿠의 데이비드 챙 등 많은 젊은 셰프 내지 레스토랑투어들에게는 아이돌급 선배인 것이다. 이런 그의 업적을 다 알고 있는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본다면 몰라도, 한국의 불특정 다수의 관객에게는 본인의 위치나 수혜에 관한 한치의 반성도 없이 승승장구한 어나더 백인 남자일 뿐이다. 아무런 소개도 없이 알랭 뒤카스가 세계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니는 장면이 불쑥 나오기 때문이다. 중간에 나오는 이탈리아 셰프 마시모 보투라나 미국 셰프 댄 바버 같은 젊은 요리사들이 알랭 뒤카스를 소개하는 장면이 먼저 나오던가 했어야 하는데, 관객은 처음부터 아무런 근거 없이 알랭 뒤카스가 대단한 사람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 영화는 완성도뿐만 아니라 생각하는 것에 있어서도 게으르다. 초반에 알랭 뒤카스가 베르사유 궁에 생길 레스토랑 개업 준비를 하면서 메뉴 테이스팅을 하는데, 회의에 참여한 사람 중 한 명이 요리를 ‘정통 교토식’이라며 극찬한다. 영화가 시작하고 5분이 지나지 않은 이 시점에서 예상은 했지만, 장면이 장면으로 이어질수록 그 예상을 뛰어넘는 '반성 없는 백인' 마인드가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일본의 음식문화, 장인문화를 극찬하면서도 그 이국성에만 현혹된 듯한 카메라, 일차원적인 코멘트들 그리고 프랑스 셰프에게 열광하는 일본 여자들을 담은 장면에는 일말의 문제의식이나 반성이 없다. 필리핀에서 학생들이 프랑스 국기를 흔들며 뒤카스를 맞이하고, 몽골의 대통령이 나와 뒤카스에게 파리나 런던이 아닌 이곳에서 만나서 신기하다며 이야기하는 장면에서는 정말 토기가 치밀었다. 영화가 끝날 즈음에는 알랭 뒤카스는 프랑스 대혁명 직전의 돈 없는 사람들을 굶겨 죽인 귀족계급, 그리고 돈 없는 국가들을 착취한 프랑스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인물이 돼버린다. 정말 2019년에 나온 (2017년 제작) 영화가 맞나 싶을 정도이다. 살아있는 레전드를 이렇게 평면적으로밖에 다루지 못한 이 영화를 도대체 왜 수입해서 배급했는지 정말 모르겠다. 더 솔직히 이야기하면 알랭 뒤카스가 왜 이 영화 제작진을 고소하지 않았는지 궁금할 정도이다.
위 영화를 보기 위해 만원 이상의 돈과 약 2시간의 시간을 낭비하는 대신에 집에서 스트리밍 서비스로 볼 수 있는 퀄리티 높은 음식 관련 시리즈 및 영화를 소개해보겠다.
1. 넷플릭스- 푸드 다큐멘터리 시리즈
1) <셰프의 테이블> 시리즈
알랭 뒤카스 영화에서는 코빼기도 볼 수 없었던 셰프들의 장인 정신, 혁명 의지를 볼 수 있다. 시즌 6까지 나왔고 프랑스 스페셜 시즌도 있다. 알랭 뒤카스 영화에도 등장한 마시모 보투라와 댄 바버는 시즌1에 등장한다. 시즌 4는 디저트만 다뤘는데 뉴욕 밀크바의 크리스티나 토지 편이 참 재밌다. 우리나라에서도 한때 유행한 크랙 파이의 창시자라고 한다. 이탈리아 시실리 섬의 디저트 카페를 운영하는 장인 코라도 아센자 편도 정말 흥미롭다.
2) <어글리 들리셔스>
알랭 뒤카스 영화에서는 코빼기도 볼 수 없었던 다양한 문제의식과 깊은 반성이 만들어낸 명작 시리즈이다. 한국계 미국인 데이비드 챙이 절친 푸드 라이터 피터 미한과 함께 진행하는 시리즈이다. '피자' '바비큐' '볶음밥' 등 하나의 음식 형식에 관해 한 시간 동안 의논한다. 푸드 미디어의 정수이자 모범이라고 생각한다. 뭔가 재미없게 설명한 듯한데 데이비드 챙 성격이 웃기기 때문에 이 리스트 중에 가장 재밌다. 아직 시즌이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아껴봐야 한다. 여담으로 '바비큐' 편에 나온 일본의 야키토리 집에서 데이비드 챙이 너무 맛있게 먹길래 도쿄 갔을 때 가봤는데 정말 맛있게 먹고 왔다.
3) <더 셰프 쇼>
<아이언 맨> <라이온 킹> 그리고 <아메리칸 셰프>의 감독 존 파브로가 <아메리칸 셰프> 이야기의 기초가 된 푸드트럭 코기 대표 로이 초이와 함께 진행하는 시리즈이다. <어글리 들리셔스>나 <셰프의 테이블>과는 달리 요리 과정을 면밀하게 볼 수 있다. 두 시리즈에 비해 짜임새가 엄청 좋지는 않지만 두 사람 사이의 케미가 볼만하다.
4) <셰프의 마인드>
셰프 데이비드 챙으로 시작해서 시즌을 거듭하며 새로운 셰프가 진행을 하고 별세한 셰프 앤서니 부르댕이 기획한 시리즈이다. 아직 데이비드 챙 시즌밖에 못 봤는데 <어글리 들리셔스>, <더 셰프 쇼>, <셰프의 테이블>을 합친 느낌이다. 벌써 7년 전에 나온 PBS 시리즈이기 때문에 촌스러운 EBS 바이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이야기한 세 시리즈의 근간이 된 듯한 있을 건 다 있는 시리즈이다.
2. 왓챠- 푸드 다큐멘터리 영화
1) <노마: 뉴 노르딕 퀴진의 비밀>
북유럽 퀴진을 뒤바꾼 세계 1위 레스토랑 노마와 대표 르네 레드제피의 이야기다. 다소 졸음을 부르지만 저자극 혁명의 끝판왕을 목격할 수 있다.
2) <스시 장인 지로의 꿈>
비슷한 방식으로 졸음을 부르지만 <셰프의 테이블> 두 배 되는 장인 정신을 목격할 수 있다.
3) <고기서 고기>
많이 안 알려진듯한 왓챠 오리지널. 고기를 굽는 내용이다.
3. 그 외 극영화
<라따뚜이> <줄리&줄리아> <아메리칸 셰프>
재미, 감동, 푸드포르노 삼박자를 갖춘 세 영화 자신 있게 추천한다.
+ 애니를 좋아한다면 악명 높은 <식극의 소마>를 알 것이다. 정말 최악이지만 킬링 타임으로 괜찮다. 무려 시즌3까지 나왔다.
여튼간에 결론은 이 영화보다 재미없고 나쁜 내용을 담기에는 힘들다는 것이다. 부디 돈 낭비 시간 낭비하지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