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사유의 장미>>에 드러난 70년대 일본 여성의 판타지
* 이 글의 전반부는 2018년 하반기 서울대학교에서 열린 김효진 교수의 <일본대중문화> 강의 내용을 기반으로 했다. 강의에서 구체적으로 언급한 연구는 각주로 표기했으나, 그 외에 출처가 명시되지 않은 내용은 강의 내용을 따른 것이다.
1. 들어가며
우리말로는 공상으로 해석되곤 하는 ‘판타지’는 문학 작품이나 영화의 장르를 이야기할 때 자주 호명되어 ‘환상’이나 ‘픽션’ 같은 단어와 마구 섞여 쓰인다. 판타지는 ‘일어나길 바라지만 그 확률이 매우 적은 상황이나 사건’을 가리킨다. 즉, 판타지에는 욕망이 있다. 하지만 그 욕망이 실현될 확률은 매우 적기 때문에 판타지는 먼 미래나 과거, 혹은 아예 새로운 시공간을 필요로 한다. 어떤 대상을 판타지화(fantasize)한다는 행위에는 매우 현대적인 뉘앙스가 있지만, 과거의 프랑스인들도 판타지화의 주체였다. 17세기 프랑스 궁정에서는 그리스 로마 시대를 판타지화하여 그곳에서 균형과 이상향을 찾았다. 18세기와 19세기에 들어서서는 판타지화의 장소가 동양의 중국과 일본으로 옮겨졌다. 한편 20세기 후반의 일본에서는 유럽이 일본인들의 판타지의 배경으로 채택됐다. 당대 유행하던 소녀만화의 주인공 이름의 다수가 유럽식 이름이었고, 1973년 등장한 헬로키티 굿즈는 모두 ‘유럽풍’ 정서를 환기시켰다. 특히 1972년 연재되기 시작한 이케다 리요코의 <<베르사유의 장미>>는 당대 일본의 프랑코필리아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동시에 <<베르사유의 장미>>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동명의 마리 앙트와네트 전기 내용을 밀접하게 따르는 방식을 택하여 동시에 연재된 다른 소녀만화와 비교했을 때 보다 역사에 충실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즉, 이케다의 <<베르사유의 장미>>에는 역사와 판타지가 공존한다. 혁명기 프랑스는 신격화된 인물들이 활동했던 신화적 시공간, 다시 말해 역사*와 판타지가 공존하는 배경이다. 역사와 판타지의 적절한 조화가 이뤄진 <<베르사유의 장미>>에서는 ‘자발적 인권 쟁취’와 ‘개인으로서 여성의 위치 사유’라는 70년대 일본 여성의 두 가지 판타지를 엿볼 수 있다.
* 역사도 물론 서술자에 의해 취사선택한 사실로 이은 스토리, 창작물의 일종이다. 하지만 ‘사실’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이 글에서는 역사를 판타지의 반대 개념으로 전제하고 서술하겠다.
2.70년대 일본 여성의 판타지의 배경이 된 혁명기 프랑스
<<베르사유의 장미>>가 연재된 70년대 일본에서는 ‘판타지’가 소녀만화에만 한정된 것이 아닌 사회 전반의 현상이었다. 70년대는 일본이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지원으로 일본의 경제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시기로, 5-60대 ‘전후’ 사회에서 80년대 버블경제의 ‘포스트 전후’ 사회로 이동하던 시대였다.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삶이 풍요로워지는 것을 목격한 당시 일본인들의 현실 감각이 무뎌지는 사회 현상을 ‘이상’ 및 ‘꿈’의 시대에서 ‘허구’의 시대로의 이동이라고 일컫는다.
사회적인 사실성(리얼리티)의 변모라는 측면에서 말하자면 ‘전후’ 사회에서 ‘포스트 전후’ 사회로의 전환은, 미타 무네스케가 ‘이상’ 및 ‘꿈’의 시대라고 명명한 단계에서 ‘허구’의 시대라고 명명한 단계로의 전환에 대응한다. 미타에 의하면, 1945년부터 60년경까지의 고도성장 이전 시기의 사실적(리얼리티) 감각은 ‘이상’(사회주의든 미국식의 물질적인 풍요로움이든)을 현실화하는 것에 향해 있었다. 그 후에도 70년대 초까지 실현된 물질적인 풍요로움에 위화감을 느끼면서도 젊은 이들은 현실의 저편에 있는 ‘꿈’을 지속적으로 추구하였다. 그러나 80년대 이후의 일본 사회의 사실적(리얼리티) 감각은 더 이상 이러한 ‘현실’과 저편에 있어야 할 무엇과의 긴장 관계를 잃어버린 ‘허구’의 지평에서 영위되었다. 이 시대 사람들의 생활을 특징 지운 것은 “사실성(리얼리티)의 ‘탈취’를 향해서 부유하는 ‘허구’의 담론이며 표현이자 생의 기법이었다.” (요시미 순야, <<포스트 전후 사회>>, 최종길 옮김, 2013, p. 8-9.)
70년대 경제 호황을 배경으로 꽃을 피운 소녀만화의 스토리텔링은 “'꿈'의 시대”에서 “'허구'의 시대”로 가는 흐름을 그대로 보여준다. 당대 소녀만화는 기존에 플롯 중심으로 전개되던 소년만화와 달리 “나는 이 세상에서 어떤 존재인가”, “상대방과 나는 어떤 관계에 있나” 등 주인공 내면의 주관성에 초점을 둔다. <<도로로>>와 <<리본의 기사>> 등 60년대 소년만화의 대표 작가 데츠카 오사무가 칸 배열, 말풍선 등의 배치로 영화적 재현을 목표로 했다면, ‘꽃의 24년조’라 불리는 70년대 대거 등장한 여성작가들은 서있는 모습을 오른쪽에, 왼쪽에는 긴 독백이 말 풍선과 경계선 없이 배치했다. 심지어 사건의 전개는 전혀 없이 침대에 누워서 생각하기만 하는 페이지가 연속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60년대 소년만화의 주인공이 대리체험의 도구였다면 70년대 소녀만화의 주인공은 공감의 대상이었다. 독자들은 주인공에게 자기 자신을 투영함으로써 만화 속 세계를 해석했다. 소녀만화는 크게 소녀틱 만화, 대하로망 만화, 고답파 만화로 분류되었다. 공통적으로 소녀만화에서는 여성 개인의 내면 성찰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통해 이뤄졌다. 외부 세계보다는 개인의 내면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 주제였던 소녀만화의 배경은 기숙사처럼 사회적 맥락에서 고립된 공간, 혹은 당대 일본보다 더 자유로운 서구가 주로 채택되었다. 특이한 점은 ‘소녀’만화임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이 여성의 육체나 여성성의 거부하는 경향이 있고, 심지어 소녀 대신 소년이 주인공으로도 등장하는 경우도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주인공이 소녀로 설정되는 순간 이야기가 한정되는 경우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당대 일본에서 사회주의 운동과 함께 ‘우먼리브’ 같은 여성 해방 운동이 활발했다고 해도, 가부장적 사회 안에서 여성이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이 상상 속 공간에서 이뤄진다고 해도 말이다. 여자 주인공들의 여성성 거부 및 혐오와 여성을 남자로 대체하려는 경향은 현실의 여성 작가와 독자가 일본 내 그들이 마주한 벽을 인지한 후 보인 반응으로 해석된다. <<베르사유의 장미>>의 경우 이케다 리요코가 일본 공산당의 회원이었고 여성 운동에 가담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주로 남성의 시선에서 그려진 역사에 허구의 여성을 삽입하여 이 한계를 극복하려 한 것으로 해석된다.
내면의 묘사와 허구적 여성의 이야기는 판타지적 배경을 필요로 한다. 이케다 리요코는 혁명기 프랑스를 그 배경으로 삼았다. 혁명기 프랑스는 70년대 일본과 시대적으로도 거리적으로도 멀다. 무엇보다 이때 제창한 인권은, 물론 당대에는 아니었지만 후대에 보편적인 것으로 발전한 인권의 초석이다. 이런 이유로 혁명기 프랑스 이야기는 신화화가 진행되었고, 그 시대 활동했던 로베스피에르, 루소, 생쥐스트, 나폴레옹, 올랭프 드 구즈같은 인물들은 혁명의 대명사가 되었다. 한편 혁명을 찬양하는 과정에서 마리 앙트와네트는 혁명의 반대편, 즉 ‘구체제’를 대표하는 악녀로 묘사되어 갖은 유언비어와 미스터리로 둘러싸인 인물이 되었다. 그 유명한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어라’부터 시작해서 목걸이 사건, 레즈비어니즘, 루이 17세의 행방 등 수많은 루머가 지금까지도 마리 앙트와네트의 이미지를 지배한다. 그런 그녀를 ‘평범한 여성’으로 묘사한 슈테판 츠바이크의 전기를 따른 이케다의 <<베르사유의 장미>>는 마리 앙투아네트를 둘러싼 루머를 허물고 독자가 인간으로서 그녀에게 공감하게 한다. 그녀의 삶을 새로 설명하는 과정에서 일부는 과장되거나 허구화되는데, 허구적인 부분의 예시로서 오스칼 프랑수아 드 자르제라는 캐릭터를 들 수 있겠다. 오스칼은 실존했던 인물인 자르제 장군의 딸로 설정되어 마리 앙트와네트와 함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여자인 동시에 남자’인 오스칼은 약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독보적인 캐릭터이다. 오스칼은 단순히 마리 앙투아네트의 삶을 재해석하기 위한 장치를 넘어서서 일본 여성 독자들이 자신의 욕망을 투영하고 테스트해볼 수 있는 대상이었다.
3. 일본 여성의 첫 번째 판타지- 자발적 인권 쟁취
일본 여성의 권리는 그들이 쟁취한 것이 아니라 강요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Anne Mcknight에 따르면 일본의 민주주의가 강화된 것은 1947년 미국에 의해 일본국 헌법이 시행됐을 때이다. 특히 제 24 조항은 개인의 존엄성과 성별의 평등을 강조한다.* 한편 프랑스 혁명의 인권선언문은 ‘la déclaration des droits de l’homme et du citoyen’라는 원어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남성 시민’**이라는 특정 계층의 인권을 주장했다. 그러니까 보편적인 인권을 주장한 것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국 헌법 제 24 조항이 전제하고 있는 개인의 존엄과 평등의 기원이 된다. 따라서 McKnight는 일본인 이케다가 프랑스를 주인공의 사랑과 성장의 배경으로 선택한 이유는 미국에 의해 일본에 새로이 들어오게 된 여성 인권에 새로운 맥락을 부여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프랑스는 전후 일본의 미국으로부터 강요된 헌법의 “인권”의 대안이 되고,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인권에 관한 한 종류의 토의의 기원이다. 인권을 보편적인 것으로, 그리고 외국의 통치에 의해 강요된 것이 아닌 것으로 고려한다면, 온전한 시민권에 여성을 새로이 포함하는 것은 강요된 수입으로 분류될 수 없다. 대신 그것은 그 수용자들에 의해 조정되고 맞춰지길 요구하는 적극적으로 소비되는 가능성으로 분류된다. 프랑스를 포퓰리스트 사랑과 혁명의 배경으로 한 이케다의 선택은 일본의 피로감의 주원인, 즉 1970년에 미국-일본 조약의 비준이 이뤄졌을 때 일본의 비판의 실패로부터 벗어나는 방향을 제공했다. <<베르사유의 장미>>는 “인권”이 미국 통치 아래 여성의 투표권 외 다른 권리를 갖게 된 일본인들의 경우처럼 외세의 강요로 인해서가 아닌, 인민의, 반-황제주의의, 자발적이고 즉흥적인 폭동의 발명이었는지 각색한다.
France was the historical origin of one discussion of rights that provides an alternative to, and supersedes, the version of “rights” at play in the American-imposed Constitution of postwar Japan. When rights are considered to be universal, and not imposed by a foreign occupier, the new incorporation of women into full citizenship cannot be bracketed as an imposed import: it is instead framed as an actively consumed potential that requires tailoring and customization by its receivers. Ikeda’s choice of France as a setting for populist love and revolution provided a way to sidestep the chief source of fatigue, the failure of the Japanese critique of dependency on the United States when the United States-Japan Security Treaty was ratified in 1970. Rose of Versailles dramatized how “rights” were an invention of a popular, anti-imperial, spontaneous uprising, no the imposition of a foreign occupying power, as in the case of women’s voting and other rights in Japan under the American Occupation. (같은 책.)
즉, 47년부터 70년까지도 일본 사회에서는 ‘여성의 인권’이 외세가 패전국 일본에게 강요한 것 중 하나이기 때문에 내부적으로 정당화되지 않고 있었다. 헌법상의 일본 여성의 인권은 그것을 쟁취하기 위해 들인 노력도 어려움도 없기에 그것을 쟁취했을 때의 승리감도 없다.*** 따라서 인권 쟁취의 역사상 가장 큰 승리 중 하나로 기억되는 프랑스 대혁명에 여성 캐릭터를 삽입시켜 일본의 여성 인권을 정당화하고자 하는, 나아가 그것에 승리의 서사를 부여하고자 하는 욕망을 <<베르사유의 장미>>에서 읽을 수 있다. 이케다는 마리 앙트와네트, 오스칼을 비롯한 다양한 계층의 여성들을 중심으로 프랑스 혁명기의 이야기를 각색하면서 이 판타지를 실현시켰다.
* “[…] laws shall be enacted from the standpoint of individual dignity and the essential equality of the sexes.” McKnight, Anne. Frenchness and Transformation in Japanese Subculture, 1972–2004, Mechademia, vol. 5, 2010, pp. 118–137.
** 당시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특정한 수준의 재산을 가진 남성이어야 했다.
*** 이는 동양 국가만의 문제는 아니다. 1918년 독일 여성이 참정권을 갖게 된 것도 여성 투쟁의 직접적 결과가 아니라 1차 세계 대전 이후 남자들, 즉 주권자들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30대 이상의 여성들에게 투표권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이 판타지는 특히 오스칼 캐릭터로 가장 잘 실현된다. 마리 앙트와네트는 실존 인물이기도 하고 궁정에서만 활동하기 때문에 변화나 성장을 겪지 않는다. 한편 오스칼은 근위기병으로 활동하면서 파리의 거리라는 외부 세계와 지속적으로 충돌하기 때문에 성장하는 입체적 캐릭터이다. 그녀는 외부의 강요나 설교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내면의 반성을 통해 각성하게 된다. 작품의 후반에 파리 시민 폭동을 통제하러 간 오스칼이 부상을 당하자, 옛 친구 로자리가 그에게 치료를 해주고 수프를 내어준다. 이때 오스칼은 이들의 주거 및 식생활 상황을 보고 큰 충격에 휩싸인다. 귀족 출신, 그것도 혈통 귀족(noblesse du sang)으로 불리는 기사 출신 귀족 오스칼은 귀족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적당한 배려심과 이해심을 갖춘 인물이긴 하지만, 실제로 도시의 평민들이 어떻게 사는지는 처음 피부로 느낀 것이다.
직업에서 겪는 경험이 오스칼의 각성 계기 중 하나라면, 다른 하나는 그녀와 앙드레의 관계이다. 앙드레는 자르제 가문의 시종 할머니의 손자로, 오스칼을 호위하는 평민 신분의 청년이다. 이들이 느끼는 연애감정이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그러니까 결혼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신분제가 폐지되어야 한다. 즉, 오스칼과 앙드레의 관계 자체가 혁명을 요구하는 것이다. 혁명의 정당성과 필요성 모두 느끼게 된 오스칼은 결국 혁명군의 편에서 바스티유 습격에 참여하고, 바스티유 성 함락과 동시에 그 자리에서 사망한다. 이 장면과 이어지는 페이지들을 보면 오스칼의 죽음이 프랑스 국가의, 나아가 인류 전체를 위한 희생으로 묘사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프랑스 혁명이 일궈낸 성취를 다소 성급하게 보편화하는 듯하지만 인권선언문을 ‘몹시 불충분하긴 하지만’이라고 수식함으로써 그 한계를 작가가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침내 함락된 것인가…. 프랑스 국민이여…! 아아…. 용감하고 위대한 자유…, 평등…, 박애…, 이 숭고한 이상이… 영원한 인류의 굳건한 초석이 되기를…/ 프…랑스… 만…세!/ 마침내 함락된 바스티유 감옥. 사령관 드 로네 후작의 목을 창끝에 꽂아들고…, 기뻐하는 국민의 소리는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온 파리 시내에 울려 퍼졌다. 새로운 역사의 한 페이지가 열리는 눈부신 순간이었다./ [페이지 생략]/ 그리고 8월 26일. 몹시 불충분하긴 하지만,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소리 높여 외친…, 인류 역사상 불후의 기념비라 할 만한 ‘인권선언’ 전 17조가 채택되었다.”
오스칼의 죽음을 위와 같이 연출한 것은 여성 인물을 남성으로 점철된 혁명 영웅의 반열에 올려놓으려는 시도로 보인다. 실제로 올랭프 드 구즈 같은 엘리트 여성들이 혁명에 참여했고, 대혁명이 급진적으로 변하게 된 시발점인 ‘여자들의 행진(Marche des femmes)’을 시작한 도시 빈민 계층 여성들이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참여는 영웅적인 것으로 인정되기는커녕 성가시고 히스테리적인 것으로 취급됐다. 심지어 올랭프 드 구즈의 경우 종교재판 시절의 마녀사냥을 환기하는 방식으로 기요틴에서 참수당했다. 이런 점에서 <<베르사유의 장미>>의 결말을 장식하는 오스칼의 죽음은 일본 여성뿐만 아니라 프랑스 여성들에게도 1789 혁명이 가져다준 결과와 정반대의 승리의 역사를 부여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오스칼이 혁명에 참여하고 영웅의 반열에 오르기 위해서는, 즉 인류를 대표하기 위해서는 남성이 되어야 했다. 한편 오스칼이 혁명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는 가장 큰 계기 중 하나가 앙드레를 향한 사랑이기 때문에 오스칼은 여자기도 해야 한다. * <<베르사유의 장미>>의 가장 두드러지는 판타지성은 바로 남자인 동시에 여성인 오스칼이라는 존재 그 자체이다.
* 사랑과 결혼의 문제가 물론 이성만의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작품 곳곳에서 보이는 퀴어적 순간들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호모포빅하다는 것을 고려했을 때(i.e. 마리 앙트와네트는 자신이 레즈비언이라는 소문이 돌자 엄청난 모욕으로 받아들인다) 동성 간의 사랑과 결혼은 논의 대상이 아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4. 일본 여성의 두 번째 판타지- 개인으로서 여성의 위치 사유
아마 <<베르사유의 장미>> 연재 시절 독자들이 가장 주목했던 것은 혁명의 역사보다는 마리 앙트와네트와 오스칼의 사랑이었을 것이다. 소녀만화의 장르 특성상 만화가 독자들이 주인공에게 공감하기를 독려하기 때문에 <<베르사유의 장미>>는 스토리 전개보다 주인공의 내면 묘사에 중점을 두는 식으로 페이지를 연출하고 있다. 아이러니한 점은 이 만화가 주장하는 개인성과 주관성의 중요성은 프랑스 혁명 의식과 정반대된다는 사실이다. 프랑스 혁명이 일궈낸 ‘만인평등’은 다시 말해서 ‘무개성성’과 ‘무차별성’이다. 한편 <<베르사유의 장미>>에서는 이 사회에서 내가 어디에 위치하는지, 내가 타인이 어떻게 관계하는지가 가장 큰 문제이다. 하지만 그 고민 끝에 마리 앙트와네트와 오스칼 모두 사랑을 통해 자신을 왕비도 기사도 아닌 보편적인 ‘인간’으로 인식한다는 점에서 다시 프랑스 혁명의 질문으로 이어진다.
먼저 독자가 오스칼을 통해 사유하는 것은 청년으로서 여성의 위치이다. 여성인 동시에 남성인 오스칼은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 성적으로 매력적인 존재이다. 오스칼은 연회를 열어서 많은 여성들과 함께 춤을 추기도 하고, 오스칼과 앙드레의 성관계는 소녀만화 장르에서는 ‘파격적’이게도 직접적으로 묘사된다. 위 두 장면에서는 비혼의 젊은 여성이 성적인 존재로 인정받고 싶은 적극적이면서도 수동적인 욕망, 그래서 양가적인 욕망을 읽을 수 있다. 나아가 오스칼이 자신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신분에 맞는 ‘결혼’이 의무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이후, 그녀는 자신이 ‘인간’임을 인지한다. 오스칼은 앙드레와 자신의 사랑을 가로막는 ‘귀족 여성’이라는 타이틀을 벗어던지고 ‘그저 인간’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혁명이 필요하다고 깨닫는다. 이 혁명을 위해 희생하는 결말을 맞으며 오스칼은 인간으로서 누릴 기쁨은 다 누리고 간다고 회고한다.
“저…. 이제 곧 결혼해요. 이번 휴가에 오빠가 돌아오면…. 그래요…. 행복해지리라고 생각해요. 결혼…! 결혼…. 여자라면…, 여자라면 그것이 정말… 최고의 행복일까…? 결혼이라는 것이…./ 무관은 어떤 때든지 감정으로 행동하는 게 아니다. 무관은 어떤 때라도…. 하지만 인간이다! 인간이다, 인간이라고!/ 신의 사랑에 거역할 도리도 없는 형편없이 작은 존재이긴 하지만, 자기의 진실에 따라… 한순간도 후회 없이 주어진 삶을 살아왔다. 인간으로서 이 이성의 기쁨이 또 있을까? 사랑하고…, 증오하고, 슬퍼하고…”
한편 독자가 마리 앙트와네트를 통해 사유하는 것은 기혼 여성의 위치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상호 동의 결혼이 아닌 제도에 의해 강요된 결혼을 한 여성의 위치이다. 츠바이크의 작업을 충실히 따른 <<베르사유의 장미>>는 그와 비슷한 방식으로 그녀가 왕비이기 전에 인간임을 밝힌다. 그녀의 인간화 작업은 스웨덴 귀족 페르젠과의 혼외 연애를 더욱 극적으로 묘사하면서 이뤄진다. 하지만 마리 앙트와네트는 오스칼과 달리 자신의 사랑 또한 혁명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역사적 사실에 따라 단두대에서 처형당하는 결말을 맞는다.
두 여성 모두 자신이 ‘그저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고 각자의 방식으로 반응하는 내러티브와 모순되는 점은 이들을 신격화하는 묘사이다. 예를 들어 오스칼은 주변 사람들에 의해 종종 올림포스 신에 비유되고, 스스로 전쟁의 신 마르스의 아들이라고 인식한다. 한편 마리 앙트와네트는 군주의 권력은 신으로부터 온다고 인식하고, 파리의 시민들은 그녀가 단두대로 걸어 나오는 것을 보고 그녀를 “여왕”으로 인식한다.
“내가 프랑스 왕태자비로서 이 나라에 시집온 것은…. 불과 14세 때…. 아직 첫사랑조차도 알지 못하고 놀기에 정신 없던 아이 때였어요. 오스트리아와 프랑스의 동맹을 위해..., 왕태자비로서, 왕비로서, 국가의 어머니로서…. 나는 마리 앙투아네트라는… 한 여성으로서의 존재를 까맣게 잊어버렸어요. 그러나 오스칼 프랑소와 같은 여자라면 당신도 알 테죠?! 나는 왕비이기 전에 인간이에요! 살아 있는 마음을 가진 한 사람의 여성이에요!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어하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몸을 떨며 기다리는 한 사람의 여자예요!/ 이제부터는 국왕 폐하 대신 내가 남자가 돼야 한다. 나는 혁명 따위는 절대 인정치 않는다. 나는 군주로서 국민을 지배할 권력을 신으로부터 부여받았으니까.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회전시키려하는 자는 반드시 멸망한다는 진리를 앙투아네트는 끝내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실로 진정한 여왕이야…. 왕비 만세!
이들이 자기 자신을 ‘그저 인간’으로 인식하자마자 비극적 결말을 맞는 것 또한 의미심장하다. 마리 앙트와네트의 죽음이야 역사적 고증을 따른 것이지만, 허구적 인물 오스칼의 영웅적 죽음 배후에 깔린 멜랑콜리함은 여성의 위치에 대한 이케다의 다소 비관적 시선을 보여준다. 오스칼이 사망한 직접적인 이유는 바스티유 함락 중 공격을 받아서이지만, 이전부터 피를 토하며 결핵으로 추정되는 병에 걸린다. 그녀의 연인 앙드레 또한 만화 중반부에 눈에 상처를 입어 실명한다. 이들이 전쟁터에서 죽지 않았더라도 결혼이 성사되기까지 두 사람 모두 살아남았을 확률은 아주 미미하다. 인간적 묘사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신격화는 이들이 예외적 인물들이라는 점을 환기시키고, 이들의 비극적 결말은 판타지 세계에서조차 극복 불가능한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런 비극은 작가도 이것이 실제 여성들의 상황에 적용될 수 없는 이야기임을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5. 한계
<<베르사유의 장미>>는 소녀만화의 장르적 특징을 잃지 않으면서도 역사적 고증을 놓치지 않아 장르의 고정관념을 깬 작품으로, 만화사적으로 상징적인 위치에 있다. 그리고 오스칼이라는 인물은 후대 BL(Boy’s Love) 장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등 현재까지도 가장 독보적인 픽션 캐릭터 중 하나로 꼽힌다.* 한편 <<베르사유의 장미>>가 세월의 시험을 견디지 못하는 부분은 성 역할 개념이다. 오스칼의 경우 여성이자 남성인 캐릭터 설정이 여성의 양가적 욕망을 표현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오스칼과 마리 앙트와네트는 여성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서 ‘남자가 되고 싶다’ 혹은 ‘남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만화가 당시 페미니즘 물결의 영향을 받아 쓰인 것이긴 하지만, 여성의 권리나 위치를 발전 없이 그대로 두고 남성의 기득권을 차용하는 방식이 ‘페미니스트’적일 수는 없다. 그렇다면 보편 인권의 근원지인 프랑스 혁명기의 한가운데 여성 캐릭터를 놓아 일본 여성의 성평등권에 정당성을 부여하고자 한 이케다의 목표는 온전히 이뤄졌다고 할 수 없다. <<베르사유의 장미>>가 나온 지 40년이 넘은 현재, 일본도 ‘페미니즘 리부트’를 기점으로 다시 페미니즘의 기류가 흐르고 방향도 다양화되고 있다. 지난 5년 사이, 새로운 페미니즘 물결 아래 <<베르사유의 장미>>와는 다른 상상력을 보여주는 작품이 문학, 영화, 웹툰 등 장르를 불문하고 쏟아져 나왔다. 이 물결이 계속 많은 독자를 만나고 새로운 논의를 끌어내면서 마르지 않길 바란다.
* BL 만화의 정당성과 관련해서는 논의가 계속되고 있지만, BL 만화 또한 여성 작가/독자가 여성이 현실에서 처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허구적 남성 인물에 자신을 대입함으로써 로맨스 판타지를 실현하고자 생긴 장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