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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인디 Jan 27. 2020

그 누구에게도 누군가의 존엄을 해칠 자격은 없다.

김기창 작가의 「방콕」을 읽고.

! 본 게시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방콕>은 불법 이주 노동자 '훙'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불법 이주 노동자를 다룬 소설은 처음이라, 책에서 다루어질 그의 고통이 무엇일지 호기심을 가지고, 나름대로 그에게 감정이입할 준비를 하고 페이지를 넘겼다. 하지만 정인을 상대로 불쾌한 상상을 하는 훙에게 거부감을 느꼈고, 도둑이 제 발 저리듯 스스로 지옥을 향해 걸어가고(본인은 깨닫지 못하지만) 결국 죽임을 당하는 훙의 최후에 대해 '유쾌하지 않은 후련함' 같은 묘한 감정이 들었다.


훙은 손가락 절단 사고 이후 윤 사장을 향한 복수심에 정인을 위협한다. 그는 윤 사장의 가장 소중한 것을 망치고 싶었다고 말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많다. 첫째로, 훙이 복수심에 윤 사장의 것을 해칠 정도로 그가 큰 잘못을 했는지, 윤 사장이 훙에게 어떤 보상을 어떻게 해주어야 했는지 정말 모르겠다. 정말 정말 모르겠다. 아직은 내가 부족함이 많아서인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다. 둘째, 훙은 윤 사장에 대한 복수심으로 정인을 해쳤다고 하지만 과연 그 일을 실행하는 데에 있어 복수심만 작용했을까? 내가 느끼기로는 윤 사장에 대한 복수는 핑계이고, 복수를 기회 삼아 평소 흠모했던 정인을 스토킹 하고, 해친 것으로 보인다. 이 지점에서 나는 훙에게 감정 이입하기를 포기했다. 마지막으로, 본인의 존엄을 훼손했다는 이유로 타인을 해칠 자격이 주어지는가? 이런 식의 자기 합리화는 인간이 관계에 있어 가장 흔하게 범하는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등장하는 모두가 그렇다. 자신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지키기 위해 타인을 해칠 궁리를 한다. 권리는 이렇게 해서 얻어지는 게 아닌데. 등장인물 간의 이러한 관계성은 얽히고설켜 결국 관계의 파멸에 다다른다. 때문에 <방콕>에서 그려지는 방콕은 죄로 가득한 천국이다. 모두 각자의 꿈을 안고 방콕으로 왔지만,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 타인의 영역을 침해하려 들며, 부정을 저지른다. 안타깝게도 결백하지 못한 자들은 천국을 누릴 수 없다. 나는 방콕을 누릴 수 있을까? 방콕을 누리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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