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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ana D Sep 08. 2022

첫사랑과 10년 만에 다시 만나 결혼합니다

돌고 돌아도 너는 나, 나는 너

5월 초부터 갑자기 싱숭생숭한 마음이 진정이 안되더니, 문득 10년 전 헤어진 나의 첫사랑이 그리워졌다. 봄이라 그랬을까 아니면 제주에서 본 바다 때문이었을까. 뭐, 항상 너의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이번에도 감히 연락을 다시 할 마음은 들지 못했다. 너무 오래전에 끝났다고 생각했고 우리는 너무 어렸으니까. 심지어 이후에 2-3년 한두 번 정도 간간이 이어진 연락조차 상황 때문에 계속 어긋났다. 그래서 너랑은 정말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와중 또 한 번의 짧은 썸이 끝나고 13년 지기 친구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내가 봐온 넌 누구를 사랑해서 연애하는 게 아니라 그냥 여자친구의 역할에 충실한 것 같아, 네 첫사랑 말고는.”

그 말에 네가 며칠 동안 머릿속에서 떠돌아다녔다. 아니라고 말할 수가 없었으니까. 내 마음속의 그리움으로는 용기가 나지 않았는데 친구의 말이 명분이 되어 버린 것 같기도 하고.


널 오랜만에 기억해낸 후, 뭐 언제나처럼 며칠 생각나다 말겠거니 할 정도로 난 너의 부재에 익숙했다. 그냥 일을 늘리고 운동을 더 하는 것만이 이 답없는 미련을 다시 묻어두고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란 걸 알고 있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내 머릿속에 사는 널 구석으로 몰아내는데 실패했다. 대. 참. 패

이제 나는 너를 찾아야 했다. 너무 보고 싶어져 버렸거든.


너에게 연락을 할지 말지 2주가 넘게 고민이 길어졌다. 사실 연락할 방법도 없기도 했다. 난 너의 바뀐 번호도 모르고, 너는 카톡 외엔 그 흔한 SNS도 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니까 찾아도 나올 리가 없었다. 심지어 마지막 연락은 우리나라가 아니었으니까 한국에 없을 수도 있었고. 그러다 사람찾는걸 네이버에 검색해봤고, 카톡 추천 친구에 내 번호를 저장한 사람은 내가 저장하지 않아도 알람이 뜬다는 걸 알았다. 거기 들어가니 프로필은 너의 영어 이름으로 되어있었지만 보자마자 너인걸 알았지. 너는 아직 내 번호를 갖고 있었구나.



그렇다 해도 바로 연락하기에는 내 욕심만 앞서다 너한테 피해가 될까 봐 또 고민이 길어졌다. 혹시나 여자친구가 있으면? 결혼했으면? 애기도 있으면? 어쩌나 했다. 알고 싶지만 알고 싶지 않은 사실들. 연락 안 한지가 몇 년인데 한두 번 오간 대화로 언제적 첫사랑을 꾀어내는 못된 여자로 의심받긴 싫었으니까.


고민의 시간이 길어지다 카톡 사진이 아예 없는 걸 보고 결혼한 사람 같진 않아서 용기 내서 연락했다. 결혼했으면 웨딩사진이 있을 거고 너는 애가 있으면 애기 사진을 해놓을 사람이니까. 그냥 막연한 믿음이랄까.

심지어 밤에 하는 연락은 미련남은 찌질한 전여친 그 이상은 아닐거 같아 일부러 한낮에 했다. 잘 지내냐는 내 물음에 한 시간 후에 답이 왔고, 생각지도 못하게 너는 다시 강릉에 돌아와 있었다. 우연히도 2주 후에 나는 강릉에서 서핑강습을 이미 예약했었다. 결국 우리는 그때 만나기로 했다.


만나기로 한 전 날부터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너무 떨려서 동생부부가 나를 진정시켜줬다. 만나지 말까  실망하면 어쩌지. 무의미한 걱정들이 열심히 머릿속을 뛰어다니며 나를 괴롭혔다.


KTX를 타고 강릉역에 도착해서 10년 만에 드디어 너를 만났다. 변한 모습이 아직 어색했지만 아직도 그대로인 모습을 찾아내 다시 또 설레는 그런 첫만남이었다. 이제 운전도 잘할 줄 아는구나. 수염도 멋있게 기르고, 살도 좀 쪄서 어른 같아졌다. 그래도 똑같은 말투와 그대로인 눈빛과 표정, 한결같은 다정함. 많이 변했는데 변하지 않았다. 10년이란 시간의 차이가 그만큼의 간극으로 느껴지진 않아서 다행이었다.


안목해변 근처에 카페를 갔다. 우리가 처음같이 바다를 본 곳도 이 근처였다. 카페 이름도 기억나지 않고 의자가 되게 불편했는데 울고 웃으면서 10년간의 이야기를 2시간이 넘게 얘기해서 풀어냈다.


결론은 우리는 다시 만나기로, 결혼하기로 했다.

다시 사귀려고 내려왔냐고 묻길래,

 “난 사귀려고 내려온 거 아니고 너랑 결혼하러 온 거야”라고 한 나,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응. 하자. 결혼.” 하는 너.

우리는 진짜 똑같은 사람들이라 다시 만나나 보다.


10년전 헤어질 때 너는 커플링을 못 버리겠으니까 나보고 가져가서 버리라고 했다. 나는 그걸 10년 동안 못 버렸고 기억나면 꺼내보고, 녹슬면 닦아놓고 해서 잘 보관한 우리 은반지를 가져가서 다시 나눠 끼고 왔다. 보자마자 너무 놀라 말도 못하고 펑펑 울던 너의 모습은 평생 기억해줄게. 아! 내가 놀란 건 옛날에 끼던 반지 모양 그대로 금으로 다시 만들어서 왼손 약지에 너 혼자서 끼고 있었다. 10년을 그 반지를 보관한 나나, 다시 만들어 그 자리에 또 끼고 있는 너나 참 한결같은 사람들이야, 우린. 천생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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