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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영 Mar 12. 2024

올드카를 타본 적 있나요?

요상하고 털털거리는 서른 살 프라이드 베타 이야기



우리 가족에게는 특별한 차가 하나 있다. 어릴 적부터 학창 시절까지 자주 탔었던 프라이드 베타(이하 베티). 올해로 서른 살이 된 베티는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외삼촌과 동생의 운전 선생님이 되어주었다. 이번에는 나의 차례다. 중고차를 장만하기 애매한 시기인 겨울 동안 베티를 빌리게 되었다. 막상 타려니 궁금해져서 검색창에 '프라이드 베타'를 찾아봤는데 특이한 외관 때문인지 목격담이 올라온 글들이 여럿 보였다. 음, 나는 베티의 모든 것이 익숙했기 때문에 특별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래서인지 베티는 나보다 오히려 주위 사람들에게, 또는 행인분들에게 더 사랑을 받았다.


초보운전 스티커가 어울리지 않지만 안전을 위해!


예를 들면, 신호를 기다리던 고속버스 기사님이 운전자석 너머 눈이 마주치자 냅다 엄지 척을 해주신다거나. 지나가던 분들이 유리창을 똑똑 노크하며 어디서 이런 차를 구했냐며 질문을 건네는 상황이 있다. 선팅이 하나도 되어있지 않은 유리창 너머로 눈이 잘 마주치는 게 거리감을 좁히는 게 아닐까 의심스럽다가도 안과 밖이 훤히 보이는 것이야말로 이 차의 매력이지, 하며 생각이 들곤 했다.


카세트테이프 감성

회사 동료분께 선물 받은 뉴키즈온 더블록(New Kids On The Block)의 'Step By Step'를 재생하며 출근길을 달릴 때는 기분이 좋아졌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응답하라 1998 드라마 속으로 들어간 듯한 느낌에 왜 어른들이 올드카를 갖고 싶어 하시는지 진심으로 이해가 되었다. 나도 20년 후에 향수에 젖어 그 시절 차를 가지고 싶어 할 것 같다.


닭발, 닭봉이라 불리는 수동식 유리창 핸들.


짙은 와인색의 외관과 녹색번호판을 달고 달리는 동안에 받는 모든 질문들에 나는 ’ 부모님께 빌린 차‘라는 자동응답기가 되어있었다. 결과적으로, 베티는 존재만으로 여러 가지 칭찬을 받곤 했다. 기분 좋은 말들은 고스란히 부모님께 전해드리며 우리 가족 사이에서는 꽤 즐거운 이벤트가 되었다.



하지만 요상하고 털털거리는 서른 살 베티는 추운 춘천이 싫었거나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게 분명했다. 잔고장이 많아서 2주에 한 번은 꼭 병원을 가야 했는데 그 이유가 매번 달랐다. 운전자석 유리기어가 내려앉아서 창문을 열고 달리기도 했고, 라이트를 끄지 않아서 방전이 자주 되거나 이유 없이 시동이 걸리지 않아서 난처한 경우도 많았다. 신기하게도 정비소 기사님이 걸어주실 때만 잘 걸리는 건 기분 탓이겠거니 했다.


이제 겨우 10만을 달렸다. 베티는 마음만은 청춘이다.


그리고 얼마 전 유난히 춥던 날. 퇴근 후 시동을 걸어보려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그 이후로도 6번이나 실패했다. 연휴에 부모님이 춘천에 오셔서 바로 시동이 걸리는 걸 보고 정말 보낼 때가 되었다고 느꼈다. 아쉽지만 베티와 함께하기에 나는 너무나 초보였으니. 3개월 동안의 올드카 라이프는 끝이 났다. 


혹시라도 춘천에서 베티를 봤던 분들께는 행운이 있기를.

20231127 - 2024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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