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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차약사 Apr 24. 2020

많이 실패하다 보니 얻은 소득

최소한 밑지는 시도는 아니다. 

'이것저것 해보고 싶어병'에 걸렸던 20대. 이거 하다가 별로면 저거 하고, 저거 하다가 별로면 또 다른 거 하고.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해보면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 귀농해서 농사지으며 건강한 먹거리를 먹고 지구도 지키고 싶었다. 막상 지방살이를 몇 개 월해 보니 나는 농사를 하고 싶은 건 아니란 건 알았다. 재미가 없었다. 아직은 사람들을 만나는 게 좋았다. 도시에 살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불쌍한 사람들을 돕고 싶다고 아프리카에 갔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밝게 사는 짐바브웨 사람들을 보면서 반성했다. 돕긴 누굴 도와. 아프리카보다 훨씬 풍족하지만 마음은 불행한 한국사람들을 훨씬 많이 알고 있었다. 아프리카 사람들을 돕기 전에 나부터 잘 살아야 된다는 걸 알았다. 








어떤 걸 해보기 전에 그것에 대한 환상을 갖는다. 당장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막상 그것을 해보면 환상이 깨진다. 환상이라기보다는 이상이라는 말이 맞을 것 같다. 나 혼자 이상향을 그려보고 거기에 답이 있을 거란 생각을 한다. 그곳에 가보지만 '이곳에 답은 없고 나에게 딱 맞는 옷은 아니다'라는 결론만 얻어 왔다.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면서 나는 성취들을 쌓아오지 못했다. 오히려 실패들을 쌓아왔던 것 같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구나. 나는 이것도 하고 싶었던 게 아니고 저것도 하고 싶었던 게 아니구나. 


사람들은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 때 행복하다고 한다. 그런데 그거 아는가? 사람들은 의외로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모른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게 뭔지, 내가 누구인지 잘 모른다. 사실 나도 잘 아는 건 아니다. 그런데 실패를 많이 한 게 유리하다는 걸 알았다. 내가 정말 좋아하고 뭘 잘하는지 아직도 찾아가는 중이다. 하지만 그 범위가 많이 좁혀져 있다. 


얼마 전까지도 '내가 원하는 게 아니란 것만 잔뜩 알게 해 준 내 20대'에 스스로 실망을 많이 했었다. 7번의 시도를 했다면 7번 전부 내가 정말 원하는 게 아니란 것만 알게 됐다. 그런데 의외의 소득이 있었다. 세상에 10가지 방법이 있다면, 이제는 내가 정말 좋아하고 잘하는 건 나머지 3번에 있지 않을까?라는 소득 말이다. 이번에 해보는 건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시도하는 용기가 생기고 좀 더 길게 해 보자는 끈기도 생긴다. 


이미 해 봤던 7번의 경험 덕분에, 타인이 잘나 보이고 나랑 비교를 하다가도, '그래 난 저거 해봤지. 내가 정말 좋아하는 건 아니었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조금은 내려진달까. 그 길을 가는 사람을 응원해 줄 수 있다. '너는 그 길이 좋은가 보구나. 잘해보기를. 진심으로 응원해.'











자기 계발에 관심 갖게 된 지 2년이 됐다. 사람들 각자에게 자기 계발의 의미는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꿈을 찾는 것이고, 누군가는 진짜 좋아하는 게 뭔지 아는 것이고, 누군가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고, 누군가는 영어공부를 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나에게 자기 계발은 끈기다. 예전엔 '이것저것 해보고 싶어병' 때문에 이거 찔끔 저거 찔끔했다. 내 사전에 끈기란 없었다. 많은 실패를 한 덕분에 이제는 좀 더 집중하는 끈기가 생겼다. '지금까지 해왔던 놈들은 아니었어~ 이놈이 이번엔 정답일지도? 이놈을 한 번 끈덕지게 물어보자'라는 오기도 생겼다. 


7번의 실패 속에서 내가 싫어하는 것만 발견한 것은 아니다. 남을 돕겠다고 갔던 아프리카에서 나는 내가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걸 발견했다. 전기가 나간 밤, 노트북 배터리가 끝날 때까지 한국 친구들에게 아프리카를 알린다고 페이스북을 했다. 사위가 조용한 그 밤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글쓰기밖에 없어서 시작했는데 내가 그 일을 진정 즐기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 삶이 초라하다 느껴지던 2년 전, 성공한 사람들을 배우고 싶었다. 그들이 하는 건 다 따라 하고 싶었다. 다들 블로그를 하더라. 그래서 나도 2년 전 5월 블로그를 시작했다. 따라 하고 싶기도 했지만 내가 글 쓰는 걸 좋아한다는 걸 아프리카에서 우연히 알게 됐기 때문에 더 빨리 시작할 수 있었다. 최소한 밑지는 시도는 아니라는 걸 알았던 것이다. 






작년에 책을 내겠다고 했었다. 생각대로 잘 되질 않았다. 설레발치고 다녔던 나보다 조용히 지냈던 지인들이 먼저 책을 내는 경우가 많아졌다. 조바심도 나고 초조하기도 하고 나 자신이 작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 글을 쓴다. 내가 글 쓰는 것 자체를 좋아한다는 걸 아니까. 이 과정을 사랑하니까. 책을 낼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글 쓰는 게 좋으니 시기가 늦어져도 괜찮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을 나는 끈기 있게 해낼 것이므로 언젠가는 반드시 책이 나올 것이라 믿는다.


'이것저것 해보고 싶어병'에 걸려서 끈기와는 거리가 멀었던 내가 30대 후반이 되니 끈기란 놈과도 친해지고... 내가 생각해도 스스로가 괜찮은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 그럴 수 있었던 원동력은? 나는 내가 많이 실패해봤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저것 해보고 싶었던 10가지가 있다면 실패해보며 선택지들을 많이 지워나갈 수 있었다. 이제는 몇 개 안 남은 것 같다. 이번에 시작하는 놈들은 한번 끈기 있게 해 보는 일만 남았다. 많은 실패가 내게 준 가장 큰 소득이다.  



나는 젊었을 때 10번 시도하면 9번 실패했다. 그래서 10번씩 시도했다. 
-  조지 버나드 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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