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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서 C Jul 14. 2020

아린 밤

준비 못한 이별에 대하여



누구세요?


소장님이 돌아가셨다. 나는 그 사실을 경비실에 나타난 낯선이를 통해 알았다. 오년간 그 자리엔 소장님이 앉아 계셨다.


가족보다 친구보다 회사사람들보다 많이 보던 얼굴이었다. 한번도 간적 없는 휴가라도 쓰신걸까. 한동안 보이지 않았던 소장님은 쓰러져 병원에 실려간지 삼일만에 돌아가셨다.


명절에조차도 이곳 건물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 경비실에서 숙직을 하시던 소장님이었다. 청력이 좋지 못해 또 시력이 좋지 못해 처음보는 사람들은 그를 불편해 했지만 외부인을 철저하게 감시하던 소장님 덕분에 나는 홀로 자취를 하면서 몇년을 안심하고 지낼 수 있었다. 그리고 거의 여자뿐인 이 건물의 세입자들은 나와 같이 소장님을 신뢰하고 있었다.


그를 마지막으로 보았을때가 언제였더라. 여느때처럼 가벼운 목례로 나는 마지막 인사를 해버렸던 것은 아닐까. 갑자기 권태롭기까지 했던 이 건물이 낯설어졌다. 이사를 가려다 결국 이렇게 안전한 곳을 또 찾긴 어렵겠다는 생각으로 재계약을 했는데 어쩐지 이곳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다.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 드는 밤이다.


나는 오년간 그의 이름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장례가 언제 어디서 치러졌는지 알리지 않은 집주인 아저씨가 조금 원망스러웠다. 굳이 알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 집주인 아저씨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곳에 가장 오래 세들어 살고 있는 사람인 나는 그래도 알았다면 기꺼이 조문을 갔을 것이다.


언제든 맥가이버처럼 무엇이든 고쳐주던 소장님. 코로나 조심하라며 아침마다 소독약으로 문을 닦아주시던 소장님. 언제나 부족한 것 없이 챙겨주시던 그런 소장님 가시는 길에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해 말할 수 없는 먹먹함이 몰려오는 밤이다. 비좁은 숙직실에서 참을 청하던 소장님이 생각난다. 오늘은 그를 위해 저버린지 오래인 기도를 해야겠다. 부디 좋은 곳에서 편히 잠드시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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