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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서 C Jul 30. 2024

퇴사를 하고 나는 쓰네

10년 5개월을 마무리하며


긴 시간 브런치를 방치했다. 핑계 같지만 그 사이 신변에 변화가 있었다. 올해 6월, 퇴사를 했다. 이유는 내내 바라왔던 이직이다.


헤드헌터로부터 처음 연락을 받았던 때로부터 오퍼레터를 받아보기까지 두 달이 걸렸다. 나는 어쩐지 확신이 들어 미리 인수인계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막상 가야 하나 라는 고민을 끝낼 수 없었다.


좋은 조건을 제시받고도 대체 왜 이 회사가 나를 이런 조건으로 고용할 생각을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또 막상 조건만 보고 이동해 적응하지 못하고 금방 그만 둘 경우를 생각하면 그 이후가 아득하기도 했다.


연초에 승진도 했고 이제 일이 손에 익을 대로 익은 상황에서 굳이 새로운 곳에 가서 처음부터 다시 적응해야 하는 것이 과연 맞나 고민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직하는 업계에 대한 이해나 정보가 부족한 것도 불안요소였다. 마침 한 로펌으로부터 실장급으로 영입하고 싶다는 제안도 받았다. 로펌 효율성을 올리는 방법을 기획하는 부서라고 해서 그동안 쌓은 경험들을 활용할 좋은 자리라고 생각이 들었지만, 기회가 풍년이라 고민으로 새벽녘에 잠을 깨 그냥 회사로 출근할 정도였다.


회사에 퇴사 사실을 전달한 그날은 구체적으로 말할 순 없지만 또 팀이 산으로 가고 있구나를 느끼게 해 준 어떤 상황을 마주한 날이었다.


아. 맞다.

나 회사 싫어했지.


뭘 고민하고 있던 건가 하는 아차 싶은 생각에 바로 팀장에게 퇴사의사와 마지막 출근일을 전달했다.


두려움이나 걱정이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후 주변으로부터 얼굴 좋아졌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품이 많이 들어 한번씩 짜증이 일던 업무는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즐거운 마음으로 처리할 수 있었고, 퇴사 전 정리해둬야 할 사건만 해도 몇십 개는 될 정도였지만 주변의 하소연을 들어주거나 나를 자신의 오퍼레이터로 생각하며 바뀐 규정을 일일이 설명해 주기를 바라는 선배나, 후배들 보기 창피한 줄 모르고 다 보이는 알력싸움을 자처하며 내 편 좀 들어달라는 사람들의 입장을 이해하는 척하는 일에서 이제 해방되겠구나 하는 기대감에 올라간 입꼬리가 내려올 줄 몰랐다.


퇴사 과정에서 회사에 정이 더 크게 떨어진 건 단연 인사팀 탓이었다.


-어디로 가죠?

-언제부터 준비한 거죠?

-어떤 루트로 알아본 거죠?

-굳이 이직처를 안 밝히는 이유는 뭐죠?


어쭙잖은 취조를 당하는 줄 알았다. 집행부 변호사에게 보고할 의무가 있으니 말해줘야 한다며 고압적으로 말했던 담당자에게 굳이 ‘집행부가 내 얼굴도 모르는데 그걸 궁금해한다고요? 궁금한 게 본인

아니고요?’라고 반문하지 않았다. 더 상대할 가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회사를 그만두는 이유에 대해 닮고 싶은 선배가 없기 때문(특히 너^^)이라고 답했다.


그래. 그동안 이곳의 직원이기 때문에 억지로 참아왔던 모든 무례와 이별이다. 그러나 마지막 출근일조차 나는 야근을 했다. 이주를 거의 야근을 했지만 당일 처리해야 할 메일이 또 쌓이는데, 퇴사자이니 오후 6시 이후에 계정이 사라진다고 해서 인사하고 싶은 모두에게 인사를 돌지도 못했다.


인간 도리도 못하게 하는 상황에 답답했지만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버텼다. 그렇게 모두 퇴근한 시간 이후 부랴부랴 책상과 물건들을 정리했다. 애정하는 동생과 마지막 퇴근길을 함께하며 마지막으로 사무실을 둘러봤다. 10년 5개월의 시간을 함께한, 청춘을 보낸 이곳을 나는 싫어하지만은 않았다.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많은 시행착오를 하며 배운 것도 그만큼 많았다. 한 번씩 실패한 관계들을 마주하며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때도 있었다. 막연이 바라왔던 목표를 이루고 나니 별거 아닌 일에 누군가를 너무 미워했구나 또 신경 써왔구나 하는 생각이 교차했다.


퇴사날 이후 주말 내내 밀린 잠을 잤다. 그리고 이 주간의 휴가를 보내고 지금 첫 출근을 한지 한 달째다. 연일 적응하느라 긴장을 하고 있지만 대체로 만족스럽다. 내가 이곳에서 어떤 좋은 인상을 남긴다면 그건 아마 전 직장에서의 경험 덕일 것이다.


최근 또 로펌비서 채용 시즌인지 조회 수가 늘고 있다. 혹 오해의 소지가 있다면 분명히 해두고 싶다. 나는 인간관계나 내 내면의 고민 때문에 회사가 싫었던 것이지 일 때문에 싫지는 않았다. 편견이 많긴 해도 일 자체로 로펌의 송무비서는 해볼 만한 꽤 재미있는 또 안정적인 직업이다. 물경력이라 말하는 사람이 많지만 이직한 산 증인도 여기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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