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여름 '히트 돔' l 과학단상
인구 1,000명의 마을이 갑자기 투명 돔에 갇힌다. 하늘에서 먼저 재앙이 시작된다. 비행기와 헬기가 폭발하고 추락한다. 심지어 날아가던 새까지 돔에 부딪혀 떨어진다. 재앙은 땅으로 내려온다. 평소처럼 도로를 타고 마을로 들어오려던 차가 보이지 않는 벽과 충돌한다. 드디어 마을 전역에 재앙이 엄습한다. 외부를 잇는 모든 연결망이 차단된 마을은 고립되고 혼돈으로 빠져든다. 스티븐 킹의 소설 <언더 더 돔>의 줄거리다.
70년 후 달에 도시가 건설된다. ‘아르테미스’라고 명명된 달 도시는 다섯 개의 거대한 버블 돔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돔에는 여느 도시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시설이 갖춰져 있다. 주택부터 사무실, 공장, 호텔, 영화관, 공원, 술집, 상하수도 시설에 심지어 19금 시설(?)까지. 돔은 6cm의 두께의 버블이 두 겹으로 외벽을 이룬다. 두 겹의 버블 사이에는 1m 두께로 암석이 채워져 있다. 앤디 위어의 SF 소설 <아르테미스>에 등장하는 달 도시의 모습이다.
만약 우리의 생활공간이 거대한 돔으로 갇히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곳은 과연 안전할까? <언더 더 돔>에서처럼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르고 허둥지둥하다 절망에 빠질 수도 있다. 돔 안의 세계를 지배하려는 사람도 나타날 것이다. <아르테미스>에서처럼 도시 전체를 위기에 빠뜨릴 수 있는 거대한 범죄와 음모에 직면할 수도 있다. 유쾌한 일이 생길 것 같지는 않다. 아무래도 막힌 곳보다는 열린 곳이 안전한 법이다.
안심하긴 이르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는 그만 거대한 돔에 갇히고 말았다. 일명 ‘히트 돔(Heat Dome)’이다. 대기권 중상층에 발달한 고기압이 오래 정체해 뜨거운 공기를 가둬놓으면서 기온이 일시적으로 급상승하는 현상이다. 고기압 기단(氣團)이 지구 북반구 전체를 마치 돔이나 뚜껑처럼 덮어 열을 가두는 것이다.
정말 덥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7월 셋째 주 대전의 최고 기온은 35℃에 육박했다. 이런 날씨가 열흘째 지속하고 있다. 앞으로 더 덥고, 불볕더위가 상당 기간 계속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다. 이 정도는 약과다. 경북 영천의 낮 기온이 38℃까지 올라갔고 대구·포항·강릉·제주 김녕 등은 36℃를 넘어섰다. 우리만 그런 게 아니다. 일본에도 폭염이 습격해 일부 지역이 40℃에 육박한다. 미국도 LA 인근의 기온이 관측 사상 최고인 48.9℃까지 치솟았다.
문제는 히트 돔이 일시적 현상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간도 길어지고 있다. 초강력 히트 돔이 지구 북반구를 덮쳤던 지난 2016년, 미국 26개 주에 폭염 경보가 발령됐다. 쿠웨이트의 한 지역은 기온이 54℃까지 올라갔다. 히트 돔과 관련해 과학자들이 합의한 결론은 없다. 하지만 상당수는 결국 지구 온난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데 동의한다. 이산화탄소와 메탄가스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지구가 더워지고 여기에 기압과 대류 조건이 결합하면서 히트 돔이 생긴다는 것이다. 온난화가 심해지만 히트 돔도 심해진다는 뜻이다. 지금도 너무 더운데, 더 덥다면, 얼마나 더울지 상상하기 어렵다.
지구 평균기온은 산업혁명 이전보다 이미 1℃ 정도 높아진 상태다. 1.5℃만 넘어도 일부 지역은 재앙에 가까운 피해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소설 속의 돔은 어느 날 거짓말처럼 사라지거나 몇 가지 문제에도 인류의 새로운 보금자리가 됐다. 히트 돔은 그럴 기미가 전혀 없다. 지구 전체가 히트 돔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하는 대재앙을 마주하기 전에 지금부터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너무 덥다.
by 책방아저씨
추: 이 글을 올리는 날은 38℃였고, 어제는 39℃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