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수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학생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지
그렇게 작은 몸에 어찌 그런 파워가 숨어있는지 기특하고 대견해요.
2008년, 교수님께 받은 메일 속 한 문장이다. 교수님이 좋아 열심히 들었던 수업인데 알아주신 것 같아 정말 기뻤다. 그리고 별것 아닌 이 문장은 10년 넘게 내 에너지를 가득 채워줬고, 흔들릴 때 쓰러지지 않는 자신감으로 남아주었다.
대학교 3학년 여름 방학. 몇 번인가 도서관에서 우연히 마주친 것을 시작으로 교수님과 나는 각별한 사이가 됐다. 함께 밥도 먹고, 차도 마시며 서로의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대학원 진학에 대한 고민을 털어 놓았고, 논문 발표로 세계 곳곳을 다니시던 교수님은 바쁜 일정 속에서도 늘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다. 그리고는 학자가 정말 잘 어울린다며 벌써부터 나를 'O 박사'라 불러 주셨다.
4학년이 되었을 때, 교수님의 조언에 따라 대학원 수업을 병행했다. 그러나 백과사전 두께의 원서로 된 책과 영어 수업에 놀라 지레 겁을 먹고 그만둬 버렸다. 교수님은 서두르지 말자고 응원해 주셨으나, 난 1학기를 마치자마자 도망치듯 휴학을 했다. 얼굴에 아쉬움을 감추지는 못하셨지만, 내 결정을 존중해 주셨다. 마음껏 새로운 것들을 겪어보고 나중에 다시 함께 공부하자고도 말해 주셨다. 죄송함과 부끄러운 마음에 한동안 연락을 드리지 못했다. 교수님도 학회 일정으로 바쁘신 듯했다. 그러다, 문자 한 통을 받았다. 마침 인턴십이 끝나갈 때라 다시 한번 진로를 의논하고 싶던 차였다. 반가운 마음에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그날, 교수님을 뵈러 간 곳은 이대 목동 병원이었다. 고인의 뜻에 따라 조의금은 받지 않습니다. 유언으로 남기셨다는 한마디에 늘 사려 깊던 교수님의 마음씨가 떠올라 눈물로 마지막 인사를 대신했다. 한낮에 벌어진 음주 운전 피해 사고였다.
13년이 지난 오늘.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이메일 계정에 접속했다. 흘러온 시간만큼 읽지 않은 7천 개의 메일이 쌓여 있었고, 그 뒤에 교수님과 나눈 이야기들이 남겨져 있었다. 보낸 메일함에는 교수님께 보낸 편지가 수신되지 않은 채 홀로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그리운 마음에 또다시 한참을 울어냈다.
우주의 티끌보다 못한 존재가 되어 그대로 소멸하고 싶은 순간이 있었다. 그 어느 날마다 나를 다시 남아 있게 해 준 것은 교수님의 그 한마디였다. 내 안에 무언가 하나는 있다는 믿음. 그것이 머저리 같은 나를 더 떨어지지 않게 붙잡아 주었다.
어쩌면 아직도 ‘O박사’를 응원하고 계실 나의 교수님.
어디선가 가만히 응원을 보내주고 계실 그 분을 떠올리며, 다시 한번 다짐한다. 부끄럽지 않은 마지막 제자가 되겠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