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 상담 센터,첫 번째기록
열이 나거나 기침을 하는 것도 아닌데 병원에 온 느낌이었다. 몸이 조금 무거울 뿐인데, 응급실에 들어온 기분. 평소에도 약간 (정말 약간) 엄살쟁이 인터라 끊임없이 내게 물었다. '진짜 문제 있는 거 맞지?'
"제가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데... 마음이 조금 이상해서요"
"구체적으로 그게 어떤 느낌일까요? 떠오르는 그대로 말씀하셔도 괜찮아요"
표면적으로 드러난 상황은 '무력감'이었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상태. 처음에는 게으름이 아주 독하게 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꼭 해야 하는 일'까지 손 놓고 있는 모습을 보며, 뭔가 다른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됐다.
"언제부터 그런 상황이 시작됐나요?"
3월, 아이가 기관에 다니기 시작하던 무렵이었다. 예민한 기질의 아이는 천천히, 그러나 자신의 속도대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갔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고요한 집이 불편했고, 작은 소리에도 화들짝 놀랐다. 온종일 마스크 하고 있을 아이를 떠올리면 편하게 숨 쉬는 것조차 어색해졌다.
그리고 '죄책감'이 들었다. 혹시 엄마와 떨어진 시간 동안 버림받았다고 생각하진 않을까, 나 하고 싶은 일하며 살겠다고 억지로 밀어 넣은 것은 아닐까, 마음에 상처가 남진 않을까... 꼬리를 무는 생각들을 하며 하는 일 없이 시간만 보냈다.
"아이가 느끼고 있을 거라 생각하는 그 감정을, 혹시 과거에 직접 느꼈던 적이 있나요?"
버림받았다는 생각, 마음의 상처, 외롭고 괴로운 마음... 있었다. 12살이던가. 부모님께서 막 식당을 개업하셨을 때다. 처음 해보는 장사에 IMF까지 겹쳐 부모님은 단 하루도 쉬지 못하고 가게를 나가셨다. 지금이야 그들의 고단함을 먼저 떠올리지만, 그때의 난 고작 초등학교를 졸업했을 뿐이었다.
마음 붙일 사람이 없었다. 함께 살던 할머니와는 사이가 나빴고, 오빠는 고3이었다. 친했던 친구들과는 중학생이 되며 멀어졌다. 응원해주고 안아줄 사람, 정서적 교류를 나눠 줄 엄마가 필요했다. 애석하게도 "지금 바빠. 나중에 이야기해"라는 말만 되돌아왔을 뿐이지만.
괴로웠다. 자주, 살기 싫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때부터 겉돌기 시작했다. 수시로 학교를 빠졌고, 친구들 집을 전전했다. 안에서는 엄마에 대한 원망을, 밖에서는 내 몸에 상처 내는 생활을 1년 간 이어갔다.
"살려고 많이 노력했네요. 잘 이겨낸 거예요."
자립을 시작한 아이가 불쌍하게 여겨졌던 것도, 죄책감을 느꼈던 것도, 그 때문에 새로운 일을 주저하게 됐던 것도 모두 12살 소녀의 마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어린 날의 내가 그랬듯, 엄마의 새로운 시작이 아이를 외롭고, 괴롭게 할까 두려웠던 것이다.
다 잊은 줄 알았다. 엄마와 관계가 회복되었기 때문에, 독립심 강한 아이로 잘 자랐기 때문에 다 괜찮아진 거라 믿었다. 그러나 감춰져 있던 여린 소녀는 내가 낳은 자식 앞에서 다시 한번 공포에 떨고 있었던 모양이다.
"설령 그때와 똑같은 상황이 온다 해도 아이가 그때의 OO 씨만큼 괴롭지는 않을 거예요. 그 아이의 마음을 알고 있으니까요. 걱정하지 말고 OO 씨 하고 싶은 일 이제 마음껏 해요"
첫 번째 상담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작은 딸기 케이크 하나를 샀다. 그리고 홀로 그 케이크를 다 먹었다. 오롯이 나를 위해, 나 혼자서, 나만을 위해 무언가를 한 것이 실로 오랜만이었다.
-에필로그-
"그때 네가 이야기를 시작하면 옆에서 보글보글 끓는 찌개가 보였어. 아빠는 배달 가방 들고 기다리고 있고... 유치원 때부터 종알종알 엄마한테 떠들던 너인데, 그때 엄마가 너무 미안해"
감히 누가, 그녀를 탓할 수 있으랴. 그저 나아지지 않던 우리의 형편이, 마음의 여유도 시간적 여유도 앗아간 탓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힘겨웠을 그때의 엄마를 살포시 끌어안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