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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지야 Feb 26. 2022

육아라는 왕관을 짊어지고서

예민한 부모를 위하여,

 아이의 두 번째 생일날을 잊지 못한다. 보랏빛 전기장판 위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있던 내 모습. 마치 출산하던 그날을 복기하듯 온몸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고통이었다. 


 하필 남편은 일을 빼고 나올 수 없던 상황이었다. 어떻게든 홀로 육아를 감당해 내야 했다. 흩어진 몸 조각을 엮어 아이의 똥 기저귀를 갈고 밥을 해 먹였다. 세수도 하지 못한 맨 얼굴의 기름기를 타고 안경이 미끄러져 내려왔다. 그마저 다시 올려 쓸 기운이 없어 반쯤 흐린 눈으로 반쯤 맑은 눈으로 물끄러미 창밖을 바라봤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동네. 도움을 부탁할 사람도 달려와 줄 사람도 없다는 것이 서글펐다. 길가의 누구라도 붙잡고 잠시만 아이를 돌봐 달라고 부탁하고 싶었다. 절박했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의 정성이 필요하다는 말을 실감했다. 미안한 마음과 흩어진 몸 조각이 선거를 코앞에 둔 유권자들처럼 큰소리로 자기주장을 내기 시작했다.

“아이 생일인데 종일 누워서 뭐 하는 거야? 파티 안 해?”

“나 지금 정말 아파 죽을 것 같다니까!”


 ‘엄마’라는 이름으로 간신히 버틴 날들을 보내고, 몸은 겨우 제자리를 찾아왔다. 그러나 고통으로 얼룩졌던 한 달의 시간 동안 벌어진 뼛조각 틈으로 슬며시 자리를 꿰차고 앉은 이들이 있었다. 불안과 두려움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집에서 쓰러지면, 갑자기 죽으면 아이는 어떻게 될까? 남편이 퇴근해 집에 올 때까지 아이 혼자 버틸 수 있을까? 깨어나지 않는 엄마를 흔들며 얼마나 많이 울까, 얼마나 무서울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점점 더 큰 원을 그리며 범위를 확장해 나갔다. 수면 장애가 왔다. 깨어나지 못 할까 봐 무의식의 세계로 빠져드는 것이 겁났다. 새벽 출근을 하는 남편에게 꼭 내가 숨을 쉬고 있는지 확인 후 나가 달라고 부탁했다. 몇 시간에 한 번씩 카톡을 보냈다. 내 카톡이 끊기면 꼭 전화해 확인해 달라고도 했다. 강박사고*와 강박 행동*이었다. 


 발버둥 칠수록 더 깊이 빠져드는 갯벌 속에 있는 것 같았다. 날 구제하려던 아이도 남편도 모두 함께 빠져 뒹굴고 있었다. 우리를 꺼내 줄 타인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때마침 대기를 걸어 두었던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왔다. 아이의 첫 사회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예견된 일인 듯 아이는 적응하지 못했다. 불안의 기질을 타고난 것인지, 엄마의 불안을 보고 답습한 것인지 모르겠다. 그때 우리는 완벽한 역 시너지를 이뤘다. 나의 불안이 아이에게 옮겼고, 아이의 불안이 다시 나에게 더 크게 전염되는 것이다. 어디서부터 끊어야 할지 알 수 없던 악순환의 고리. 결국 어린이집 등원을 포기하려 할 때, 선생님께서 내 손을 잡으셨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고, 조금만 더 아이를 믿고 기다려 보자고.


사람은 누구나 사회적으로 고립된 환경에서는 잘 지내기가 어렵다. 물론 아이를 돌보는 부모는 아이와 함께 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완전히 고립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어른과 함께 있을 때와 비교하면 사회적 상호작용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사회적 상호 작용은 우리가 매일 일정 분량 섭취해야 하는 음식과도 같다. 어쩌다가 하루 정도는 단식하 수도 있고 가끔은 간식으로 때울 수도 있지만, 대체로는 규칙적으로 식사를 해야 한다. 때로는 한 사람과, 때로는 여러 사람과 상호 작용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예민한 부모를 위한 심리수업] 일레인 N.아론, 청림라이프


 못 이기는 척 그 말을 따랐다. 2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늘 붙어 있던 아이와 나 사이. 서로 떨어져 있을 시간이 필요한 것은 비단 연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다. 내게는 혼자 있을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비명을 지르며 우는 아이를 뒤로하고 매정하게 돌아섰다. 눈물을 쏟으며, 언제 걸려올지 모르는 전화기를 손에 꼭 쥔 채 공원을 걸었다. 천천히 밥을 먹었다. 조용한 집 안에서 가만히 흘러가는 조각구름을 보기도 했다. 남편의 권유로 상담 센터도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마음속 불안감이 아주 서서히 잦아들었다. 적어도 내 신변에 문제가 생겼을 때, 도움 줄 사람들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안전 고리를 하나 장착한 기분이 들었다. 위로가 됐다. 내 몸과 마음을 돌보기 시작하며,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나에게 아이는 세상 그 무엇보다 더 소중하고 아름다운 존재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깨질까 떨어질까 망가질까 걱정하게 만드는 무거운 금빛 왕관이기도 했다. 그 화려한 왕관을 위태롭게 짊어지고 길을 걷는 것 같았다. 내가 아니면 누구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조금도 내려놓을 생각을 하지 못했던 육아라는 왕관. 뒤늦게 나를 돌아보기 시작하면서 알게 됐다. 곳곳에 왕관의 한 모퉁이를 잡고 힘써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나와 아이를 살피며 가정의 경제 활동을 전적으로 책임지고 있는 남편과 아이의 성향을 파악하고 천천히 기다려준 어린이집 선생님. 날 것의 우울과 분노를 온전히 받아준 상담 선생님과 같은 고민을 나누며 마음의 짐을 덜어준 친구들. 멀리 계시지만 위급한 일이 생기면 열일 제치고 언제든 달려와 줄 부모님까지. 물론 선두에서 온전한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하는 것은 여전히 ‘나’였지만, 왕관의 무게는 한결 가볍게 느껴졌다.



몸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자기 몸에 필요한 것에도 조금 더 관심을 기울일 수 있을 것이다. 예민한 부모라면 그래야 한다. 부모가 필요한 만큼 시간을 내어 자기 자신을 돌보고, 더불어 아플 때나 병원에 가봐야 할 때는 미루지 말아야 한다.

[예민한 부모를 위한 심리수업] 일레인 N.아론, 청림라이프



 그리고 딱 1년 뒤 오늘. 오늘은 아이의 세 번째 생일이었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아니면 정말 몸이 기억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번 달에도 급감하는 체력을 견디지 못하고 시들어가는 한 달을 보냈다. 또다시 뼈가 갈라지는 고통을 겪을 것 같은 두려움에 병원에 가 엑스레이를 비롯한 여러 검진을 받기도 했다. 지난 해만큼 몸이 아프진 않았지만, 무기력증이 와 심적으로 괴로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진행 중이다) 그러나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는 상황 속에서도, 며칠 후부터 아이는 또 다시 새로운 어린이집 교실에 적응해야 한다는 사실 속에서도, 한 가지 확실한 믿음만은 가지고 있게 됐다. 

 온 동네 사람들이 다 함께 아이를 키워주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육아라는 왕관이 나 혼자만의 무게는 아니라는 것. 나는 죽지 않을 것이고, 아이는 또 다시 잘 이겨낼 거라는 것.




*강박사고(obsession) : 바라지 않는 불안한 생각
*강박행동(compulsion) : 매우 반복적인 행동이나 정신 활동으로, 대게 강박사고로 인한 불안을 경감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수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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