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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지야 Mar 02. 2022

[부부싸움 이야기] 군만두를 물만두처럼 만들었다고!

도토리 싸움으로 산을 이루는 다람쥐 아내 이야기

5일, 120시간 


 지난 금요일부터 화요일까지. 우리 부부는 화장실 드나들 때 빼고 온 종일 얼굴을 맞대고 있었다. 기승하는 팬데믹에 계획했던 여행도 취소한 채 집에서 꼼-짝 않고, 그 시간들을 보낸 것이다. 그 중 4일은 아이도 함께였고 그 말인 즉슨, 15끼의 끼니를 책임져야 한다는 말이기도 했다.


 가계부를 쓰며 배달 음식은 최대한 자제하자! 생각했지만, 낮에 칼국수를 포장해 먹었다. 마침 비가 부슬부슬 내렸으니까, 칼국수는 죄가 없다. 양이 워낙 많은 집이라 셋 다 배가 두둑했다. 저녁 때가 다 되었어도 밥 생각이 없었다. 그래도 뭔가 먹어야 하니, 아이에게는 돈까스 덮밥을 만들어 주었고, 남편에게는 만두를 구워주기로 했다.

 

"에어프라이어 지금 못 쓰니까, 팬에 구워줄게"

"어- 그러면 그 백종원이 말한거 알지? 겉바속촉으로 알맞게 딱 해줘"


(살짝 귀찮았지만) 기꺼이, 그러겠노라 했다. 그 사이 남편은 아이에게 밥을 먹였다. 

팬에 기름을 두르고 만두를 올렸다. 옆에 놓인 주방 용품들을 정리했다. 밑면이 어느 정도 익었다 생각이 들었을 때, 물을 받아 팬에 부었다. 


"망했다. 물 너무 많이 넣었다."

"아........ 그럼 물 버리고 다시 해야지"

입으로는 대충 먹으라고 말했지만, 결국 물을 덜어내고 뚜껑을 닫았다.  


"이거... 오빠가 원하는 대로 안됐어. 못 먹겠으면 내가 먹을게"

라고 말하면서 나는 먹을 생각이 없었고 (배불렀다)

"아....... 됐어 괜찮아 그냥 먹을게"

라고 말하는 남편 얼굴에는 아쉬움이 가득 찼다.


그리고 접시에 만두를 덜어 남편 앞에 놔주는 순간

"군만두를 완전 물만두로 만들어 놨네"


아.............. 

좀 ...........

그냥...........

먹는다며...................


짜증이 났다. 결국 접시를 내 자리로 끌었다. 남편에게는 직접 '겉.바.속.촉'한 군만두를 정성스레 해 드시라고 말했다. 밉상, 진상. 한 끼 그냥 좀 대충 먹어주면 되지, 꼭 말을 그렇게 해야하나?

 

머리에 뿔 하나가 우뚝 섰지만, 갑자기 양념 만두가 먹고 싶다던 남편은 그 뿔을 보지 못했다.

뭐 결국 둘 다 짜증이 났다. 


잔치집 가서 이 집은 먹을 게 하나도 없네~ 하는 사람이랑 뭐가 다르냐! 는 나와,

군만두를 물만두처럼 해서 물만두 같다고 한 게 뭐가 문제냐! 는 남편.


그렇게 조금 더 투닥거리다가 그깟 만두 다시 해주마! 하고 불판 앞에 섰고, 그 와중에 아이 밥을 다 먹인 남편은 "안먹어!"를 외치며 방으로 쏠랑 들어갔다.

  

불 앞에 꼼짝 않고 서서 만두를 노려봤다. 밑면이 노릇해졌다. 물도 아주 조금씩 부어 넣고 뚜껑을 덮었다. 10분도 안되는 시간에 그렇게 애타게 찾던 [백종원식 겉.바.속.촉 군.만.두]가 완성됐다.  


정리 좀 나중에 하고, 처음부터 이렇게 맛있게 만들어 줄걸- 미안한 마음도 들고, 한번쯤 망친 만두도 먹어줄 수 있는 거 아니야? 배때기가 불렀네? 하는 마음도 들었다. 앞으로 우리 집에 만두란 없다! 생각하면서. 


그 윤기나는 만두를 남편 앞에 다시 놓아 주고, 샤워를 하러 들어갔다. 따듯한 물줄기를 한참 맞으며 만두는 머릿속에서 잊혀졌고, 남편의 실망한 표정만 기억에 남았다. 


남편이 내 솜씨를 타박하는 것 같아서 속상했구나. 

식구들 밥은 늘 잘 챙기고 싶은데, 남편이 실망하니 비난받는 기분이 들었구나.


함께 공부하는 언니에게 받은 욕구 목록표를 보며 나의 기분을 찾았다. 그럼에도 남편에게 서운한 마음은 남아 있었지만, (안먹는다던 만두를 순식간에 비워낸) 남편이 미안하다고 먼저 사과해 주어 기분이 풀렸다. 물론 앞으로 만두는 보이콧하겠다고 선언은 했지만.....



 살림에 영 솜씨가 없는 나는 엉망인 집안 꼴, 부실한 식탁, 밀린 빨래를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해 진다. 그 꼴을 남편이 정리까지 하고 있으면 뭐랄까, 마치 월급 루팡하는 기분이랄까? 

 

 워킹맘도 아니고 전업맘도 아닌 이 애매한 상황 속에서, 어쨌든 살림은 내 책임이자 내 영역이다. 내게 주어진 일에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여전히 괴롭고, 그래서 남편의 별 것 아닌 말에도 "만두하나 제대로 못 굽는 엉망진창 주부" 로 내 스스로를 포지셔닝 했던 것 같다. (아, 자격지심 쩔었네!)

 


인정 받는다는 것. 만두 하나에 이렇게까지 생각이 확장될 일인가 싶긴 하지만, 어쨌든 고민해 볼 문제임은 확실해졌다. 살림에서 인정받고 싶은지, 아닌지. 맞다면 더 확실히 해야하고, 아니라면 내 스스로 확실히 선을 그어야 할 것이다. (고민해 보나 마나 답은 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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