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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필름 카메라

구몬 선생님이 필요해 : 챌린지도 좋지만

by 꼬르따도 Mar 21. 2025

연말이 되면 전에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내 회사생활의 절반 이상을 몸담았던 현O차그룹사 시절의 지인들이다. 근데, 사실 나는 그곳에서의 기억이 좋지도 않을 뿐 아니라, 그 이후 그곳에서 부침없이 여전히 잘 지내는 사람들을 보는 것도 힘들다.


그리고 이직하여 다른 회사에서 팀장이나 임원으로 잘 나가는 과거 동료가 ‘직장 생활 다 똑같아’ 하면서 남이 깔아둔 젓가락을 자연스레 집어 드는 모습을 보는 것도 왠지 고깝다. 현대차 본진으로 지인 찬스로 들어간 동료가 본인 회사 자랑을 내비칠 때면 은근한 자격지심이 발동 한다. 아, 킹차 갓무직 좋은지 누가 모르냐고. 자기한테 잘 보이면 끌어주겠다는 말을 할 때면 못들은 척 고개를 숙이고 두 눈을 질끈 감는다. 어제 마침 킹차 서류 전형 탈락 문자를 받았다.


그렇지 말자고 그들을 만나러 가는 길 내내 다짐을 해봐도 막상 앉아 소주 한 잔을 기울이면, 어느새 얼었던 몸이 녹고, 혈류량은 늘고, 입고 있는 옷은 왜케 더운지 연신 손으로 부채질을 하다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꺼내는 말들은 미처 대뇌를 거칠 여유가 없다, 낮은 자존감과 못난 마음이 슬며시 고개를 드는데, 이미 늦었다. 내뱉는 말들을 내 스스로 제어할 수가 없다. 말들이 내 입밖을 빠져 나와 남들의 귀를 거쳐 순식간에 얼어붙은 그들의 표정을 보는 순간, 내가 내뱉은 말의 파급력을 비로소 깨닫는다. 동시에 적막한 분위기가 피부를 통해 감지된다. 그제서야 깨닫는 것이다. 집에 갈 시간이 됐다.


"그러게 누가 여기 나온댔어? 나온 댔냐고?"


사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자동차 고객사를 대상으로 생성형 AI 행사에 초대받을 때만 해도 기분이 무척 좋았다. 연말 종로, 사람들 사이로 흘러나오는 캐롤 음악과 퇴근길 집으로 향하는 가벼운 발걸음들, 연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상기된 표정들과 마침 연말을 축복하듯 하얗게 수북이 쌓인 눈들. 모든 것이 완벽한 날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는 마치 킹차에서 본인들의 제품을 이미 적용한 것과 같은 행사 제목으로 협력사를 초대했지만, 세미나 내용은 홍보 내용과는 사뭇 달랐다.


"아니 쎄오가 왜 킹차 갓무직 행사에 간거야? 킹차 입사했어?"


라는 말을 듣는 순간, 괜히 나왔다 여기 오지 말고 집에 가서 애들하고 루미큐브나 할껄. 왜 마소는 행사명을 킹차 생성형 AI 적용 사례라고 잡은 거야. 왜 나는 눈 오는 날 경복궁 앞에 있는 마소 본사에서 행사에 초대 받아 희희낙락하는 표정으로 셀카를 찍어, 오늘 만날 사람들에게 보냈을까. 사진에 찍힌 현수막엔 커다랗게 킹차 적용 생성형 AI 적용 사례 소개라고 적혀 있었다.


회사 자체가 나 자신은 아니지만, 만나면 킹차 얘기만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무슨 재미로 그 얘길 듣고, 무슨 주제로 이야기를 이어가야 할 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는다. 왜 마치 회사 브랜드가 본인 자신의 가치인 것 처럼, 협력사들도 이 정보를 알아야 미래에 생존할 수 있다면서, 의선이 형도 하지 않을 말들을 나는 저항도 못하고 마냥 듣고 있어야 하는 걸까. (그런 말 할꺼면 돈으로 주쇼.) 성과급의 크기가 자발적 노예를 생성하고, 회사에 대한 로열티는 연봉에 비례한다. 후배는 저 좀 땡겨 주시죠 하고 농담처럼 말을 던진다. 땡겨주라는 말은 나는 듣지 못하는 말이다.


K햄 본인이 추천해서 킹차로 데려간 다른 동료 이야기를 하는 순간,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실, 나는 지금의 회사로 K햄이 추천해서 들어왔다. 내가 회사로 들어오기 딱 일주일전 본인은 킹차로 간다고 했다. 그 어떤 귀띔도 없었다. 내게 미리 그 사실을 알렸으면 나는 이 회사에 들어오는 걸 재고했을 것이다. 내가 다녀보니 남에게 추천할 만한 회사는 아니었다. 회사를 퇴사해 오갈 곳 없는 지인이 있었는데 그에게도 차마 추천을 할 수 없었다. 조금 더 노력해서 더 좋은 곳 가시라. K햄도 지금 이 회사에서 같이 일하던 사람들이 죄다 퇴사해서 다니는 내내 힘들어 했다는 말을 지금 회사 동료를 통해 듣기도 했다. 본인도 만족하지 못한 회사를 왜 나에게 추천했을까. 누구는 킹차를 추천하고 누구는 킹차 협력사 추천을 하고. 왕후장상의 피가 따로 있나. 양반의 피가 따로 있냐고.    


근데, 비교해서 그렇지, 지금 회사가 나쁜 것은 아니다. 자세를 고쳐 앉고 마음을 바로 잡으면 장점이 보인다. 연구개발에 진심이라, 조용히 내 업무를 하고 연구를 하기에 최적의 회사이다. 다만, 자동차 업계 사이클이 좋아 다른 회사에서 성과급이 터져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낄 뿐이다. 전전회사에서 진급을 못해, 직급에 트라우마가 있었는데, 여기서는 벌써 부장 2년차다. 마냥 전전회사에 계속 있었으면 끽해봐야 과장 4년차나 차장 1년차다. 급여도 4년 전 그 망할 놈의 회사보다 60%가 넘게 올랐다. 스스로 가치를 증명해내면서 연봉과 직급으로 내 가치를 증명해 나가고 있었는데, 자동차 회사는 그보다 더 앞서가고 있었다. 급여로만 본다면, 그냥 가만히 있었으면 더 잘나갈 일이었다. 자동차 업계 산업 사이클이 마침 잭팟이 터진 것이다.


혼자서 지금 회사 사람들과 지낼때는 평화 그 자체였는데,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는 순간 파도가 일렁이고 급기야는 폭풍우가 쏟아졌다. 그래 나 같이 속이 좁은 사람은 싫은 사람들을 만나 뭘하나, 맘 편하고 서로 존중하고 적당히 선을 지키는 사람들을 만나 잔잔히 살아야지. 전전회사에서 내 못난 꼴을 이미 대내외적으로 다 보였기 때문에, 그들을 만나면 내 찌질한 성정이 드러난다. 지금은 나름 보람있게 존중받으면서 일하고 있는데.


그런 연유로 관계를 하나 둘 끊었다. 명분은 있었다. 전전회사에서 나를 괴롭혔던 팀장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그와중에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그와의 좋은 기억이 하나씩은 있는 것이다. 도움을 받은 일도 있단다. 누구는 동란으로 피죽 먹으며 하루살이 인생이고 매일이 피난길인데, 다른 사람들은 그때가 태평성대였단다. 박정희 시대가 이랬을까. 누군가에겐 조국의 영웅으로 불리고, 누군가에게는 철천지 원수잖아.


이게 제일 싫은 지점이다. 왜 누군가에게는 추억으로 기억되는 사람이 나에겐 악연 그 자체인걸까. '우리 만남은 악연'이라는 표현은 그가 메일에 쓴 단어이다. 그 메일에는 회사에서 웃지도 말라는 어처구니 없는 지시사항도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일말의 좋은 사람의 여지가 있었다면, 이건 앞서 말한 것처럼 내 처세의 잘못으로도 읽힐수 있는 지점이다. 그럼 나는 또 나에게 문제는 없었나 내 자신을 질책하고 반성을 하는 것이다. 그 당시에는 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도 없던 시절이다. 그런 연유로 그와의 좋은 기억이 1이라도 있는 이들을 밀쳐낸 것이다.


어떤 이는 그분이 돈을 먹었다는 사실을 대신 뒤집어쓰기도 했다. 어짜피 다른 회사 직원이니 본인에게는 피해가 없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죄를 뒤집어 쓸만큼 누군가에게는 신뢰를 받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나는 사실 감사 결과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감사하는 인원이 저 팀장 자르고 싶지 않냐고 소리 지를 때도, 나는 관심 없어요. 그런 일에 엮이고 싶지도 않고 당신과 엮이고 싶지도 않아요 꽥 했다. 괜한 감사 결과로 인해 나만 피해를 받았다고 생각한다. 괜히 짤려가지고. 나는 그가 짤릴 만큼 돈을 먹었다는 생각은 일절 하지 않는다. 그만한 배포가 없는 사람이다. 오해가 있었을 것이다.


**


지금은 국제 기구의 장이 된 대표님이 계신다. 우리 회사에 있다가 더 큰 그룹사로 전출을 가시는 날, 그분은 부러 그 날 아침 내게 메일을 남기셨다. 그리고 우리 팀을 찾아, '서 대리님 답변 남겼어요. 인사팀에서 합리적으로 처리해 줄꺼예요.'라는 말을 남기시고 회사를 떠나셨다.


메일 내용에는 '평가는 모든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수준의 합리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는 당위적인 문구가 있었다. 요즘 즐겨듣는 백예린의 나비효과의 가사에 '바보 같은 사랑을 했지, 하지만 사랑은 바보 같은 것' 이라는 가사가 있는데 그와 비슷한 문구이다. 하지만, 나는 대표님의 그 한마디가 그 어떤 금과옥조보다 귀하고, 예수님 말씀처럼 진실되고 진리에 가깝다고 여겼다.


회사 진급에 대한 인사 정책이 과거 8년의 인사 평가 기록에서 과거 4년의 인사 평가 기록으로 갑자기 바뀌었다. 나는 대개 연구원 시절 갖은 핍박과 격무를 견디고, 잠과 젊음을 포기하는 대신 회사의 업무 개선과 손익 기여를 위해 이 한 몸 바쳤다. (과거는 미화된다.) 그에 따라 응당 받아야 할 좋은 평가를 받았다. S가 두 개 있었다. 좋게 평가해 주신 분은 지금 서울대에서 특임교수를 하고 계신다. 작년엔 찾아뵙고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 분은 지나고보니 아쉬운 것 뿐이라는 말과 내가 당시 성과에 연연해서 알게 모르게 상처 준게 있다면 용서해 달라고 했다. 팀장은 과거 내 평가 기록이 좋기 때문에 최근의 평가는 M, 딱 중간 수준으로 줬다. 무난히 진급할 거라면서. 하지만 바뀐 평가 기록으로 인해 진급 점수에 한참 모자라게 되었다. 때마침 팀장과는 깊은 불화가 시작됐다. 개선의 여지가 없었다.


그래서 답답한 마음에 평가 제도에 대한 개선 요청을 대표님께 건의한 것이다. 때마침 대표님 직통 메일도 개설되어, 활발히 직원들과 소통하겠다는 취지를 천명한 때였다.


그 이후 발생한 일들은 인사팀 이 한마디로 대신하겠다.


"대표님께 투서를 보내셨어요?"


나는 건의지만, 그들은 투서라고 했다. 이 뉘앙스의 차이는 내 고난의 회사 생활의 Phase 2의 서막이었다.


**


집에 돌아오는 길, 강의를 듣는다. 사이버 대학원을 진학할까 말까 고민하다, 서류를 다 작성하고선 마지막 제출 버튼을 차마 누르지 못했다. 그놈의 가성비. 없는 집에서 태어나 모든 일에 가성비를 찾는다. 20대에 대학원은 꿈도 못꾸고, 어학연수는 남의 얘기였다. 4년 내내 과외를 했다.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했다. 지금은 그래도 여유는 있는데, 일반 대학원도 아니고 그깟 사이버 대학원 진학도 이렇게 벌벌 떤다.  


대신에 그만한 실력을 다른 곳에서 쌓기로 했다. 그래서 각종 챌린지에 도전하고 각종 온라인 강좌를 듣는다. 왕복 세시간의 통근 시간동안 생각없이 넷플릭스만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죄책감이 몰려온다. 이러고 넋놓고 있을 때가 아닌데 하는. 내가 듣는 온라인 강좌는 인프런에서 하는 강좌, 미션캠프에서 하는 강좌들인데 이는 대부분 미리 비용을 지불하고 강의를 다 듣고 과제를 완료하면 비용을 환불해 주는 구조다. 그렇게 파이썬 수업을 들었고, 온라인 마케팅, 책 출판 수업 등을 수강했다. 그리고 원티드에는 3개월 동안 글 30개 쓰는 챌린지에 성공해서 연말 네트워킹 행사에 초대도 받았다.


그렇게 끊임없이 뭔가를 해야만, 내가 뒤쳐진다는 생각에서 잠시나마 자유로울 수 있었다. 끊임없이 비교 경쟁 속에서 살아와서 혼자서 가만히, 고요하게, 멍때리며 있는 걸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어제는 논문을 완성했다. 그리고 금요일 오늘은 스벅에 들러 회사에서 이벤트로 받은 쿠폰으로 디카페인 커피를 마시면서 글을 쓴다.


바쁘게 살면, QT를 하며 묵상을 하는 시간도 까먹는다.  



**


미션캠프에서 3개월 전엔 필름 카메라로 30일의 일상을 순간을 포착하고, 그 중 잘나온 사진 하나를 A3 용지로 출력하는 미션을 수행했다. 집에는 그렇게 출력된 한겨울 미끄럼틀에서 놀고 있는 우리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표정이 담긴 사진이 집 중앙에 걸려있다. 부러 사진을 찍기 위해, 점심 시간에 회사에서 멀리 벗어나 제2판교 공사장을 찍기도 하고, 흘러가는 구름이나, 나부끼는 나뭇잎을 찍기도 했다.


잠시지만 순간을 잡아 필름 속에 묶어뒀다. 사진이 인화되는 이주일간 마음이 두근두근했다. 과연 어떤 사진들이 나올까. 현상된 사진에서 기대했던 것과 달리, 건질만한 사진은 사실 많지 않았다. 하지만 몇 사진은 두고두고 쳐다보고 일하는 일터에 붙여두고 시간 날 때마다 찬찬히 들여다볼만한 좋은 사진들이 나왔다. 그곳엔 환하게 웃고 있는, 팡 터지는 플래시에 반사된 맑은 아이의 둘째의 얼굴이 있다. 겨울 한강변을 달리는 수많은 차량의 불빛에 대비되는 유유히 흐르는 한강이 있다.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때는 필름 카메라에 익숙하지 않아 미동도 하지 않고, 행여나 새가 도망갈까 숨을 하나둘 참고, 가만가만 정성껏 사진을 찍었다. 평온하고 잠잠한 순간이었다.  


괜히 애꿎은 사람들을 미워하느니,

가끔은 필름 카메라를 꺼내 바쁜 마음을 달랠 일이다. 티없이 맑고 걱정없는 아이의 환한 얼굴을 사진에 담을 일이다. 잠시 아무것도 안하고 멈춰서도 괜찮다. 다 좋진 않지만 걔중에는 건질만한 좋은 것들이 있다. 어디에 있든 비관에 길을 내주지 않으면 도처에 좋은 것들이 있다. 그러니 좋은 눈을 가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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