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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두번째 생일이었다. 그날은 외부 교육을 듣고 있었는데, 회사 단톡방에 메시지가 하나 날아왔다.
"서대리님 생일 축하드립니다. 711호 회의실에 케잌 준비해뒀어요."
단톡방에는 실제로 케잌 사진이 있었다. 나는 만면에 웃음을 띠고, 감사하다는 답글을 달았다. 이어진 말은 생일 축하 준비를 했으니, 교육이 끝나면 회사에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마침 고향 친구들과의 모임은 내일이었고, 오늘은 혼자서 영화나 볼까 했는데 축하해준다고 하니 교육 끝나자마자 곧바로 회사로 향했다.
회사에 도착했다. 친분이 있는, 옆 팀 남대리는 "어 왜 왔어? 곧 퇴근 시간인데 집에 바로 가지" 말을 남기며 몇 분 후 퇴근을 했다. 마침 금요일이라 다섯시가 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하나 둘 직원들이 자리를 떴다. 우리 팀도 팀원들이 연달아 퇴근을 하고 여섯시가 되자 마침내 팀장과 나만 남게 되었다. 고요한 사무실에 어색한 침묵만 감돌았다. 팀에 우리 둘만 남게 되자 그제서야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는 없었구나 어렴풋하게 느낄 수 있었다. 눈치가 없는 편이다.
홀로 남아 멋쩍어서, 미뤄두었던 중요하지 않은 업무를 하는 둥 마는 둥 시간을 죽이고 있는 나를 힐끗 보던 팀장은,
"조금만 기다려. 내가 저녁 사줄께." 라고 말했다.
일곱시가 됐다. 팀장은 어디선가 전화를 받더니 약속이 있다면서 "미안, 급한 약속이 잡혔네. 다음에 먹자." 고 황급히 웃옷을 챙기고 자리를 떠버렸다.
회사에는 이제 나만 남았다. 벽에 걸린 벽시계 시침 소리가 유독 크게 들리는 듯 했다. 나는 좀체 지금의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오래전에 일요일 일요일 밤에 라는 프로그램에서 이경규가 가수 유열에게 샴푸를 계속 뿌리던 몰래 카메라 장면이 떠올랐다. 어린 나이에도 남을 괴롭히는 그 장면은 하나도 재밌지가 않았다. 이경규가 샴푸를 머리위에 몰래 짜내면서 카메라를 향해 웃고 있는 그 장면은 뭔가 기이하기까지 했다.
알고 보니 생일 케잌은 거짓이었다. 거짓말을 한 이유를 아직도 정확히는 모르겠다. 나름 어슴프레 이유를 추정하자면, 교육 중에도 회사로 복귀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기고 싶었던건 아닐까. 팀장은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이 기억이 어디까지 보정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이직한 회사에서 '나 회사에서 이런 사람까지 만나봤다.'의 사례로 이 이야기를 하면 어딘가 모르게 사람들이 말 수가 줄고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이 이야기는 그렇게 어느정도 내용에 살이 붙고 과장이 되었을거라고 믿고 싶다. 왜냐하면, 이건 팀장과 나만의 문제가 아니고 팀원들과 나와의 관계까지 확대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흔히들 사람들이 쉽게 얘기하길, 선입견에 기대어 왕따 피해자에게도 문제가 있다고 하지 않나. 같은 맥락으로 사람들이 모두 나를 속인거라면, 나에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진지하게 나를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내 잘못이 아니니 그럴 필요까진 없는데)
나는 친하게 지내던 동료들, 그리고 나를 따르던 후배들, 같이 일하던 선배들이 그 단톡방에서 거짓말하면서 '진짜 올까?' 하고 실험하던게 과연 무슨 재미가 있었을지 도통 모르겠다. 대체 무슨 마음들인지 상식선에서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누구하나 그러지 마시죠, 제안 하나 없었단 것도 믿기지가 않는다. 걔중에는 그래도 의협심이 있는 동료도 있었고 함께 회사 생활의 고충을 나누던 동료도 있었는데. 애써 그들을 대변해 보자면, 팀장이 부르라니까 진짜 축하하는 줄 알고 불렀겠지 하면서 그 의도에 별다른 의심을 가지지 않았을거라고 생각한다.
그 날 이후로 사람에 대한 신뢰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기버인지 테이커인지, 나에게 어떤 이익을 줄 사람인지 먼저 계산기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인류애가 바사삭 부서지고 다정한 마음은 개나주라지 하면서 마음속에서 작별을 고하고 있었다.
서른두번째 생일날은 퇴근하는데 마침 비가 왔다. 나는 내리는 비를 피하지 않고, 그대로 몸과 마음이 젖은 채로 집으로 터덜터덜 돌아왔다. 혼자 있고 싶지 않아, 내일 오기로 한 친구들을 내 자취방에 불렀지만 누구도 그 제안에 응답하지 않았다. 조용히, 금요일 심야 음악 방송을 의미 없이 틀어놓고 맥주 캔을 연달아 따서 마셨다.
굳이 생일날 불러서 내 생일을 망친 그 팀장은 그로부터 약 5년 후 협력사로부터 돈을 받고 회사에서 짤렸다. 감사가 내게 내민 협력사에서 향응접대로 제공한 룸싸롱 사진에는 우리 팀 사람들 일부와 영업팀, 개발팀 팀장 몇이 있었다.
서른 네번째 생일 즈음에 결혼을 앞두고 여자친구와 부산에서 형네 가족과 만나던 날에는, 팀장의 졸개인 파트장으로부터 이런 문자도 받았다.
"바쁜데 무슨 결혼이야. 너는 돌아오면 죽을 줄 알아."
상무님께 보고 자료를 급히 드려야 하는데, 그 작업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나뿐이었다. 그 파트장은 일주일동안 하루 18시간씩 일한 나를 일요일에도 '뭐해 일하러 가야지' 하면서 친절하게 혼자 살던 옥탑방까지 나를 데리러 차를 몰고 오던 사람이었다. 이런 사례는 셀 수 없이 많았다. 이사를 앞둔 날에도 전날 밤 늦게까지 일하고 홀로 새벽까지 짐을 싸야 했던 기억, 예비군 훈련을 마치고 회사로 돌아와 새벽까지 일하던 기억. 남들이 가는 교육과 출장은 박탈당하고, 팀 워크샵 날에도 컴퓨터 앞에 홀로 앉아 빨간 눈으로 새벽까지 밤을 지새우던 날들.
판교의 등대 역할을 했던 괴로운 격무의 시기는, 문재인 정부가 주 52시간으로 업무 시간을 제한하면서 끝이 난다. 거기에 더해 괴롭힘 방지법까지 등장해 노동자의 삶이 크게 개선되기 시작했다. 주 52시간 제도가 가져온, 거시적인 경제 파급효과까지는 모르겠지만, 미시적으로는 내 개인의 회사 생활 역사에서 이 법률만큼 강력하게 나의 삶을 바꾼 것은 없다.
업무에 치이고, 회사 밖에서는 이런저런 일들로 여러 상실들을 경험하면서 그 즈음에 나는 마음이 부쩍 건조해졌다. 삶에서 기쁨이라는 건 어떻게 솟아나는 것일까. 스스로 마음속에서 솟아나는 기쁨이라는 감정이 있기는 한 것일까. 사업계획 업무를 마치고 심야 택시를 타고 집에 도착하면, 가을 플라타너스 낙엽이 발에 밟혔다. 가을 햇볕에 바짝 건조해진 플라타너스 잎처럼, 내 마음도 밟히면 바로 바스라질 것 같았다.
그리고서 견디고 견디다 그 회사를 떠났다. 진급에 실패하고, 쫓기듯 직급이 없는 아이티 회사로 이직을 선택했다. 팀장이 짤리고, 아마 그 팀장과 사이가 안좋았던 나는 여러모로 평판이 안좋아진 듯 했다. 감사가 룸싸롱에서 찍힌 사진 속 인물들이 누군지 물어봐서, 나는 그에 답변한게 전부였지만 사람들의 생각은 다른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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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직해 온 아이티 회사에서는 일년동안 세명이 본인상으로 부고란에 이름을 올렸다. 일부는 회사의 부조리에서 기인했고, 그에 따른 고용노동부 감사 결과에 따라, 회사에서는 모든 직원들에게 10회기 무료 상담을 제공했다. 한 회기당 10만원짜리 비싼 상담이라고 했다. 점심 시간에 밥을 먹고 팀원들끼리 삼삼오오 커피를 마실때면, 나도 상담을 받고 마음이 평안해졌다는 주니어들의 간증이 잇달았다. 상담을 받는 것이 숨겨야 할 터부가 아니고 비싸게 제공되는 회사의 복지이고 이런 복지는 '누려야 제맛'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다. 나도 해가 지나기 전에 연 내 열번의 상담은 받아야 했기에 9월 말쯤 늦게나마 상담을 신청했다. 그리고 넉달에 걸쳐 10회기 상담을 마쳤다. 열번째 마지막 상담때는 상담 선생님이 나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을 허심탄회하게 말해 보라고 했다.
쑥스럽지만, 선생님과 라포가 깊게 형성되어 있었고, 마지막 수업이라고 생각하고 어렵게 입을 뗐다.
"쎄오야 수고 많았다. 없는 살림에(웃음) 혼자서 고군분투하면서 잘 왔다 여기까지. 직장에 들어가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도 하고 예쁜 아이도 낳아 가정도 이루고 기특하다, 정말. 특히 전에 만난 못된 사람들로부터 갖은 핍박과 횡포도 받았지만 포기하거나 뒤로 물러서지 않고 계속 나아가는 용기도 좋았다.(웃음) 아무도 인정못했지만 그건 용기 맞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이후 생각지도 못한 울음이 터져 말을 잇지 못했다.
상담 선생님이 대신 말을 이었다.
"쎄오야 그동안 열심히 달려오기만 하느라, 네 마음을 헤어리지 않아서 미안하다. 고생많았다. 대견하고, 고맙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잘해보자. 앞으로는 네 마음을 헤아리고 나 자신도 잘 챙길께."
결론적으로 이 상담은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그 이후 힘들 때마다 상담사 선생님께서 했던 말들을 복기해본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예요. 생활 속에서 순간순간 행복을 발견하고, 그걸 옆에 사람과 나누는 거예요.
퇴근 길에는 오늘 감사했던 일 많이도 말고 한가지만 떠올려보세요.
생각은 힘이 없어요. 예기치 않게 찾아오는 불쑥 떠오르는 생각들에게 말을 해보세요. 너는 힘이 없어 금방 지나갈꺼야.
상담선생님께서 말하길, 회사의 CEO, 중역들도 이 상담 센터에서 정기적으로 상담을 받는다고 했다. 그들은 시간이 없으니 효율적으로 상담을 받고, 일터로 바로 복귀를 한단다. 그리고 큰 경기를 앞둔 운동선수들도 정기적으로 심리상담을 받아 경기에 대한 부담감을 떨친다고 한다.
나는 CEO도 아니고 임원도 아니고 운동선수도 아니지만, 그들만큼 일터에서 시간을 보낸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스트레스도 받는다. 출퇴근, 식사 시간 다 포함하면 8시에 사무실 도착해서 저녁 9시에 집에 도착하니 족히 11시간을 밖에서 보내는 셈인데, 잠자고 씻는 시간 제외하면 깨어 있는 시간 대부분을 회사에서 보낸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 절대적인 시간의 총량안에 늘 평탄한 날들만 있는 건 아니다.
나에게 10회기 상담은 결코 충분한 시간은 아니었지만, '폭싹 속았수다'의 관식이처럼 가슴 아픈 일을 마음에 묵여두지 않고 누군가에게 속엣말을 털어놓을 수 있다는 거 자체가 한 발을 내디딘 용기였다.
감기에 걸리면 바로 집앞에 있는 서울대 출신 30년 경력의 이비인후과 의사선생님을 찾아가듯이, 마음이 아프면 신뢰할만한 상담 선생님을 찾아가거나, 정신과를 방문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것은 미리 상담을 받고 병원을 방문한 경험을 바탕으로 신뢰할 만한 곳을 터놓는게 좋다는 의미이다. 우물쭈물하지 않고, 아프면 어디로 가야지 하고 내 생활 반경의 공식을 만들어 놓는 것이다.
이건 갈까 말까 고민하고 갈팔질팡하는 결정 장애의 에너지를 덜어낼 수 있어 좋을 뿐 아니라, 배출하지 못한 마음의 에너지가 쌓여서 빵 터지기 직전에 고름을 짜내고 빨간 약을 발라 더 큰 병으로 번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다.
생일에 아무에게도 축하를 못받더라도 홀로 비를 맞게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축하해주지 않는 결혼식이더라도 남과 비교하며 비련의 주인공으로 나를 포장하지 않을 것이다. 빗물을 기꺼이 털어내고, 보란듯이 가지런한 이를 보이게 활짝 웃으면서 예쁜 아내의 손을 잡고 당당히 결혼식장에 입장하는 것이다. 10번의 상담을 통해 배운 지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