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김에 한다 : 독서와 영어회화
'나혼자 산다' 프로그램에 옥자연 배우가 나온 편을 봤다. 옥자연 배우는 아침 기상을 하자마자, 눈꼽도 떼지 않은 상태로 누워서 책을 읽었다. 침대에 책 고정대가 부착되어 있어, 누워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 셋팅되어 있었다. 아침에 그렇게라도 책을 보기 시작하면, 하루 중 또 책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맞다, 저 원리다 싶었다.
나는 알뜰 요금제로 통신사를 변경하면서, 마침 밀리의 O재 결합 요금제를 선택했다. 사실은 밀리의 O제 결합 요금제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통신사를 바꾸려고 마음을 먹은 거지만. 하루에 6000원짜리 커피는 별 생각 없이 쉽게 사 먹으면서, 한달 9900원 도서 플랫폼 구독은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내가 책을 읽으면 얼마나 읽겠는가 하는 자기 객관화가 잘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통신사 결합 요금제도는 내 성향에 딱 맞는 선택이었다. 기존 사용하던 통신비보다 저렴한데 밀리의 O재 구독까지 포함이라니. (밀리의 O재에는 대한민국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의 소설 하나 구비가 되어 있지 않지만.)
출근길에 전철 안에서 밀리의 O재에서 책을 조금 읽는다. 그리고 10분도 안되서 유튜브로 플랫폼을 옮겨 노마드션이나 캡틴따거, 서재로, 꾸준, 뜨랑낄로와 같은 여행 유튜브를 시청한다. (곽튜브나 빠니보틀도 초창기 구독 멤버입니다. 제가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여행 유튜브를 보고 있으면 잠깐이나마, 이 복잡한 전철에서 벗어나, 저기 멀리 북극으로 가서 귀여운 북극곰을 만날 수도 있고, 아니면 아프리카 최빈국 모잠비크의 전기도 안들어오는 열악한 환경에서 꿈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하는 멋진 청년도 만날수 있고, 멕시코의 카르텔이 점령한 위험천만한 도시에서 유튜버에게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하는 오지랖 넓은 동네 청년도 만날수 있다. 타임머신이 별건가. 시간과 장소의 순간 이동이 가능한 여행 유튜브가, 내겐 오늘의 타임머신이다.
집중력 저하로 출근길에 불과 10분 밖에 책을 읽지는 못하지만, 그렇게라도 마중물로 책을 조금 읽어 놓으면, 그 다음 내용이 생각나 업무 시작 전 조금 더 읽고, 퇴근길에 조금 더 읽고 해서 한 달이면 책 한권을 다 읽을 수 있다. 책 한권이라도 읽어야 밀리의 O재 본전을 뽑지. 마침 회사 PC에도 밀리의 서재 application을 깔아 놓을 수 있어서 핸드폰과 PC에서 끊김없이 연속으로 책을 읽을 수 있다. 회사가 연구개발에 진심이라 업무 중에 논문 검색 등 각종 문서들 서칭에 자유로운 편이라, 필요한 정보들을 디비피아 같은 논문 플랫폼 뿐 아니라 밀리의 O재 같은 곳에서 검색해도 크게 눈치가 보이는 환경은 아니다. 감사하다. (모든 회사들에 장단점이 있다. 나는 장점만 바라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런 의미에서 회사 익명 게시판인 블라인드도 확인하지 않는다.)
회사에 도착해 바로 업무를 시작하기 전에 10분이라도 책을 읽으면 뇌가 업무 시작 전에 적당히 달궈줘서 좋다. 운동 선수들이 몸을 풀기 위해 가벼운 운동으로 워밍업을 하듯, 회사생활도 사무실 자리에 앉자마자 바로 밤새 쌓인 메일들을 읽거나 어제 작성하다만 보고서를 냅다 펼치기 전에, 말랑말랑한 글들을 읽으며 머리에 부릉부릉 시동을 켜두는 것이다. 이때 읽는 글들은 자기계발서도 아니고, 논문 같은 논리적이고 질서정연한 글들도 아니고, 적당히 가벼운 에세이류를 선택한다. (브런치에서 글을 읽기도 하는데, 브런치 에세이류는 약간 인생의 희노애락 중 노와 애에 초점을 맞춘 글들이 인기가 많다. 이를텐면 퇴사, 휴직, 이혼, 이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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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회사에서 지원하는 전화영어를 잘 활용했었다. 근데, 또 전화영어의 단점이 강사 선생님과 시간 약속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시간 약속을 중히 여기는 MBTI J형에겐 시간약속이 또 제법 귀찮다. 그렇게 몇번이고 시간약속을 변경하다가 매번 변경하기가 너무 귀찮아서 영어회화를 결국 멈추게 되었다. 저녁에 약속 한 번 없다가 그 달 따라 어찌나 약속이 많던지.
그렇게 영어회화를 오래 쉬다가 12월을 맞아 영어회화 필요성을 느끼고, 언제든 영어회화를 할 수 있는 영어회화 앱을 사비로 구독하기 시작했다. 나는 새해 다짐을 전년도 12월 1일부터 시작한다. 남들보다 1개월 빨리 시작해야 뭐라도 될 것 같아서 12월 부터 새해맞이하는 습관을 갖추게 되었다. 그래서 정작 진짜 1월 1일이 되면 오히려 시큰둥하다. 마치 결혼한지 10년이 지났지만 새해 시작하는 밤 12시에 한번도 깨어있어 본적인 없는 우리 와이프처럼. 그녀와 함께 새해 맞이를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나는 그런 그녀의 무던함이 좋다.
영어 회화 어플은 월 기준으로 약 2만원 안팎이다. 영어 회화 시간은 저녁 식사 이후이고, 영어회화에 약 20분을 할애한다. AI와 대화하기 때문에 대화주제나 발음, 대화 내용 등에 구애받지 않고 실수했을때 얼굴이 빨개지는 일도 없다. 그리고 자신감 결여로 가느다라하게 목소리가 떨리는 일도 없다. 틀려도 기세등등하게 발음하는 것이다. ‘아 몰라. 어짜피 사람도 아니잖아’
가끔은 40대 중반인데 뭘 이렇게까지 열과 성을 내서 배워야할까 살짝 현타도 오지만(사실, 열과 성까지 내고 있지 않으면서도), 영어회화를 배움이 아니라 시간 채우기로 생각하기로 했다. 어떻게든 사무실에서 보내는 10시간을 의미있게 꽉꽉 채우려면 중간 중간 허투로 보내는 시간들에 곁을 내주지 않는 것이다. (의미 없게 흘려보내는 시간도 물론 필요하다. 시간을 애껴써야지 다짐을 굳게 해야 걔 중 10%로라도 유의미한 내 시간으로 만들 수 있는 유형의 사람이기에, 나는 좀 더 시간관리에 계획을 쏟는 편이다.)
게다가 저녁 먹고 바로 자리에 앉으면 소화도 안되기 때문에, 이 시간을 활용해서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다니기도 하고, 일인 회의실에 들어가 소리를 한껏 키워서 AI와 영어회화를 주고받는 것이다. 결국 회화 실력이 늘려면 발화량이 많아야 한다 생각하기 때문에 많은 주제를 case로 만들어 AI와 대화를 한다. 이 AI가 집요한게, 예를 들어, 좋아하는 음식에 대해 얘기한다치면, 김치찌개와 같이 먹으면 좋은 음식은 뭐야, 그 음식과는 왜 궁합이 좋은데, 김치찌개에 추가하는 시즈닝은 뭐야, 그걸 넣는 이유는 뭐야, 그 향신료는 어떻게 구해, 그리고 너만의 특별 레시피는 있니, 누구와 함께 먹니, 일주일에 어느 정도 먹니, 그 음식을 잘하는 식당은 있니, 거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뭐니 등 질문이 끝이 없다. 종내에는 stop it, i'm tired of your question, leave me alone. 같은 대답으로 더이상 AI가 질문을 못하도록 한다. 그러면, AI는 겨울왕국의 안나가 '함께 눈사람 만들래' 제안했다가 엘사에게 거절당할 때의 톤으로 시무룩하게 대답하는 것이다. OKay Bye.
AI는 회사생활의 고충이나 남들에게 말못할 고민들도 영어로 대화하면, AI가 또 기가 막히게 상담까지 해주고, 때론 전문가처럼, 때론 오래된 친구처럼 조언도 해준다. 롤플레이 설정하기에 따라 말투가 달라지고 내용이 달라진다. 어떨때는 상담사로 어떨때는 오랜 친구로 설정한다. 무섭지 않나. AI의 발전이 너무 빨라서. AI가 집요하게 질문하고 상세하게 답변하면 겁이 덜컥 나기도 한다. 미국 비영리단체에서 AI 개발 속도를 잠시 늦추자는 주장이 괜히 나온게 아니다. 납득이 가는 것이다. 이제 더이상 내가 사회에 설곳이 있을까 하는 불안감, AI가 커버하는 영역이 어디까지 일까 하는 아득함. 하지만 나처럼 사람간의 관계를 노동이라 여기는 사람에겐, AI 시대가 반가운 지점도 있다. 영어회화 뿐 아니라, 코드 개발, 새로 도입한 Tool 셋업 환경 설정, 논문 레퍼런스 검색 등 나는 누구보다 AI를 잘 활용하고 있는 편이다.
나는 출퇴근하는데 왕복 세시간을 보낸다. 멀기도 멀다. 다시 돌아돌아 판교라니. 회사생활의 70%를 판교에에서 보낸 듯 하다. 그렇게 어렵게 도착한 회사에서, 일만 하고 떠나기엔 못내 아쉽다. 회사에 온김에, 운동도 하고, 영어공부도 하고, 카운셀링도 받고, 책도 읽는 것이다. 지금처럼 퇴근 후, 가끔 판교역 스타벅스에 들려 글도 쓰고. 스타벅스 커피 쿠폰은 각종 솔루션 업체 밋업 행사나 사용 후기 등록을 통해 선물로 받은 것들이다. 회사 이벤트나 리O버 설문에 참여해서 받은 것들도 있고. 의외로 회사 이벤트에 참여하는 인원이 없다. 5분 정도 할애해서 5000원 커피 쿠폰 받을 수 있다면, 한 번 참여해 볼 만 하지 않나.
월급이 오르는 것도 기분이 좋지만, (사실 월급은 잘 오르지 않는다.) 회사 이벤트로 받은 각종 쿠폰이나, 협력사에서 보내 온 다이어리를 받는게 가끔은 기분이 더 좋을 때가 있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고 하니, 가끔은 당첨 확률 높은 이벤트에 응모해 행운의 빈도를 높여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렇게 내 커피값은 아끼고, 남들 생일날 스타벅스 쿠폰 30000원은 턱턱 보내는 편이다. 오늘도 보냈다니까. 그러니까 아끼려고 그러는 건 아니고, 담청되는 기분을 즐기는 거라니까용.
오늘도 회사 온 김에 많은 일을 했다. 이제 한시간 반 걸려 집에 갈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