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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손보다 게으른 벱이여

유일하게 주어진 자유 시간 : 점심 운동

by 꼬르따도

어느날 등산복을 입고 온 리더에게 이렇게 말했다. “등산복 입고 오지 마세요. 이러면 회사가 산으로 간다고 오해해요.” 농담조로 얘기했지만 회사를 바라보는 시각은 비슷하다. 우리는 물리적으로는 회사에 가는 거지만, 마음은 산에 간다고 생각해보자. 어느날은 헬스장에 간다, 어느날은 러닝 트랙에 간다고 생각하면 회사 가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질 수도.


내가 다니는 회사는, 회사 창밖으로 눈을 돌리면 실제로 청계산이 보인다. 그러니 등산복을 입고 와도 납득 가능. 마침 산 등성이 위에 하얀 구름이 두둥실 떠 있을라치면, 잠깐 풍경을 바라보며 멍때리기에 더할나위 없이 좋은 환경이 된다. 눈 오는 날이면 마치 솔거가 검은색 붓으로 한지에 쓱쓱 그려내 여백을 하얗게 남겨놓은 것처럼, 창 밖 풍경이 산수화가 따로 없다. 작년 겨울에 폭설이 왔을때, 나만 회사로 출근을 했다. 리더가 단체 카카오톡으로 오늘은 재택하라고 권장을 했는데, 그 메시지를 봤을때는 이미 전철에 올라선 이후였다.


그때 마침 흑백요리사에 푹 빠져 있던 때였는데, 에드워드리가 경연 중에 했던 명언 중에 이런 말이 있다.

"가끔은 '잠깐만 돌아가서 뭔가 고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하지만 한 번 걷기 시작하면 끝까지 걸어야 하죠."

이 명언을 변형해, 다음과 같이 톡을 보냈다.

"이미 전철에 올라 탔습니다. 돌아가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 이미 올라탄 이상 끝까지 가보겠습니다."


딸아이에는 늘 이렇게 말을 한다.

"이미 눈높이에 왔습니다. 돌아가서 동생이랑 놀고 싶다는 생각이 들겠지만, 이미 왔으니 두시간은 꼼짝없이 공부를 해야 합니다."


그렇게 혼자서 회사를 지키면서, 눈 쌓인 청계산을 바라보며 따뜻한 커피를 마시는데 그 날이 회사생활 중 제일 행복한 날로 기억한다. 회사에 아무도 없지, 그래서 업무에 대한 부담도 덜하고, 집 밖에 있으니 육아에서도 해방되고. 눈에 쌓인 생경한 풍경들을 사진으로 찍으며 지인들에게도 보내고 인스타에도 사진을 올렸다. 인스타엔 '이런 빅이벤트 못참지'라는 코멘트와 함께 차도가 막혀 버스에서 중간에 내려, 눈길을 헤쳐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올렸다. 팀에서는 악천후에도 회사에 온 성실한 직원으로 또 기억되겠지.


그렇게 청계산을 멀리서 하나의 피사체로 바라만 보다가 언젠가는 날잡고 청계산 입구까지 뛰어 가 봤다. 도대체 저 거리가 어느정도나 되는 것일까, 청계산 자락에 위치한 저 건물은 또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이 목구멍까지 차 올라와서. 멀어 보이는 것과는 달리, 의외로 왕복 3km 남짓 뛰어갈 만한 거리였다. 승용차 차량 백미러에 쓰여 있는 문구처럼, 실제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에 있었다.


울 어머니가 밭일 하면서 깨달은 이치와 비슷하다. 눈은 손보다 게으른 벱이여. 눈으로 보면 거리가 까마득해보이지만,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면 의외로 가까운 것이다. 눈으로 재지 말고 일단 해보라는 의미이다.


"엄마 이거 오늘 다 딸 수 있는 거여? 집에 언능 가자"

눈으로 오늘 수확해야 하는 무화과를 하나하나 헤아려보면 끝이없어 보이지만, 실제로 따다보면 해가 지기 전에 오늘 수확해야 할 무화과를 어느새 다 거둬 들일 수 있었다.


"우와 이걸 우리가 다했다잉"

어렸을때 우리집엔 외삼촌이 물려준 커다란 무화과 밭이 바닷가 근처에 있었다. 무화과는 비에 맞으면 당도가 떨어지고 금방 물러지기 때문에 과실의 가치가 떨어지기 전에, 기상변화를 확인하고 비가 오기 전 빨리 수확을 해야 한다.


한 번 뛰어 보니, 뛰는 게 여간 재미있는게 아니다. 회사에 러닝화를 신고 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차하면 뛰는 것이다. 운동은 따로 시간내서 하는게 아니라 회사 온 김에 하는 것이다.


판교역에서 늘상 셔틀을 타고 출근할 때는, 판교역에서 회사까지의 거리가 꽤나 멀어 보였다. 그러다, 복직을 앞두고 회사에 한 번 방문할 일이 있어 (연결되는 교통편이 애매해서) 걸어가는데 생각보다 가까운 것이다. 40분만에 도착을 했다. 네이버 지도에서 거리를 재보니 거리가 3km 정도 밖에 안된다. 이정도 거리면 달려서 20분 내에 도착 가능한 거리다.

그 이후, 가끔 시간 압박이 적은 퇴근길에 판교역까지 걷거나 뛰어 가게 되었다.


러닝화를 선택할 때는 ‘나야 러닝화’하고 존재감이 뚜렷한 우사인 볼트 스타일의 화려한 것보다는 회사에 신고가도 TPO에 크게 어긋나지 않게, 무채색의 러닝화를 고른다. 실제로 회사에서 스트레스 많이 받는 날이면, 점심에 잠깐 나가 청계산 입구까지 왕복으로 삼십분 정도 뛰고 오기도 한다. 뛰다 보면, 방금 내가 고민하던게 뭐였더라, 그게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일인가 싶어지기도 한다. 사실 숨이차고 힘들면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자연스레 일과 나를 한발짝 거리를 두게 되는 것이다.


판교 IT인들의 심금을 울렸던 장류진의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도 비슷한 대사가 나온다.


”코드를 좀 멀리서 보면 어때요?”

”자기가 짠 코드랑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버그는, 그냥 버그죠. 버그가 케빈을 갉아먹는 건 아니니까.”


그렇다. 일 자체가 내가 될 수 없다. 일 자체가 나를 갉아먹어서는 안된다. 나는 이 생각을 마음에 새겼다. 그래서 예전처럼 업무가 내 머릿속을 하루종일 어지럽게 하지 않는다. 딱 끊어내는 법을 나름 터득한 셈이다. 머리가 복잡할 때는 잠깐 사무실 밖으로 나가 빠른 걸음으로 걸으면서 '전두엽 자극'이라는 메시지와, 발바닥이 땅에 닿는 느낌에만 집중해 보자. 효과가 있다.


회사 업무로 머리를 감싸며 고민하는 동료에게 비슷한 류의 말을 했다가 “어떻게 그래요? 프로젝트 망하게 생겼는데.”라는 답변을 듣기도 했다. 신경써서 위로해 준건데, 자기 일 아니라고 세상 속 편하게 말하는 얄미운 사람이 된 것이다. 그러니 조언도 때와 장소를 보고 조심히 해야 한다.


저런 되도 않는 조언하고, 빨리 퇴근해버리면 진짜 미운 사람 되기 십상이다. 내가 삼개월간 매일 밤 열두시 넘어 야근하고 있을때, ‘이게 그렇게 매일 야근할만한 일인가’ 하고 말하면서 퇴근하는 동료가 어찌나 밉던지. 자기딴에는 먼저 퇴근하는게 멋쩍어서 하는 얘기였겠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단지 생각이 짧고 배려가 없는 사람 같았다.


프로젝트나 과다한 업무량으로 밤낮 고생하는 동료가 있으면, 업무가 달라 업무를 나눠가질수는 없을지라도, 가끔은 눈치껏, 함께 늦게 퇴근하는 정도의 동료애는 발휘하는 것이 좋다. 내가 도울만한 일은 따로 없을까요? 라는 말도 더하면서.


점심 시간은 회사에서 유일하게 내가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이다. 주니어때는 팀 사람들과 삼삼오오 모여 시덥잖은 이야기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시계를 보고 어 점심 시간 끝나가네 하며 후다닥 사무실로 복귀하곤 했다. 그것도 동료들과 우정을 나누기 때문에 나쁘지만은 않은데, 이 점심 시간을 산책이나 러닝으로 채우고 사무실로 돌아오면 훨씬 업무에 더 집중도 잘되고, 몸에 활력이 도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사실, 더 이상 점심 시간 수다 모임에 나이 든 사람을 반기지 않는 이유도 있다. 그냥 이럴 때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산책을 하는게 나을지도.)


바쁜 시간을 쪼개 몸을 움직였구나 하는 사실에, 내 몸에 미안한 마음도 덜하고. 스마트워치로 체크해 보면, 점심에 한 번 산책을 다녀온 것만으로도 이제 오후 한시인데 벌써 6000걸음을 훌쩍 넘겼다. 아니 오늘 얼마나 더 걸으려고 벌써 부터 이런 페이스야, 너스레를 떨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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