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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순위를 한 칸만 앞으로

비혼주의자가 아니라면 피하지 말 것 : 결혼

by 꼬르따도

회사생활의 목표를 중간만 하자로 잡았다. 크게 회사에서 뭐가 되고 싶거나, 뭘 이루고 싶은 욕심은 없다. 앞서 언급했듯, 현O자동차그룹사에서 일할 때 고객사로 부터 돈을 먹고 짤린 못된 팀장과 그의 졸개들을 만난 덕에 회사생활이 꼬일대로 꼬였다. 회사에 온 감사를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내가 밤낮 야근하던 그 시기에 그들은 룸살롱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단다. 그렇게 내게 일을 떠넘기고 그들은 업체에게 향응접대를 받아왔다.


모르면 좋았을 일을 알게되자, 꼬인 타래를 하나하나 바로 잡으려고 애쓰게 되었다. 진실은 결국 드러나고, 정의는 이긴다고 순진하게 생각했다. 인실좆(인생은 실전이야 좆만아)이라는 정의구현을 의미하는 비속어가 유행하고 인증도 뒤따르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억울하고 서러운 마음에 제딴에는 논리적으로 증명한다 생각했는데, 남들 보기에는 감정적으로 보였는지 풀려던 타래는 더 미궁에 빠져버렸다. 애쓰지 말고 그냥 시간에 맡기면 될 일이었다.


이것도 지나고보니 깨달은 것이지 당시의 나로 돌아가면 그와 같이 행동하지 않을 거란 자신이 없다. 나는 늘 그렇듯, 그 당시에도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우직하고 충실히 한 것 뿐이다.


회사는 사실 증명에 큰 관심이 없다. 회사는 윤리 공동체도 아니고 친목을 도모하는 동아리도 아니다. 그랬어요 힘들었겠다 우쭈쭈하면서 우는 아이에게 떡을 더 주는 곳은 더더욱 아니다. 일견 보이기엔 다른 이들에게는 떡을 덥썩 주는 듯 보이지만 그 떡은 내게는 돌아오지 않는다. 인생이 그런 것이다.


아 몰라 다 집어쳐 하는 마음이 되어 오랜 시간 의욕을 잃었다. 그리고 진급에 세번이나 떨어졌다. 진급자 중에는 그의 졸개 무리도 있었다. 부당하다 느꼈다. 하지만, 회사 입장에서 보면 불만 있고 능력 있는(능력도 없지만. 말하자면) 사람보다, 불만 없고 회사에 순종하는 사람이 더 필요하다 싶다. 처음부터 불만 있는 사람이 어딨겠냐 어그러진 운동장을 바로 잡고 과도한 업무량을 처리하며 불법을 행했던 카르텔에 대항해 고군분투 하느라 나가 떨어져 불만이 생긴 것 뿐이라고 항변해보지만 쉽지 않다. 그렇게 나가 떨어져서 결국 이직을 택했다.


이 아픈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결론이, 처음부터 '중간만 하자'로 회사 생활의 모토를 정할껄 그랬다, 너무 열심히 하지 말껄 그랬다,이다.


그렇다면 회사 생활 뿐 아니라 인생에서 중간만 가기 위한 첫번째 관문은 무엇일까. 더 밑으로 떨어지지 않게, 과거의 실패했던 값을 보정해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전진하게 뒤를 받쳐주는 건 무엇일까.


이 관문에 대한 힌트를 블라인드에 내가 쓴 댓글로 대신한다. 요새 이런 이야길 꺼내면 꼰대 소리 듣기 십상인 걸 안다. 하지만, 내새울 것 없는 내가 그나마 사회에서 중간은 간다고 말하는 지점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블라인드의 질문은 이랬다.


결혼에 자신이 없어 1년 사귄 남자와 헤어졌는데, 헤어진지 6개월만에 그 남자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었단다. 어떻게 그러냐고 남자들은 그럴 수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아직도 미련이 남았는데 본인의 용기 부족으로 좋은 남자를 놓친거 같다는 후회도 덧붙였다.


내가 남긴 답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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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적령기에 만나는 사람이 제 짝이야. 결혼 하겠다고 서로 마음만 먹으면 결정사에서 만나 삼개월만에 결혼도 하는 걸 뭐. 쓰니 입장도 이해가 됨. 결혼 무섭지 나도 무서웠어. 하지만 한 발 내딛으면 아무것도 아니란 걸 언젠가는 알게 될꺼야. 남들 사는 것처럼 사는 게 제일 마음이 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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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중간만 가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바로 결혼이고 가정을 만드는 것이다. 핵심은, 남들 사는 것처럼 사는 게 제일 마음이 편하다는 것.


직장인들은 우스개소리로 '대출을 더 받아야 회사에 더 충실하게 된다, 자동차나 집을 사야 회사 생활에 동기부여가 된다.' 는 말을 종종 한다. 직장생활하면서 한번 쯤 들어봤을 것이다.


재작년 겨울에 삼십대 중반인 회사 후배와 술을 먹다가 결혼 생각이 있는 여친이 있으면 앞뒤 재지 말고 어떻게든 잡아 결혼을 하라고 조언했다. 우리 외모가 차은우나 변우석이 아닌 이상, 우리 재산이 머스크나 이재용이 아닌 이상, 나이 마흔 넘어 홀로 있으면 쓸쓸하고 보기 좋지 않다고. 요새 결혼이 필수는 아니지만 적어도 중간 정도로 인생을 꾸려가려면, 남들이 하는 거는 다 하면서 사는게 좋다. 결혼하면 책임감에 회사 생활에 더 충실하게 된다고도 조언했다.


아내에게 줄곧 가스라이팅 당하는 게 하나 있다. (그렇다고 아예 없는 얘기도 아니라서 틀리다고는 말 못하겠다.) '나 안만났으면 지금까지 정자동 옥탑방에서 맥주 마시면서 무한도전이나 보고 있었겠지. 혼자 낄낄 대다 맞은편 거울에 히죽대는 본인 모습 비치는 거 보면서 아 깜짝이야 화들짝 놀라면서'.


위에 말 중에 고쳐주고 싶은 표현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이를테면 ‘무한도전이나’ 처럼 희대의 레전드 프로그램을 비하하는 말투나, 맞은편 거울보고 화들짝 놀란다는 것. 우연히 거울에 비치는 모습보고 화들짝 놀란 적은 없다. 거참 희미하게 생겼네 라고는 늘 생각하지만. 그리고 혼자 있는게 뭐 어때서, 하고 싶은 거 하고 오로지 날 위해서만 쓰고 싶은 돈 쓰면 즐겁지 뭐.


그래 물론 자유롭고 내 시간에 내 취미를 즐기면서 재미야 있을 수 있지만, 삶에서 얻을 수 있는 중요한 본질을 놓치고 사는 건 아닌가 사는 내내 찝찝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런 얘기 요새 시대에 하는 게 쉽지 않은 걸 안다.


회사 생활 백날 해봐라 서울에 아파트 하나 살 수 있나 같은 자조적인 말도 들리고. 누구에겐 결혼도 배부른 소리라는 것도 안다.


뭐 할말은 없지만 결혼식날 부모님이 부조금 절반을 가져 가신 걸로 우리집의 재정상태를 대신하겠다. 결혼할 때 말그대로 단돈 1원 한 푼도 지원을 못받았다. 내가 번 돈에 누나에게 빌린 돈을 보태 전세로 오피스텔에서 신혼을 시작했다. (아래 유자차 글 참고) 잘 사는 사람들이나 집을 사서 신혼을 시작하는 이들과는 출발선이 달라 마냥 평탄한 생활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버겁지만도 않다. 인생에 헤쳐나가야 할, 감당할 수 있는 허들이 있는게 인생을 심심하지 않게 해주지 않을까. 적당한 허들은 감사한 일이다.


결혼한지 10년이 지났지만 10년전에 비해 지금 시대가 더 안좋는 걸 체감한다. 물가는 치솟고 아파트값은 천정부지. 90년대생보다 10년빨리 태어난 걸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할 지.


하지만 그런 시대적인 상황이 빚어낸 패배적인 말들에 지지 말자. 진부한 말이지만, 언제나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법이다.


그리고 지탄받기 좋은 말 하나를 후배에게 덧붙였는데(남자끼리고, 친분이 있으니 하는 말이었음), 결혼 생각이 있고 서로 아이도 원하는게 합의가 되었다면 혼전임신도 나쁘지 않다. 나이 먹어 결혼해서 아이 만들려고 하면 바로 만들어지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더 조급하다. 비용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모든 면에서 한살이라도 어릴 때, 아이를 만드는게 낫다.


우리 부부도 첫 아이 가지는데 4년이 걸렸다. 유산 두번에 시험관 시술로 결국 아이가 생겼다.


나는 휴직 중이었는데 후배와의 술자리 이후 5개월인가 후에 그 후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결혼 전에 임신에 성공했단다. 임종을 앞둔 아버지께도 2세 소식을 전했고 그 직후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효도할 수 있었다고 내 조언을 고마워했다. 임신 소식을 알고 나서 바로 예식장도 예약을 했단다.


학업, 졸업, 취업, 결혼, 육아 어찌보면 이런게 인생의 퀘스트처럼 하나하나 깨뜨려야 하는 숙제처럼 보일 수 있다. 그 숙제를 안해도 그만이긴 하지만, 해야 한다면, 하고 싶다면 한시라도 빨리 하고 그 부담감에서 자유를 얻는게 좋다고 생각한다. 때를 놓치면 그 시기는 다시 돌아오지도 않고, 놓친 그 시간을 극복하려면 갑절의 노력이 필요할 수도 있다.


40대 중반되어 주위를 둘러보니 그게 어느 정도 보여서 하는 말이다. 사업 번창이나 회사 중역, 전문직으로 잘나가던 미혼의 친구들도 40대 중반이 되면 기혼자 친구들과의 만남이 뜸해지고, 단톡방에서도 부쩍 대화가 줄어든다. 물론 아이를 키우는 친구들과 삶의 형태와 방향이 달라져서이기도 하고 대화의 핀트가 조금씩 엇나가서이기도 하지만.


30대엔 나도 잘나가는 미혼의 친구들이 부러웠다. 사업에 성공한 친구 곁에서 그 노하우를 얻고자 기웃거리며 노력하던 때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물론 돈이 많으면 좋기야 하겠지만, 그들이 천만금을 가지고 있다해도 나는 그들이 전처럼 부럽지 않다.


삐걱대고 서툴대는 일상이고 모자란 아빠이자 남편이지만, 지금 내 가정의 울타리가 너무 소중하다. 전투육아를 통해 얻은 아내와의 끈끈한 전우애와(맞벌이로 아이 둘을 키우는데 양가 부모 친척 누구의 도움 1도 못받았다),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사계절의 변화를 아이의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보면서,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그들을 보는 기쁨은 그 어떤 다른 삶의 경험과도 바꾸고 싶지 않다.


사회생활에선 원하는 결과가 안나오고 때론 남들이 보기에 실패로 보일지라도 여기에서 더 뒤로 물러서지 않게, 뒷걸음질 치지 않게 값을 보정해주는 역할을 가정이 해준다. 백미터 달리기에서 반발력으로 앞으로 빨리 뛰어갈 수 있게, 스타트라인의 발을 고정해주는 장치처럼.


잊지 말자 내 외모가 연예인급으로 수려한게 아니라면, 내 재산이나 직업이 일론 머스크급이 아니라면, 결혼은 남의 얘기라고 더이상 뒤로 미뤄두면 안된다.


내 인생에 결혼은 없다라고 못박은게 아니라면, 우선순위를 한 칸만 앞으로 옮겨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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