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굴비와 굴비
"맛있는 거 먹자!" 할 때 생각나는 음식은 '보리굴비 정식'이다. 외국에 오래 살던 친구가 한국 다니러 오면 같이 먹으러 가는 메뉴이기도 하다. 짭짤하고 쫄깃하며 꼬릿 한 냄새가 나는 보리굴비와 흰밥은 천상의 메뉴다. 생선중에서 굴비 혹은 조기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어릴 적 우리 집 밥상에 오르던 주요 생선이 '갈치'와 '조기새끼(사이즈가 작은 조기)'였다. 그 당시만 해도 갈치는 동태와 동급으로 매우 흔한 생선이었다. 지금이야 귀한 몸이 됐지만서두.
어릴 적 우리 집 밥상의 생선 조리법은 간단하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넉넉히 둘러 껍질이 바삭하게 튀겨져 꼬리지느러미가 과자처럼 되도록 굽거나 간장과 고춧가루 무와 양념을 넣어 자작자작 조리면 완성이다. 조리된 조기새끼는 1인당 1마리로 각자의 몫을 배당받는다. 상상해 보면 알겠지만 조기새끼(얼마나 작으면 스스로 이름이 조기새끼 이겠는가?) 1마리는 밥 1 공기 먹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엄마가 된 나는 손이 크다. 회사에서 요리하던 버릇이 있기도 하고, 작은 양을 나누어 먹는 것이 너무나 짜증이 났기때문이다. 음식을 할 때 3 식구 먹기에 한참 남을 만큼 요리를 한다. 결국 도시락으로 회사에 싸가서 먹게 되지만 나는 음식을 많이 하는 것이 좋다. 보리굴비 정식을 시키면 요즘 식당에는 밥 양이 적어서 굴비가 남을 정도이나 넉넉한 사이즈의 보리굴비에 밥 먹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예전에 광주를 자주 오갈 때 송정시장에서 보리굴비 파는 집을 단골 삼아 나도 구매하고 친구들과 식구들에게도 선물하곤 했다. 그러다 고등학교 선배님이 굴비를 만들어 파는 것을 알게 됐다. 맛의 차원이 다른 굴비와 보리굴비를 맛보게 되었다. 언젠가 보리굴비를 다듬다가 가시가 손가락 마디에 박혀 수술을 한 적이 있다. 살림 못하는 여자의 웃지 못할 큰 해프닝이기도 했다.
어제 문득 보리굴비와 조기를 이제 못 먹게 되는 것이 아닌가? 덜컥 겁이 났다. 선배님께 연락해서 조기 10마리와 보리굴비 찐 것 10마리를 보내달라고 부탁드렸다. 엄마에게도 보내면서 이생에 마지막 먹게 되는 굴비일지 모른다고 문자를 보내드렸다. 어쩐다.
빠듯한 살림을 했던 내 젊은 엄마가 식구들을 위해 굽던 그 맛난 조기새끼는 더 이상 맛볼 수 없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이제 국산이 아닌 노르웨이산 수산물만 먹어야 하는 그런 날이 오는 것은 아닐까? 가끔 누리는 호사로운 식탁은 이젠 안녕인 것인가? 식탐이 많은 나는 더 이상 쟁일 수 없는 좁은 냉장고를 원망하고 있다. 그러다 오늘 낮에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디포리와 다시 멸치도 쟁여야 하는 것을 깨닫고 부랴부랴 주문했다.
나는 많은 것을 바라고 사는 사람이 아니다. 알록달록 예쁜 분자요리를 원하지도 않으며 손이 여러 번 가는 음식을 먹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바다에서 잡은 생선을 그냥 바삭하게 튀기듯 구워 먹는 내 소박한 밥상이 이젠 이룰 수 없는 추억의 한 장면으로 남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심히 걱정된다.
생선 한 마리에 40년 추억을 왕복하며 앞으로 40년 동안도 내 기호를 누리며 살기를 바란다.
#보리굴비 #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