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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비련씨 Aug 23. 2023

아련한 애련씨 8. 여행

딸내미와 오사카

딸은 오사카를 좋아한다. 도쿄는 복잡하고 어딘가 이동할 때 반드시 차를 타거나 지하철을 이용해야 하지만 오사카 시내는 작아서 걸어 다닐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모처럼 딸과 함께 3박 4일 오사카를 다녀왔다. 오사카는 여러 번 다녀왔기에 대나무 숲을 걸을 수 있는 교토 일정 하루를 제외하고는 딸이 하고 싶은 것을 하기로 했다. 숙소와 시내에 갈 곳 그리고 식당과 카페도 골라두기로 했다.

아침 일찍 김포공항에 도착해 라운지에서 간단히 조식을 먹고 비행기 탑승, 오사카는 2시간이 안 걸려 도착했다. 딸은 세계 여러 도시를 여행했고, 호찌민에 6개월 어학연수도 했었기에 짧은 오사카 여행이 그리 즐겁고 기쁠까 싶었는데 비행기를 타면서 이미 기분은 하늘을 날고 있었던 것 같다.

라떼. 그러니까 1988년에 해외여행 자유화가 됐지만 그때만 해도 일본 여행은 비자가 필요했으며 여권 발급 전에 외교부에서 교육도 받았어야 했다. 그렇게 어렵게 첫발을 내디뎠던 도쿄는 정말 별천지였다. 자판기 색깔과 그 안에 캔 디자인마저도 어쩜 그리 예쁜지... 편의점만 들어가도 정신을 잃을 정도로 좋았다.

정말 오래전 이야기라 지금 꺼내 이야기하기엔 세상이 너무나 많이 바꼈다. 우리나라의 경제와 위상도 달라졌으며 요즘 세대들은 일본에 대한 적대감도 경외감도 없다. 그냥 재미있는 캐릭터가 많고 예쁜 물건을 살 수 있는 가까운 외국쯤으로 인식한다.

난 예나 지금이나 화장을 거의 안 한다. 없는 눈썹을 그리고 빨간 립스틱을 바르면 끝! 그런데, 뷰티 크리에이터인 딸은 화장에 1시간 이상 걸린다. 2D화면에 3D로 인식이 될 수 있는 화장을 하는데 일상 안에서 그 화장을 보면 좀 어색하다고나 할까? 나름 팬이 있어서 오사카 한복판 매장에서 해외팬이 사진을 찍어달라기도 하고 SNS DM으로 어디 어디 있는 것을 보았다는 팬들도 있다. 신기하기도 하고 불편해 보이기도 한다. 알아보는 사람 중에 팬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엔화 환율이 좋아서 일본에 가면 쇼핑을 무척 많이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맛난 음식도 많이 먹어야지 했었는데, 일본은 기본적으로 물가가 비싸다. 첫날 비행기 내리자마자 짐을 풀고 배가 너무 고파서 장어덮밥을 먹자 하고 도착했는데 가격표 보고 한참 우물쭈물 망설이다 들어갔다. 1인당 5천 엔에 가까운 돈이 나왔다. 일본 엔화는 싸졌으나 물가는 비싸다.

숙소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는데, 도톤보리 중심에 있는 호텔로 하겠다고 해서 그렇게 하라고 했다. 사진으로 보기에 침대 2개가 있고 공간도 있어 보였다. 나의 바람은 호텔은 좀 좋았으면 한다고 했었다. 호텔에 도착해서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깜짝 놀랐다. 우리가 상상하는 프런트 데스크는 없었다. 1인이 서서 일하는 데스크에 체크인도 자판기 같은 시스템으로 하게 돼있었다. 3시가 돼서 짐을 찾아 호텔방에 들어갔다가 또 한 번 크게 놀랐다. 이런 사이즈 방안에 침대 2개를 넣고 화장실을 넣고 옷걸이에 작은 냉장고와 보관함까지 넣을 수 있다니 3차원 테트리스 같다. 가저간 캐리어 2개는 펼 수도 없는 사이즈였다. 세상에나....

숙소는 잠만 자면 되고 쇼핑이나 어딘가 돌아다니다 재빠르게 숙소에 왔다가 잠시 쉬고 나가는 것이 이득이라 설득을 하는 딸 이야기를 도착 이틀째 수긍하게 됐다.

3일 차에 교토에 가기로 했으나 태풍 '란'이 온다고 지하철과 기차는 운행을 중단했으며 모든 백화점은 휴점을 하고 하루 종일 태풍 방송이 나왔다. 하지만 오사카는 고요하게 지나갔다. 문 열지 않은 도시에 크리에이터는 부지런히 촬영을 했다.

여행이 목적이 없어 좋았다. 온전히 딸은 나를 위해 짐보따리를 들어주는 알바를 했고, 나는 특별한 일정 없이 구박 들으며 딸의 영상을 이래저래 요리조리 찍어주는데 모든 시간을 보냈다.

내 삶은 대부분 목적이 있다. 목적 달성 전까지는 모든 행복은 잠시 멈춤이다. 그리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온 힘을 쏟기에 나머지는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다. 이번 여행은 아무것도 없었다. 온전히 딸과 보낸 시간이었다. 15초 영상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기특하기도 하고 작지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작은 기쁨을 누린 여행이었다. 1월에는 북해도에 가기로 했다. 다음에도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있다가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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