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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싹대장 Aug 17. 2016

1. 마을, 제주 그리고 마을.

[기획연재] 마을+식당은 무엇에 집중해야 할까?, / 사진작가:요정님

* 지미오름에서 내려다본 종달리 마을. 


[기획연재] 1. 마을, 2. 식당, 3. 도전, 4. 실험, 5. 모험

첫번째. 마을, 제주 그리고 마을. 

‘마을’은 순우리말.

순우리말 ‘마을’은 땅과 뭍, 마당과 들, 모래 등 주로 지형학에 기인함.


《마을의 재발견》리뷰

마을리(里)는 밭전(田)과 흙토(土)로 이루어진 글자이다. 농경시대 농사를 짓는 장소에 마을이 형성되었음을 뜻한다. ‘마을’은 순우리말이다. 한자인 마을(村) 어원은 익히 들었던 반면 순우리말 ‘마을’ 어원은, 한국어원학회에서 찾아 풀이한 어원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이렇다. “‘마을’은 ‘ㅁ·ㄹ’+‘ㅅ·ㄹ’의 합성어로, 그 후 ‘ㅁ·ㄹ’에서 ‘ㄹ’이 탈락하고‘ㅅ·ㄹ’에서 ‘ㅅ’이 유성음화하여 생겨났다고 한다. 여기서 ‘ㅁ·ㄹ’은 ‘촌(村)’을, ‘ㅅ·ㄹ’은 ‘곡(谷)’을 뜻한다. ‘ㅁ·ㄹ村’은 ‘땅(地)’과 ‘뭍(陸)’, ‘묻다(埋)’, ‘마당(場)’, ‘뫼(山)’, ‘매(野)’, ‘모래(沙)’의 의미를 갖고 있고, ‘ㅅ·ㄹ谷’은 모음교체 현상으로 나중에 ‘실’이 되는데 ‘흙(土)’을 의미한다. 흙으로 만든 토기를 ‘시루’라고 하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다. 실은 의미가 확장되어 ‘谷’을 포함하게 되는데, 이는 ‘돌실石谷’, ‘닭실酉谷’, ‘밤실栗谷’등과 같은 마을 이름에서 그 예를 찾을 수 있다.” 

해석이 복잡해서 그렇지 모든 언어는 시간이 지나면서 변한다. 시간의 지배를 받는 글자의 속성을 수긍해보자면 순우리말 ‘마을’은 땅과 뭍, 마당과 들, 모래 등 주로 지형학에 기인함을 볼 수 있다. 마을 이름도 밤나무골, 감나무골, 배나무골, 버드실(버드나무가 많은 마을), 모래내(모래가 있는 시내) 윗말(윗마을), 아랫말(아랫마을), 위뜸(윗마을), 아래뜸(아랫마을), 우터골(골짜기 윗마을), 독배(배가 들어오는 어촌) 등 특징에 따라 지었다



새싹대장은 마을에 집중하고 싶다. 

마을은 지역의 토대이기 때문입니다. 

마을은 지역산업의 근간이기 때문입니다. 


마을에 대한 이해가 없이 지역에 살고, 무엇을 한다는 것은 무의미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 지금 이글을 쓰고 공유하는 이유는 "마을+식당"이라는 프로젝트의 방향과 생각을 정리하기 위함입니다. 


마을을 이해하는 방법중 제일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저는 두가지를 꼽고 싶은데요. 

1)그곳에 사는 것과 2)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

결론부터 말씀드리고 싶은건 마을을 정의하고 싶겠지만, 정의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아마도, 삶터 이기 때문으로 봅니다. 개개인의 삶이 모여 마을이 되고 지역이 되니 가지각색이겠지요.ㅋ

뭔가 획일화 되지 않고 가지각색인 마을 그리고 제주가 저는 좋아요. 


마을이 그동안 삶터인 동시에 일터의 중심이였다면,  놀이터라는 약간의 양념을 가미해 보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그 중심은 삶터와 일터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삶터와 일터는 우리가 시간을 두고 몸으로 느끼고 배워야 하는 미션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마을에서 삶을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분명 우리보다 먼저 사시는 분들의 삶을 돌아보는 것,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는 것에서 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봅니다. 묻고 따지지 마시고 그냥 살아보는 겁니다. 그게 곧 삶이니깐요. (사전:사는 일. 또는 살아 있음.)


더불어 일터에 대한 이해는 같이 일을 해보는 겁니다. 뭐, 일손을 돕는 것 이겠지요. 

마을과 지역에는 일손이 항상 부족합니다. 더더욱 젊은 일손은 찾아보기도 힘이 듭니다.  

우리가 마을분들의 일들을 항상 돕지는 못하지만, 체험으로서의 종종 일손을 돕고, 

그분들에게 약소하게 나마 식당을 통해서 음식을 나누는 일또한 일손을 덜어드리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르신들도 파스타 좋아하세요. 그리고 드립커피도 좋아하세요.^^&) 


놀이터. 

제주는 좀 놀러 오는 곳 아닌가요?


제주는 원래 놀이터의 색깔이 짙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표관광지이며, 세계적으로도 내놓을 만한 좋은 곳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3차 산업의 비중이 80%에 육박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고 봅니다. 

저는 그 만큼 마을+식당의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습니다. 경쟁이 아닌 새로운 소비의 창출을 말합니다. 


놀때 만큼 창의적인 적이 있으신가요? 

놀때 만큼 시간가는 것이 아쉬운 적이 있으신가요? 

마을이 놀이터이고, 식당이 놀이의 창구이길 바랍니다. 

실패해도 됩니다. 그대신 지대루 놀았으면 좋겠습니다. 


요즈음 창조적 일자리, 창조적 산업 이야기들 많이 하는데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내가 좋아하는 일, 

그것이 창조적일 준비가 된 자세가 아닐까요? 

식당도 창조적일 수 있다고 봅니다. 


고로, 제주는 창조적일 준비가 된 곳!!! 놀러 오세요. 살러 오시지 말구. ㅋ



마을+식당 프로젝트에 참여한 두친구가 

삶터와 일터에서 몸과 마음으로 느낀 것을 공유해 나갈 것 입니다.   

더불어 이 두친구가 어떤 색깔의 놀이터를 만들어 나갈지도 기대가 됩니다. 


마을의 삶터를 보고 느끼는 것이 불편할지도 모릅니다.

마을의 일손에 동참하는 것이 힘겨울지도 모릅니다. 

삶터와 일터를 이해하기 위해서 적절한 대안을 찾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것이 지역에서 무엇인가를 하기 위한 기본과정이라는 생각을 의심치 않습니다. 


이 어려운 길을 걸어가겠다는 두 친구에게 많은 관심과 애정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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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춧대 뽑은 자리에 심을 마늘 겉껍질을 까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난다. 손톱도 맵고 아파서 밀쳐놨다. 나머진 내일 까야겠다. 강 선생에게 고구마 20kg 한 상자를 우체국에 가서 부쳤다. 엊그제는 안산 세월호 참사 치유공간 ‘이웃’에 고춧가루 5kg과 유 과장님에게 감 말랭이, 고구마 말랭이, 생강 약간을 부쳤다. 택배비가 솔찬히 든다. 점심에 찐 고구마 두어 개를 먹고 거의 다 읽은《마을의 재발견》을 마저 읽었다. 어제까지 잡지《전원생활》 마감이었는데 늦었다. 오후 4시 무렵에 송고했다.

《마을의 재발견》은 그동안 읽었던 마을을 주제로 삼은 대여섯 권 책 가운데 개념 정리가 잘 된 책이다. 마을 의미를 먼저 톺은 책은 처음 읽는다. 10장으로 구성된 목차에서 마을 정의는 4장에 있다. 1장부터 3장까지는 세계화·도시화에 영향을 받아 공동체가 붕괴되고 있거나 해체된 마을의 현재 상태를 설명한다. 개념 정리부터 출발하지 않고 단도직입 현실을 상영하다보니 정작 마을을 정의하는 설명이 뒤로 밀렸다. 시간차 서술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런 까닭에 세계화 융단에 뒤덮여 사라진 마을을 조명하다가 느닷없이 처음으로 돌아가 마을 정의를 내리고 마을 만들기와 마을 의미로 붕 건너뛰는 느낌이다. 이해가 안 가는 편집이다.

여하간 4장의 마을 정의부터 찾아 읽고 1장으로 돌아와 읽었다. 무엇을 설명하기 위해선 개념 정리부터 밑그림으로 그린 후 뼈대를 세우고 살을 붙이는 독서와 글쓰기 습관을 가진 나로선 불편하다. 그럼에도 마을의 어원 유래와 사회를 연결한 해석은 흥미롭다.

-중국 : 한자 ‘마을 촌(村)’을 쓴다. 村은 나무가 규칙적으로 심어진 공간을 뜻한다고 한다. “마을 입구에 있는 마을 숲이나 도로의 가로수처럼 나무가 일정한 형태로 자라는 것을 추상화하여 확대되었음을 알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村은 邨의 속자라는 것이다. 마을邨은 고을읍(邑)과 진둔(屯)이 합친 글자다. 저자는 이런 이유로 마을은 진을 치는 장소 개념으로 이해되었다고 해석한다. 군대가 머무는 장소를 주둔지(駐屯地)라고 불렀던 것을 떠올리면 옛날에 마을은 군대, 즉 병영이 형성된 곳임을 추정하게 한다. 군대가 머물면 식량보급을 할 경작지가 필요하고 말을 키워야 하고 무기를 만들 대장간이 필요했으므로 마을은 저절로 생겨났다. 군인과 민간인이 한 성(城)에서 살며 전쟁을 치루는 영화를 떠올리면 이해가 된다. 마찬가지로 마을리(里)는 밭전(田)과 흙토(土)로 이루어진 글자이다. 농경시대 농사를 짓는 장소에 마을이 형성되었음을 뜻한다.

-한국 : ‘마을’은 순우리말이다. 한자인 마을(村) 어원은 익히 들었던 반면 순우리말 ‘마을’ 어원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저자가 한국어원학회에서 찾아 풀이한 어원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이렇다. “‘마을’은 ‘ㅁ·ㄹ’+‘ㅅ·ㄹ’의 합성어로, 그 후 ‘ㅁ·ㄹ’에서 ‘ㄹ’이 탈락하고‘ㅅ·ㄹ’에서 ‘ㅅ’이 유성음화하여 생겨났다고 한다. 여기서 ‘ㅁ·ㄹ’은 ‘촌(村)’을, ‘ㅅ·ㄹ’은 ‘곡(谷)’을 뜻한다. ‘ㅁ·ㄹ村’은 ‘땅(地)’과 ‘뭍(陸)’, ‘묻다(埋)’, ‘마당(場)’, ‘뫼(山)’, ‘매(野)’, ‘모래(沙)’의 의미를 갖고 있고, ‘ㅅ·ㄹ谷’은 모음교체 현상으로 나중에 ‘실’이 되는데 ‘흙(土)’을 의미한다. 흙으로 만든 토기를 ‘시루’라고 하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다. 실은 의미가 확장되어 ‘谷’을 포함하게 되는데, 이는 ‘돌실石谷’, ‘닭실酉谷’, ‘밤실栗谷’등과 같은 마을 이름에서 그 예를 찾을 수 있다.” 

해석이 복잡해서 그렇지 모든 언어는 시간이 지나면서 변한다. 시간의 지배를 받는 글자의 속성을 수긍해보자면 순우리말 ‘마을’은 땅과 뭍, 마당과 들, 모래 등 주로 지형학에 기인함을 볼 수 있다. 마을 이름도 밤나무골, 감나무골, 배나무골, 버드실(버드나무가 많은 마을), 모래내(모래가 있는 시내) 윗말(윗마을), 아랫말(아랫마을), 위뜸(윗마을), 아래뜸(아랫마을), 우터골(골짜기 윗마을), 독배(배가 들어오는 어촌) 등 특징에 따라 지었다.

-일본 : むら(村)는 ‘まち(町)’, ‘さと(里)’, ‘しろ(城)’ 등과 같은 의미였단다. 앞에서 열거한 글자 기원은 ‘つち(土)’에 있다고 한다. 미루어 보면 ‘まち(町)’는 밭에 농기구 고무래를 놓아둔 형상으로 밭농사를 가리킨다. 따라서 むら(村)는 농경사회 사람들이 모여 살던 마을, 또는 성에서 비롯된 어원임을 유추할 수 있다. 중국, 한국, 일본의 ‘마을’ 어원은 이처럼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삼아 만들어졌다고 저자는 밝힌다.

-영어권 : village의 어원은 로마어 villa에 있다고 한다. 흔히 부르는 무슨무슨 빌라라고 말할 때 그 빌라다. 저자의 말대로 villa가 “시골에 정원과 농원을 갖춘 대저택”이라면 한국의 주택인 빌라는 기이한 호칭이다. 아파트 이름조차 성(castle)이나 공원(park)으로 부르니 기이함을 넘어 황당하다. 어쨌든 villa가 로마 부자들의 시골별장이던 시절에 villa는 시골에 있는 집이었다. 여기서 village가 시골에 한정된 뜻임을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중세에는 시골, 농촌이라는 뜻으로 굳어졌다고 한다. 

저자가 관련어로 추정하는 villain은 천하게 태어났거나 시골사람을 가리킨다고 한다. villain의 반대말은 귀족을 뜻하는 noble이다. 이 두 단어에서 시골에 정원을 갖춘 별장이 있는 로마 귀족과 그 시골 별장을 가꾸고 둘레에 거주하는 사람간의 계급을 느낄 수 있다. 저자가 villain과 비슷한 단어로 제시하는 villein은 봉건왕조 시대 영주 산하 장원에서 일하던 지역 노동자라고 한다. 성 밖에 살며 성을 출입하면서 일을 했던 농민과 농노이다. 저자는 하층계급 villein들이 살던 공간을 village로 불렀다고 전한다. 말하자면, 마을을 뜻하는 village는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 살던 곳이다. 부자들은 모여 살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모습을 연상해 본다. 서양에서 중세의 마을은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 기대어 복닦이는 장소였던 셈이다. 오늘날 마을의 닮음과 다름을 영어 낱말 한 개로 톺는다. 

저자는 동양에서 마을의 어원은 자연환경에 따라 지어졌고 서양에서는 계급과 사회적 지위에 어원을 만들었음을 주시한다. 어원은 글자를 다루는 사람에게 사유의 기원이자 근원을 확인하는 일이다. 글자가 만들어진 줄기를 쭈르륵 따라 훑어 거슬러 가는 과정이 글자를 다루는 매혹이다. 어원을 톺으면 책 읽기가 한결 쉽다. 모르는 용어 뜻을 알았을 때의 경이로움처럼 어원 역시 처음 ㄱ,ㄴ, ㄷ 을 삐뚤빼뚤 쓰던 다섯 살 무렵처럼 신기하다. 몇 년 전, 김영민 선생의 어떤 책에서 vector 를 처음 맞닥뜨렸던 때가 기억난다. 인터넷에서 검색한 후 우리말에 해당하는 낱말로 대입하고자 잠깐 머리를 쥐어짰지만 명료한 하나의 낱말로 만들 수 없었다. ‘크기와 방향으로 정해지는 양’을 어떻게 한 큐로 똑 떨어지게 정의할 수 있을까. 언어는 사용하는 자의 개인적 발화와 상호작용하는 추상적 체계의 복잡하고 모호한 섞임임을 그리다보면 소쉬르가 왜 그토록 단어‘들’ 사이의 관계에 몰두했는지 이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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