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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 김나영 Apr 27. 2021

35 <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

어느 날 문득 돌아보면 수많은 시간들이 훌쩍 저 혼자 달아나 버린 것 같은 황망함 앞에 어쩔 줄 몰라할 때가 있습니다. 쏜살 같이 날아가는 시간 앞에서 때로는 무력감마저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하고 싶은 것이 많다 보니, 시간을 아낀다고 하는데도 모자라게 생각될 때도 많습니다. 하루가 좀 더 길었으면, 일 년 속에 한 달이 더 있었으면 하고 바라보지만 자연의 주기 자체가 딱 맞게 정해져 돌아가니 인위적으로 더 늘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시간을 멈추려고 시계추를 빼어버린다 해도 시간은 엄벙덤벙 잘도 가고, 탁상시계의 건전지를 빼어버린다고 해도 시간은 여전히 다른 시계들의 째깍거리는 소리에 편승해서 잘도 달려갑니다. 겨우 60까지의 숫자들을, 시계라는 틀 속에 가두고 하루하루를 숫자를 헤아리며 살아가다 보니 그러한 시계의 흐름과 함께 인생이 만들어지고 역사가 이루어지고 한 것입니다. 디지털시계처럼 정확하지는 않을지라도, 그리고 가끔은 밥을 주어야 움직이는 태엽시계가 되어서라도 우리의 역사는 계속 흐르고 우리의 생명 또한 순환을 거듭해가고 있습니다.


세계의 시각이 모두 달라도 저마다의 일정한 간격을 두고 시간은 계속 흘러갑니다. 시간이라는 것이, 문명이 발생하지 않은 시기에는 개념조차 없던 일이었겠지만 그 시기에도 자연과 인간이 일정하게 주기적으로 변화를 반복하면서 마침내 완전히 소멸하는 과정을 보며 막연하게나마 어떤 흐름이라는 것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불멸하는 존재들뿐이었다면 시간의 흐름 따위는 그야말로 전혀 생각조차 해볼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시간은 영속적으로 계속 흘러가는 것이기는 하되, 인간 개개인에게는 유한할 수밖에 없는 것이기에 인간은 저도 모르게 자꾸만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고 싶어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시간을 붙잡을 수만 있다면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을 것만 같은, 본능적 갈망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우리 인간에게는 영원한 삶이라는 것이 허락되어 있지 않습니다. 아니, 모든 만물이 죽고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다못해 생명체가 아닌 문명의 흔적들조차 역사라는 굵직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소멸되어가고 맙니다. 말하자면, 우리 모두의 삶과 역사적 발자취는 당대에 제아무리 훌륭하고 의의가 있었다고 해도 결국 시간 앞에서는 덧없는 것이 되고 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모래시계처럼 유한한 우리의 삶의 시한을 연장할 수 없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주어진 시간을 그냥 되는대로 막살아버릴 수는 없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유한하고 짧은 시간이기에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의 시간처럼 1분 1초가 소중하게 사용되어야 합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시간을 아끼며 의미 있게 산다고 하는데도, 그것이 수많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우리를 절망스럽게 합니다. 우리의 삶의 흔적이 사라져서 더 이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고 생각하면 그 역시 우리를 암울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나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우리의 혼과 얼은 시간이 지배할 수 없을 거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우리의 혼과 얼이 수 만년의 세월이 흘러도 결코 멈추지 않고 우리의 내면세계의 또 다른 시계가 되어 꾸준히 움직이며 하나의 맥을 전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이어져 갈 것이라 생각하니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인간은 누구나 완전한 소멸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을 느끼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나>라는 존재가 영속되길 바란다면 <나>의 다음 세대의 혼과 정신에 좋게 영향을 주고 그 아름다운 가치들이 고스란히 녹아 후세를 이어가는 사람들에게로 스며들기를 바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우리의 몸이 죽고 나면, 공기 중에 분해되어 있다가 다른 생명체를 통해 형태만 바뀌었을 뿐, 끊임없이 삶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아주 짧은 찰나적인 시간을 살아도 엄청난 시간인 영겁을 사는 방법은, 찰나적 삶 속에 우리의 혼을 담아내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영겁의 시간 속에 우리의 존재가 녹아서 파일 속에 저장이 되듯 차곡차곡 남아있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더 이상 회의적인 마음을 품지 말고 그냥 주어진 삶에 충실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돌아와서, 무엇인가 의미 있는 삶을 위해 시간을 써야 할 것입니다.

어떤 이의 말처럼, 나의 오늘이 죽어가는 사람의 마지막 날이기도 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차마 함부로 낭비하기가 미안스러워집니다.

성공을 위해, 혹은 목표 달성을 위해 단계적으로 세워놓은 계획 때문에 시간을 아끼게 되기도 하겠지만 나에게 허락된 삶의 시간 자체가 너무도 큰 은총의 시간이기에 조금도 헛되이 낭비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시간을 보내는 것에도 질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을 다시 말하면, 멍하게 의식의 끈을 놓고 있거나, 무조건 바쁘게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아니라, 가만히 머무는 것조차도 의미가 있어야 하며 자신과 이웃을 위해 유익할 수 있는 것을 하는 데에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혼이 진정 기뻐할 수 있도록, 그리고 성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면 휴식조차도 허송세월을 보내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쁘기만 하고 모두에게 해가 되는 일에 시간을 쓰는 사람은 허송세월을 보내는 사람보다 더 나쁘다고 할 수 있습니다.


1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우리는 과연 어떤 일들을 할 수 있을까요.

생각해보면, 그 짧은 시간에도 할 수 있는 일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 시간은 심지어 극한 상황에 놓인 위태로운 생명을 구하게 될 수도 있는 시간입니다. 간발의 차이로 목숨을 건지게 되는 경험을 한 사람도 사실은 아주 짧은 순간의 기적 같은 시간을 보낸 것이었습니다.


뒤늦게 시간의 소중함을 알게 된 사람이라면 시간을 거꾸로 되돌리고 싶기도 할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을 나름대로 소중하게 보낸 사람일지라도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 질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지나온 시간이 후회되어서라기보다 미처 다 할 수 없었던,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일들에 대한 미련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시계를 거꾸로 가게 할 수는 없습니다. 거꾸로 가는 시계를 발명한다고 해도 시간은 계속 앞으로만 흘러갑니다.

몸은 현재를 살고 있는데 마음이 과거에 머물러봐야 좋을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의 시간은 더 이상 돌아보려 하지 말고 보다 값진 미래를 위해 현재의 시간을 활용한다면,

지나간 시간들에 대한 후회나 미련이 보다 작아질 것입니다.

충실한 시간을 살아온 사람은 지나간 자신의 시간들이 보물처럼 자랑스럽고 조금도 아깝지 않을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우리에게는 머무르는 것들과 달라지는 것들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얻어지는 것들이 있는가 하면 우리에게서 떠나가는 것들도 수없이 많습니다. 그 모든 것들이 개인의 인생이 되고 가정의 내력이 되고 국가의 역사가 됩니다. 우리는 시간이 가져다주는 무수한 변화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변화를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시간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슬픔과 기쁨도 시간과 함께 계속 흘러가서 우리에게 영속적인 것이 되어주지 않습니다.

그러니 시간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것은 감정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것과 어느 면에서 일치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큰 사건이나 고통도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게 됩니다. 망각의 강이 시간의 나라에 있기 때문입니다.

시간의 흐름 앞에서 두려움이 없고 당당한 사람은 이미 삶과 우주의 법칙을 다만 어느 정도라도 이해하고 있는 것이기에,

죽음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습니다.


나는 시간의 은행이 있어서, 많은 시간의 잉여물들이 좋은 모양으로 축적된 삶을 사는 사람에게는 더 많은 시간을 제공해주고, 인류를 위해서는 고사하고 자기 자신을 놓고 보더라도 그저 시간의 무의미한 소비만을 하고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의 신용도가 높아지기 전까지는 시간의 사용한도를 일시적으로 제한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아울러 그런 사람도 자신의 존재 자체가 얼마나 소중한 지를 깨닫고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들을 감사히 여기며 알뜰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빌어보기도 했습니다. 시간의 소중함을 모르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시간이, 너무나 아깝게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시간의 흐름을 감지하는 데 있어서도 사람의 마음에 따라 다릅니다. 어떤 사람에게 있어서의 시간은 쾌속정이나 고속전철보다도 더 빠르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지루하게만 여겨지는 통통배나 완행열차처럼 느린 것이 됩니다. 삶이 기쁘고 행복한 사람이나 어떤 일이나 열심히 임하는 사람에게는 시간이 늘 아쉽고 부족한 것이 될 것이고, 자신이나 다른 이에 대한 사랑의 결핍으로 삶 자체가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사람에게는, 주어진 삶을 그저 마지못해 살아가기에, 시간이 늘 거추장스럽고 귀찮은 하나의 인생의 소품 정도로밖에 여겨지지 않을 것입니다.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는 이들은 아름다운 삶의 가치를 제대로 깨닫고 실천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무엇이 소중하며 가치가 있는 것인지를 잘 아는 사람이기도 하고 사랑이 주는 기쁨과 나누는 행복감이 얼마나 큰지를 잘 아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고 또한 이 세상에 무엇을 남기고 가야 하는지를 막연하게라도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시계가 유난히 빠르게 가고 있다는 것을 안다고 해도 마음이 불안하지만은 않습니다. 스스로 그 빠른 시계를 잘 조정해가며 좀 더 가치 있는 일에 우선순위적인 안배를 함으로써 잘 짜인 시간표대로 자신의 시간을 운영하는 지혜를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각자의 마음의 시계는 어떻습니까. 그런대로 알맞은 속도로 잘 가고 있는지, 고장이 나거나 멈추지는 않았는지, 가야 할 방향으로 잘 가고는 있는지, 등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스스로 자신의 시계를 따로 간직하고 조종해 가도록 하는 겁니다. 각자의 시계는 그 주인의 말을 잘 듣습니다. 주인이 원하는 대로 멋진 삶을 향해 달려가기도 하고 때로는 여유 있는 속도로 움직이며 느리게 가거나 쉬었다 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인이 시계를 천대(賤待)하면 아예 고장이 나버려서 더 이상 움직이지 않게 됩니다. 고장이 난, 마음의 시계를 지니고 다니며 자신의 삶이 불행하다고 울며 다니지 마십시오. 마음의 시계는 얼마든지 고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능 좋은 마음의 시계를 지니고, 시간의 활용을 잘해서 물질적인 수확은 물론, 정신적 이익까지도 얻은 사람들은 결코 불행하다고 징징거리지 않습니다.


사실, 시간의 시작과 끝은 원래 없는 것입니다. 단지 인간이 구분 짓고 매듭짓고 단락 짓기 위해 만들어 놓은 개념에 불과합니다. 반대로 말하면 시간은 손에 잡히지 않는 무형의 존재이며 거대하고 영원한 것입니다. 수학과 과학에서 배웠던 무한대의 개념이기도 하며 어쩌면 흐르는 것이 아니라 그냥 머물러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 영원하며 무한함을 지닌 속성은 세상을 지으신 조물주와 그분의 마음뿐입니다. 창조주이며 절대자인 神만이 시간의 영속성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오로지 그분만의 권한인 시간이라는 것으로부터 진정 자유로워질 수 있으려면, 그분을 닮는 길 뿐입니다 그분의 마음으로 사는 것뿐입니다. 하늘 같은 마음으로 살고, 하늘의 이치에 따르며 살고, 하늘이 인간에게 바라는 평화를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이 生을 다하게 되었을 때, 그 영원한 하늘과 합류하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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