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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Apr 04. 2024

인생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이 벚꽃 같다

Unsplash의J Lee


올해는 봄이 왔는지도 모르게 벚꽃이 피었다. 오늘 아침, 공원을 한 바퀴 뛰면서 만개한 벚꽃을 처음으로 보았다. 벌써 벚꽃이 이렇게 피다니, 정신없이 흘러가는 바쁜 일상에도 봄은 성큼 오는구나, 싶었다. 마침 아내가 작년 이맘 때 사진을 보내준 것을 보니, 우리 셋은 벚꽃을 보러 동네 천을 향했던 터였다. 어째 지나간 나날들에는, 더 여유롭게 세상을 맞이했던 것만 같다.


회사를 나와 독립한지도 딱 넉 달이 흘렀다. 온전히 혼자서 삶을 꾸려나가보기로 한 이 몇 개월, 확실히 삶은 점점 더 바빠지고 있다. 온통 벌려놓은 일들로 가득하여, 하루하루가 늦은 밤이 되어서야 비로소 한 숨 돌릴 만큼, 온갖 일들로 북적이고 있다. 스케쥴러는 거의 매일이 할 일들과 마감들과 연락들로 빼곡하다. 나름대로는, 무언가 만들어져 가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레고 만드는 아이를 보면, 일단 먼저 봉투를 뜯고 레고 조각들을 잔뜩 흐트러놓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러다가 작은 조각들이 하나씩 하나씩 만들어지고, 중반쯤 지나면 제법 그럴싸한 형체가 생기기 시작한다. 나는 아직 레고 조각을 흐트러놓듯이 그렇게 일들을 잔뜩 벌여두고, 여기저기 하나씩 작은 조각들을 조립해가고 있는 단계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다 '이 정도면 꽤 그럴싸하게 만들었네.' 싶은 타이밍이 오지 않을까 싶은 기대도 조금 해보게 된다.


오늘은 모처럼 전직장을 찾아갔다. 회사를 나오면서, 내 의뢰인의 사건 하나를 놔두고 나올 수밖에 없었는데, 그래도 끝까지 책임지고 사건 처리를 하려고 찾아간 것이다. 오랜만에 옛 동료 변호사를 만나, 벚꽃 아래에서 커피도 한잔 하며 사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회사 다닐 때, 늘 함께 걸으며 육아 이야기, 세상 이야기, 일 이야기 많이 나누던, 나로서는 직장 생활의 큰 힘이 되었던 분이다. 그밖에도 방을 돌며 모든 변호사님들께 인사드리며 초콜릿 하나씩을 드렸는데, 다들 놀라 웃으며 무척 반가워 해주었다. 인연이라는 게 소중하구나, 싶었다.


인생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이 벚꽃 같다. 어느 날 갑자기 서로에게 나타나듯 만났다가, 한 시절 함께하고 서로를 떠나보낸다. 이렇게 운 좋으면, 다시 만날 일이 있을 수도 있지만, 또 쉽진 않을 것이다. 전직장에 찾아가 모두 한 번 인사 나누는 것만으로도 참 반가운 일이지만, 그런 일이 어디 쉽진 않다. 옛 친구들, 동기들, 한 번쯤 만나면 웃으며 인사 나누겠지만, 역시 일생에 다시 몇 번 만나기 쉽지 않다. 그래도 어떻게 어느 날 반짝이는 의지로 당신을 찾아간다면, 우린 서로에게 벚꽃처럼 반가울 것이다. 그 잠깐이 부질 없을지도 모르지만, 삶이란 것도 그렇게 부질없는 꽃놀이에 나서는 기쁨이 없다면, 역시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4월도, 5월도 바쁠 전망이다. <그럼에도 육아> 출간 기념 '육아 토크'도 꽤 여러 방면에서 준비가 되고 있다. 그렇게 바쁘면, 좋은 거 아닌가요, 돈 잘 번다는 뜻이잖아요, 그런 말을 언뜻 듣지만, 사실 돈과는 별로 상관없이 바빠서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돈은 돈이고 삶은 삶이다. 이 나날들에 내가 부지런히 만나러 떠난 당신들과 좇은 것들, 경험하고 걸은 길들이 모두 가치있고 소중하게 남을 것이다. 가치있게 남기기 위해, 사랑하기 위해 애쓴 날들을 후회하기란 불가능하다. 주말에는 올해 처음이자 마지막 벚꽃을 보러 갈 것이다. 그러고 나면, 세월은 또 한참 지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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