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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Jun 20. 2024

원영적 사고, '럭키비키'의 시대

요즘 최고의 유행어는 아이돌 IVE의 멤버 장원영의 "럭키비키잖아."가 아닐까 싶다. 그녀는 한 빵집에 가서 사고 싶었던 빵이 있었는데, 앞사람이 그 빵을 다 사가버린 상황을 마주한다. 보통 사람은 이런 상황에서 인상을 찌뿌리며 재수 없다고, 운이 나쁘다고 생각할 법하다. 그러나 그 때 마침 갓 구운 스콘이 나왔고, 장원영은 오히려 운이 좋다고 생각하며 말한다. 앞사람이 원래 사고 싶었던 빵을 다 사가준 덕분에, 갓 구운 엄청 맛있는 스콘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고 말이다. 


원래 내가 원했던 게 있었지만, 그 바람이 실현되지 않는 순간 우리는 절망하고, 짜증내고, 화를 내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그 순간 '빠르게' 포기하고, 눈앞의 상황을 '새롭게' 백지처럼 바라볼 수 있는 게 바로 이 '원영적 사고'다. 내가 그 무언가를 원하고 욕망했다 할지언정, 그 욕망 자체는 그리 대단한 게 아니라고 생각하며 빠르게 '버릴' 수 있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어떤 상황이든 그 자체로 좋아하면 그만이다. 따뜻한 스콘이 나오면 그것대로 좋아하면 되고, 살 게 없으면 덕분에 다이어트했다고 좋아하면 된다.


이런 태도가 우리 시대에 폭발적인 호응을 얻는 건, 일차적으로는 우리 시대에 집약적인 욕망들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가벼운 예로, 인스타그램에서 어떤 곳이 핫플로 뜨면, 너도나도 그곳을 욕망하며 몰려가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두세시간씩 대기하면서 '실망'해야 하는 일이 무척 흔하게 일어난다. 그밖에도 살고 싶은 아파트, 갖고 싶은 명품, 가고 싶은 여행지 등 엄청나게 많은 욕망들이 생산되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걸 욕망하면서 상당한 경쟁과 스트레스, 잦은 좌절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런 시대에, 우리는 무엇보다 욕망을 대하는 태도를 배워야 하는 것이다. 나의 욕망이 실현되지 못한 상황 앞에서 우울과 짜증, 히스테리와 분노에 사로잡히기 보다는, 재빠르게 욕망을 포기하고 '수정'할 줄 알아야 한다. 이걸 배우지 못하면, 우리는 말그대로 욕망의 노예가 된다. 나아가 우리 사회는 보다 거대한 욕망들과 그 욕망의 노예들의 전쟁터가 되어 있기도 하다. 특히나 청년 세대들은 닿을 수 없는 부동산 등 거대화된 자본 앞에서 일찍이 좌절을 학습해왔다. 이런 세상에서 생존 방법은 '재빠른 포기와 수정'이라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미 N포세대라는 말은 20년 전부터 유행하고 있고, 과거에는 연애, 결혼, 출산, 취업 등을 포기하는 게 일종의 '우울한 좌절'로 받아들여지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그런 좌절들을 '긍정'으로 승화시키지 않으면, 이 세상에서 생존할 수 없게 되었다. 연애하지 않은 덕분에 나를 위한 선물을 사고 혼자 여행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니 럭키비키잖아,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지 않는 대신 나를 위한 시간을 쓰면서 더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으니 럭키비키잖아, 하고 믿는 것은 자기합리화나 욕망의 왜곡이라기 보다는, 욕망의 승화이자 수정이고 삶의 긍정이 되었다. 


어떻게 보면, 이는 젊은 세대가 세상과 맞서싸우는 하나의 전략처럼 보인다. 기성질서 안에서 획일화된 욕망들을 이루는 게 더 이상 불가능해졌다면, 포기하고 좌절하며 우울하게 살 게 아니라, 삶을 긍정할 새로운 방법을 찾는 것이다. 20억씩 하는 아파트 앞에서 좌절하며 히스테리에 사로잡히는 인간이 되는 대신, 노마드적인 삶을 긍정하는 방향으로 삶을 재설계할 수도 있다. 이것은 실질적으로 필요한 생존 방법이 되었다. 좌절된 욕망을 집요하게 이어가기 대신 삶을 긍정하기, 이것은 이 시대에 요구되는 어떤 필연적인 태도를 지시하는 것이다. 이런 세상에서도, 역시 삶을 사랑하는 것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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