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1년 전 이맘때 내 머릿속은 개업 고민으로 가득했다. 거의 결심했지만 끝까지 망설이고 있었다. 아이는 아직 어리고, 가정 경제도 안정되었다고 볼 수 없는 상황에서, 직장을 벗어나 독립된 삶을 꾸린다는 게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고정적인 벌이가 가능하긴 할지, 과연 이러한 결정이 나만을 위한 이기적인 결정은 아닌지, 내 선택은 용기인지 만용인지 판별하기 쉽지 않았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의 내 마음은 비교적 평화롭다. 가끔 일이 너무 많아서 스트레스 받을 때는 있어도, 막연한 미래가 불안으로 가득하게 느껴지는 순간은 별로 없다. 사실, 올해 중순 정도까지만 해도 내 안에는 아직 걱정과 불안이 적지 않았다. 그렇지만 한 해의 절반을 넘기고, 막바지를 향해가는 이제는, 불안할 필요가 없다고 느끼고 있다.
그 이유는 내가 엄청나게 돈을 벌기 때문도 아니고, 내년에 승승장구할 것을 믿기 때문도 아니다. 그저 내게는 독립된 힘과 의지가 있고, 자율적으로 이 삶을 이끌고나갈 정도의 자립적인 능력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위기라고 믿을 법한 순간에도 스스로 해야할 일을 알고 찾아내며, 나태와 싸워 이기고, 나의 책임을 방기하지 않는 적극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걸 믿기 때문이다.
자립이라는 건 마치 세상으로부터 모든 게 자동으로 굴러들어올 때 가능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강연 요청이 끊이질 않고, 법률 상담으로 찾는 사람이 줄을 서며, 보장된 명예와 인지도 같은 것이 나를 '자동'으로 먹여살리는 게 '자립'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자립은 그런 수동적인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물이 들어오든 들어오지 않든, 나의 일을 찾아서 할 줄 아는 의지에 가깝다.
직장 다닐 때, 처음으로 헬스를 다니며 PT 수업을 들었던 적이 있다. PT 선생님은 최근에 아이가 생겼고, 벌이가 더 필요해지자 아침 저녁에는 PT를 가르치고, 새벽에는 배달을 뛰는 등 직접 일을 찾아나섰다고 했다. 손님이 덜 찾아온다 싶으면, 블로그에 열심히 자신의 활동을 올리기도 했고, 일단 문의가 있으면 무조건 1회성 무료 PT를 해주는 등 일을 찾아 다녔다. 그는 과거에는 보험일이나 딜러 일부터 안 해본 게 없는 듯했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율적인 '의지'랄 것에 대해 배웠다.
자립하는 인간이 된다는 건 그런 내 안의 의지를 믿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지난 1년 내내 부지런히도 살았다. 아마 변호사 인생 내내 가장 다양한 일을 해본 시간일 것이다. 변호사가 할 수 있는 여러 일들을 탐색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작가로서 하고 싶은 일들도 부지런히 해왔다. 그러다 보니, 내년의 내가 부지런하지 않을 거라고는 믿을 수 없게 되었다. 그렇게 부지런할 수 있다면, 깊은 불안 없이 한 해를 또 이겨내는 게 가능할 것이다.
부지런함 덕분인지 몰라도, 운도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주변에서부터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르기까지 여러 곳에서 감사한 제안도 많이 받았다. 그 손내밈 하나하나 덕분에 한 해를 걸어올 수 있었다. 문득, 그래서 삶을 살아냈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판타지 세계에서 모험을 떠난 여행자가 매번 마을마다 만나는 의뢰와 사건과 우연이 빚지며 나아가듯, 그렇게 한 해를 살아냈다. 삶이란 그렇게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이 여행을 믿고 사랑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