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지우 Dec 08. 2024

잠 못 이루던 밤들이 지나고

잠 못 이루던 밤들이 지났다. 여전히 상황은 끝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내가 그 과정에서 느낀 것은 이 사회에 대한 일종의 신뢰였다. 악몽의 밤이 이어질 수도 있었지만, 법치 아래 국회의 의사결정은 작동했다. 언론은 그 의무를 다하며 모든 것을 낱낱이 보도했고, 시민의 목소리와 비판의식도 죽지 않았다. 헬기나 전차의 공포가 삼켜버릴 수 없는 민주주의와 언어, 담론의 힘이 작동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은 자부심을 느낄 만한 일이다.

이번 일은 87년 체제 사상 가장 심각한 사태였다고 할 만하다. 87년은 내가 태어난 해이기도 한데, 그 이후로 삶도 세상도 천지개벽을 이루었다. 내가 나이 들어가듯 이 체제도 낡았다. 개헌이 적극적으로 논의되어야 하고, 대통령의 권한 축소 같은 부분까지도 반드시 논의될 필요가 있다.

일주일 내내 우리 나라가 너무도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래서 하루도 쉽게 잠이 들 수가 없었다. 합계출산율은 바닥을 치고, 경제 위기 수준의 원화가치 하락이 감지되고 있다. 내수는 엉망진창이고, 알게 모르게 사람들의 소리없는 아우성이 가득하다. 이번 사태만으로도 국내 주식시장이 완전히 붕괴 직전에 이르렀는데, 피해보는 건 일반 시민들이다.

개인적으로는 제도가 정치에 어마어마하게 휘둘리는 상황에 대한 개선도 절실하다는 생각이 든다. 제도를 설계하고 나라의 미래를 만드는 관료들에 대한 신뢰와 존중도 필요하다. 정치로 매번 나라 시스템이 엉망진창이 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특히, 비상계엄이라는 말도 안되는 행위는 그야말로 제도를 박살내겠다는 의지로밖에는 느껴지지 않는다. 도대체 이것을 어떻게 회복하고 재건할 것인가.

아무튼, 그런 온갖 사회에 대한 걱정과 고민에서부터 이런 세상 가운데 나는 또 어떻게 나의 아이랑 가정을 지킬 것인가, 하는 고민까지 뒤섞여 심경이 복잡한 날들을 보냈다. 일요일도 더 심하면 심했지, 다를 건 없었을텐데, 아이가 내 소매를 끌며 축구를 하러 가자고 했다. 아이의 성화에 못이겨 공원으로 나섰다.

추운 겨울의 공원에 다른 아이들은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아이랑 축구를 해야했다. 아내와 나의 대화 사이에서, 지난 며칠간 아이는 참 많은 걸 물었다. 아이는 우리 나라 대장이 나쁜 짓을 저질렀다는 것, 같은 말은 알아 들었지만, 여섯살 남짓 아이에게 그 이상 세상의 문제에 지배당하길 강요할 순 없는 노릇이다. 전쟁이 일어나도 아이들에게는 골목에서 구슬치기 할 자유가, 미끄럼틀을 타며 깔깔 웃고 삶을 사랑할 권리가 있다.

추위에 발갛게 상기된 아이의 볼, 축구공 사이로 흩어진 나뭇가지들, 신나게 웃는 아이를 보고 있는데, 나는 그저 이 삶이 아쉬웠다. 아이는 유아기의 마지막 겨울을 보내고 있다. 아이가 공을 차고 있는 이 작은 공원의 자유도, 없는 것일 수 있었다. 삶은 삶이고, 세상은 세상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그렇지만 이 작은 삶조차 모두 이 세상 일에 뿌리내리고 있다. 반드시 이걸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떻게든 희망을 찾아, 이 땅에 그것을 내려 앉혀야만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