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단상
나는 애주가다. 술은 내 삶에 과연 무엇인가?
언제부터였을까, 부모로부터 전해 듣기로는 6~7살 경부터 나의 음주 문화는 시작되었다.
친할머니에게 막걸리는 밥이요, 그 밥 친구는 어린 손녀였다.
막걸리 특유의 탄산에 설탕을 솔솔 뿌려 어린아이 입맛에 딱 맞게 제조를 한 후 어이쿠 잘 먹네~ 하시던 게 지금도 기억에 선하다. 하늘나라 가셔도 막걸리 가져와라 하실 분인데, 거기선 누구랑 드실지...
(이제야 나도 자식을 키워보니 저 어린아이에게 술이 웬 말인지...
혹 저 당시에 뇌를 알코올로 적시지만 않았다면 나는 천재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해본다.)
사진: Unsplash의 Birmingham Museums Trust
그렇게 시작된 나의 애주가 삶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고등학교 때 백일주를 시작으로 소주에 뭔가 섞인, 도수가 낮고 달달한 어떤 소주를 종종 마셨던 거 같다.
신분 상 병나발을 불고는 침대 옆구리에 숨겨놓고 마시다가 그대로 기절한 후 아침에 가방 속에 챙겨 나와 등교했었다. 그때 인생은 쓰다고 생각했다. 척박한 입시 환경 속에 괴로운 마음을 달랠 길은 그저 쓴 맛이 느껴지는 무언가를 들이켜고 기분을 업 시켜야만 숨을 쉬고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전교 1, 2등 아니면 반에서라도 1, 2등 다투는 공부 좀 하는 학생의 답답함으로 인한 일탈이면 좋았겠지만, 공부는 그다지 관심도 없었는데 왜 그토록 입시 현상을 부정하며 괴로워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대학을 진학하고 지 버릇 개 못 준다고 역시나 1학년 때부터 참 열심히도 매일 밤 달렸다.
대학생 20살이 되면 꽃길을 걸을 줄 알았으나 좀 더 활동 반경만 넓어진 고3의 연장선이었고, 21살 남자친구가 생기니 너무 좋아 같이 마시고, 22살 남자친구가 없어지니 새로운 남자친구를 찾아 헤매며 또 부어라 마셔라 부어라 ~ 마셔라 ~
(앗, 글 쓰며 노래까지 생각나는 나는 대체 전생에 무엇이었을까... 누룩이었나...)
삶의 질에 비해 아주 건강하게 잘 살아서 직장인이 되고, 역시나 또 팀의 막내답게 아무 술이나 다 먹습니다~!
상사에게 충성하며 건배사도 외쳐가며 열심히 마셨다. 직장 생활의 경력이 쌓이며 대리라는 직함도 달고 정신을 차리면 좋았으련만, 대리 직급에 힘을 얻어 과음한 날은 반차나 연차를 잘도 내며 쉬었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안되는데 되는데...
(추운 어느 날 과음을 이겨내고 출근하기 위해 아파트 단지 쪽문을 나서는데, 앙상한 나무 가지에 얇디얇은 무언가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뭔가 싸한 기분에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보니 나의 사원증이었다. 이 사원증엔 얼굴이 찍혀있다. 젠장... 전날 내가 엎어지며 가방에서 빠진 그 사원증을 누군가 주인을 찾아주겠다는 생각으로 그 나무에 나의 사원증을 걸어놓은 것이다. 고... 고... 고맙습니다...)
술은 나에게 괴로움과 자괴감, 동시에 무한한 행복감을 준다.
술을 마신 지난 세월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앞으로도 나는 애주가로서 그 명성에 흠이 가지 않게 나의 육신을 잘 거두어 긴 세월, 가는 그날까지 마시고 싶을 때 한 잔 할 수 있는 삶을 희망한다.
(주변에 풍 등으로 부득이하게 절주, 금주를 하게 되는 안타까운 사연들이 늘어간다. 타인에 대한 그 어떤 소식보다도 저 소식이 그렇게 마음이 아프고 안타깝고 그렇다. 쩝.)
그러나 한 편으론 아쉬움도 크다.
직장 생활에서의 괴로움을, 결혼 생활의 버거움을 술로만 지워내려 했다.
술로 지워질 수 있는 문제도, 술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닌 걸 잘 알고 있지만 나를 토닥이고 위로해 줄 수 있는 장치로 술 말곤 생각해내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나 같은 후배들에게 일갈하고 싶다.
술이 뭔 죄냐! 못난 네가 죄지! 술을 욕보이게 말고 너 자신을 찾거라!
사진: Unsplash의 Jakub Dziuba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