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걷기에 대하여

삶의 단상

by 목련

산책을 하기 시작했다. 철학자 칸트가 아닌 평범한 인간답게, 내가 정의하는 산책으로 산책답게 산책한다.

마음에 쿵하고 무언가 떨어질 때, 심장이 터질 듯 답답해질 때,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을 때 그럴 땐, 음악을 듣지 않고 나 혼자 천천히 걷는 것이다. 그리고 나지막하게 나와의 대화를 시작한다. 속으로 생각하기보단 내뱉을 때 좀 더 명징한 사고를 할 수 있다.


초반엔 운동 효과라도 있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전투적으로 걸었다. 만약 걷는 것으로 유산소 운동의 효과를 내려면 차라리 밖으로 나가지 말고 헬스장으로 가라. 일정 궤도에 올라갈 때까진 규칙적인 속도로 멈추지 않고 걸어야 몸에서 열기가 좌악 올라오는 변화가 느껴진다.


(내 경험 상 트레드밀 4.5 정도 속도에 35분 정도는 걸어야 '아 더워' 소리가 절로 튀어나온다.)


밖에서 걷게 되면 외부 풍경부터 그때 또 때마침 오는 연락들까지 살피느라 일정한 속도감을 유지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하여, 걷는 행위는 산책으로서 산책답게 그저 사색하며 걷는 것이다. 발바닥이 제대로 지면을 디딜 수 있도록 천천히 꾹꾹, 허리를 곧게 세우고 어딘가 목적지를 하나 정하여 걸어 나가는 것이다. 팔도 힘차게 흔들며? 됐고, 산책답게 주머니에 손 푹 찌르고 기분 좋게 가볍게 편안하게 나에게 서서히 걸어 들어가는 것이다.


(운동화 뒷축을 보면 늘 한 쪽이 심하게 깎인다. 골반의 비대칭도 문제겠으나 발바닥 힘을 제대로 못 써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신발이 깎인 만큼 발바닥에 굳은 살도 흉하게 자리 잡게 된다. 지금 없다고 방심하지 말기를...)


걷기를 하다 보면 온갖 생각들이 휙휙 지나다닌다. 그중 하나를 낚아채어 내가 그걸 왜 머릿속에 넣고 있었을까? 생각하다 보면 그것이 내게 주는 무게감이 가벼워진다. 별다른 액션 없이 그저 내가 '그것을' 인지했을 뿐임에도 말이다.


원래는 종이에 적어내지 않으면 아무것도 정리되지 않는 것 같아서 머릿속의 게이지가 온갖 생각으로 99% 까지 올라오면 노트 한 권을 들고 커피숍으로 향했다. 커피숍에 앉아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고, 무엇이 고민이었더라 그 고민을 밝히다가, 왜 그랬을까 해결책을 찾다가 그렇게 고민 속의 고민에 빠져 손가락이 부러질 듯 적다 보면 뭔가 해결이 된 것 같았다. 그런데 꽤 짧은 시간 후 또 99%까지 차올랐다. 이게 다 망할 회사 때문이겠지, 날 가만두지 않으니 스트레스가 또 쌓인 거지 생각했다. 그리곤 위와 같은 패턴을 반복했다. 백수가 되어 조금은 여유롭게 한 곳에 머물며 생각을 할 수 있게 되니 변화가 찾아왔다. 그 전의 패턴대로 열심히 적다 보니 머릿속은 아직도 뿌연 것이 있는데 난 뭘 적고 있지? 무엇을, 왜 적고 있었을까...? 음... 뭔가 쓰고 쓰면서 쓰는 것에 빠져서 정작 봐야 할 것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내가 나에게 100% 솔직할 수도 없었다. 메모한 것을 찢어버리거나 태워버릴 계획임에도 적는 행위가 내 기대보다 솔직해지기도 어렵다는 걸 알게 되었다.


회사에서 답답할 때마다 혼자보다는 동료와 걸었던 것 같다. 때로 혼자 걸을 땐 누굴 만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에 도망치듯 걸었다.


만약 그때 내가 혼자 걸었다면, 새로운 길로 조금 더 멀리 여행을 떠났다면 그래서 나와 좀 더 진지한 대화를 했더라면, 제 각각 상황마다 나의 판단과 결정들은 좀 더 현명하게 바뀌었을까? 감정적보다는 이성적으로 객관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을까?


지금이라도 산책을 통해 내가 나를 들여다볼 수 있는 여유와 마음이 생겨 어제보다는 나은 내가 되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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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UnsplashMichael



#걷기의인문학#레베카솔닛#김정아#반비

(22p) 보행은 수단인 동시에 목적이며, 여행인 동시에 목적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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