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 다섯 번째 날.
오늘은 일요일이다.
포르투갈도 여느 유럽과 다름없이
일요일에 닫는 상점이 굉장히 많다.
그리고 다들 어제 불토를 보내서 그런지
역시나 아침 거리엔 사람이 없다.
휑.
오늘은 에어비앤비 트립을 통해 신청한
공원에서 하는 야외 요가에 가는 날이다.
자연도 좋아하고 요가도 좋아하는 나에겐
꼭 한번 해보고 싶었던 버킷리스트 중 하나.
자연 속에서 요가하기.
9시까지 에스트렐라 공원으로 가야 한다.
운동복에 슬리퍼 신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공원으로 가보자.
총총 걷는다, 버켄스탁이 미끄럽다.
사람 없고 닫힌 상점들 사이에서도
길을 걷다 보니 구경거리가 쏠쏠했다.
셔터에 그려져 있는 그래피티가 좋았다.
병원에는 의사, 사진관에는 사진사.
닫혀있는 상점의 셔터에 저렇게 그림을 그려 놓을 생각을 하다니!
포르투갈의 온 거리는 아티스틱하다.
배가 고파서 아침으로 바나나를 얌얌.
근데 너무 안 익었네, 사각사각. 사과 먹는 줄?
사실 오늘은 아침부터 흐리고 비가 온다고 했다.
예정된 요가 시간은 아침 8시였고
새벽에 핸드폰을 봤더니, 요가 호스트한테 메시지가 와있었다.
리스본에 언제까지 머무냐고, 오늘 아침에 비가 올 것 같다고.
허허 그럼 안되지....
밖에서 하는 요간데 ㅠㅠ
아침에 서둘러서 답장을 보냈다,
나 나가냐고 마냐고 어떻게 해야 하냐고.
다시 체크해보니 오늘 아침엔 비가 안 올 것 같다고 정상적으로 진행하자고 한다.
다행이다.
정말 하늘이 좀 흐리긴 하다.
요가 중에 비가 내리진 않겠지?
오늘도 포르투갈에서 아침을 시작해볼까?
일요일 아침에도 예쁜 거리.
사람 너무 없다 허허.
요가를 하기로 한 공원은 걸어서 한 시간은 가야 해서.
운동 전부터 힘을 뺄 수 없으니
오늘은 버스를 탄다.
문명인답게, 정확한 버스 노선도 검색했다.
774번 버스.
버스 하니까 생각난다.
목요일인가 금요일 밤에 퇴근 시간쯤 버스 안에 있는 사람들을 봤는데,
버스에 기대어 있는 사람들 표정에 어찌나 소울이 없던지
서울이나 여기나 퇴근하는 사람들은 표정에 피곤함이 가득하다.
이 낭만적인 도시에서도 현실은 똑같나 보다.
요가를 위해 다시 찾은 에스트렐라 공원.
공기가 적당히 차가우면서 촉촉하다, 차분하게 요가하기 딱 좋은 날씨다.
아니 입병이 쉽게 낫는 병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오기 전에 한국에서부터 입병이 있었는데, 2주가 지나도 전혀 나아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구각염이라는 염증이었다....
입만 벌려도 너무 따갑고 아프다.
내일은 꼭 연고를 사서 발라야겠다. 와서 약국을 몇 번을 가는지 대체.
타국에서 아프니 괜히 더 속상하다.
큰일도 아니건만.
입 주변도 너무 아프고,
자외선에 크게 데인 날 이후 이마 쪽에 좁쌀도 많이 올라오고 빨갛게 알레르기 증상이 계속 있다.
로션이라곤 피지오겔 딱 한 개 가져왔는데...
3주 동안 피지오겔 하나로 잘 버티려나.
별별 생각을 다 하고 있는데, 드디어 요가 선생님이 오셨다!
내가 에어비앤비에서 신청한 요가 트립은 하루 10유로였다.
원데이 클래스라서 그런지 요가 난이도나 특별함은 없었고 거의 스트레칭 수준이었다.
선생님은 친절했고, 오늘 수강생은 나 포함 두 명밖에 없었다.
비즈니스 트립으로 포르투갈에 온 언니. 이 언니도 참 부지런하다.
출장 와서 아침부터 요가 수업에 오다니!
요가 오자마자
'아 정말 참여하길 잘했다'라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리스본 여행 중 베스트 타임인 것 같다'라는 생각도 잠시 할 정도.
일단은 날씨가 너무 좋았다.
청량하고 아주 살짝 흐렸고, 숲 내음이 풍부했다.
밖에서 하는 요가를 너무 해보고 싶었는데
정말 너무 좋았다.
머리 위에선 도토리가 떨어지고,
바닥에는 개미도 기어갔지만 자연과 하나가 되는 기분이었다.
자세를 하면서 머리를 들어 위를 보면 나무가 있고,
내 몸 사이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불었고,
가만히 눈을 감으면 새소리가 짹짹거렸다.
역시 요가는 정말 좋아.
정말 정말 좋아.
요가를 하면서 쓸데없는 에너지를 내보내고
내 안에 집중했고,
동시에 주변으로부터의 좋은 에너지를 채울 수 있었던 것 같다.
오히려 천천히 하는 수련이어서 더 좋았을 수도 있다.
땀 흘리며 빠른 플로우로 진행했다면, 이런 여유를 느끼긴 힘들었을 것 같기도 하다.
다음에도 기회가 되면 바다나 산에서도 요가를 해보고 싶다.
치앙마이나 발리 같은 동남아 휴양지 쪽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요즘 옥상 요가, 자연 요가 등등 쉽게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많이 생기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근데 좀 알아봤는데 되게 비싸더라...
바닷가에서 요가하고 서핑도 하고 같이 파티도 하고 이런 프로모션을
진행하는 플랫폼들이 꽤 있던데.
참여 경험이 어떤지 궁금하다.
그리고 또 좋았던 건, 공원 한쪽에서 요가를 하고 있어도 그다지 지나가는 사람들이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
왠지 한강공원에서 요가를 하면 지나가는 모든 사람이 신기하게 쳐다볼 것 같은 느낌..
타지라 그런지 더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해방되어 좋다.
예전에 2010년에 갓 20살이 되자마자 언니, 동생이랑 호주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여기저기 도심에 크고 자연 자연한 공원이 정말 많아서 신기했었는데
사람들이 4-5명 모여서 공원에서 work out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헬스장이 아니라 야외 공원에서 모여서 단체 PT를 하고 있다니!
광합성도 하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서 함께 즐겁게 땀 흘리며 운동하다니.
갓 20살 된 나에겐 처음 접하는 라이프스타일이라 정말 신기했고 부러웠고 그런 프로그램들이
한국에도 많이 도입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
사랑스러운 룰루레몬 얼라인 팬츠는 너무너무 너무 편하게 잘 입고 있다.
입으면 입을수록 진짜 편하다.
마지막에 선생님이 아로마 오일을 발라주고 마사지를 해주신다.
공원의 한가운데에서 요가 후 휴식
오랜만에 몸이 붕 뜨는듯한 가벼움과 신선함이 느껴진다.
요가에 관심 있다면, 이런 요가 트립을 경험해봐도 이색적일 듯!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
큰 나무들 사이에 둘러싸여서
바닥에 도토리들이 떨어져 있고, 바람이 솔솔 불고
이 한가운데에서 요가를 하다니!
힐링 이런 말 별로 안 좋아하지만, 힐링된다고 하면 적당하겠다.
이제 배가 고프다.
별로 오픈한 곳이 없지만, 지나가던 내 눈길 발길 코길 입길 귓길 다 사로잡은 아보카도 브런치 식당.
내가 심각한 아보카도 성애잔데
(밥반찬으로도 아보카도만 먹을 때도 있음)
간판이 아보카도 모양임.
왜 안 들어가.
웜마
진짜 맛있다.
여태껏 먹은 것 중 제일 맛있었음.
(근데 한국에도 이런 거 많음 ㅎㅎㅎㅎㅎ벗뜨 여기가 가성비 훨씬 좋음)
왜 내가 만들면 이런 맛이 안 날까?
위에 올라간 건 수란! 드디어 단백질.
음
yummy
yummy
유덕화 아닙니다.
오늘 분명히 날씨 안 좋다고 했는데
날씨 완전 화창 쨍쨍 진짜 더움.
여기는 비 온다고 표시되어 있어도, 잠깐 오고 날씨가 잘 갠다고 함.
후 오늘도 덥구나.
배가 너무 불러서 걸으러 갑니다.
호스트가 조깅하기 좋다고 추천해 준 곳으로 발걸음을 옮겨본다.
코메르시우 광장에서 테주강변으로 와서 벨렘 가는 방향으로 쭉 오면 된다.
여기서 조깅하는 사람들 되게 많았고, 자전거 타는 사람들도 많았다.
한마디로 한강임!
ㅎㅎㅎㅎㅎㅎㅎ
강이라고 하지만 바다에 가깝다. 바다 냄새가 많이 나는걸.
정말 가끔 날씨 너무 좋고 햇살 너무 좋으면
엔돌핀 막 돌면서 기분이 너무너무 좋을 때가 있다.
이때가 딱 그랬다.
기분 좋아서 막 웃음이 배시시
바람까지 너무나 시원했다.
하늘이랑 구름 봐.....!
그렇게 분위기와 기분에 매우 도취되어
우버 전기자전거 JUMP를 이용해보았다.
와... 나 이거 왜 이제 탔지?
전기자전거라서 페달을 한 번만 밟아도 앞으로 쭉쭉~ 엄청 잘 나간다.
근데 자전거가 정말 정말 무겁다. 두 손으로도 절대 못 듦.
이 하이텐션을 유지하기 위해
강변 따라 아주 그냥 막 달렸다.
안 그래도 쭉쭉 잘 나가는 자전건데도 페달을 그리 열심히 돌렸다.
우버에 카드 등록해두면 따릉이랑 똑같이
따로 결제할 필요도 없고 알아서 카드에서 이용 시간만큼 돈이 나간다.
그리고 다 타고나서는 킥고잉처럼 아무 데나 두면 된다.
텐션과 체력이 점차 떨어지기 시작했다.
쭉 달리다가 너무 더워서
마음을 진정시키고 자전거에서 하차했다.
그리고 다시 돌아가기 위해 오늘은 메트로를 타본다.
그렇지만 나의 착각
이것은 기차였다.
어라 이상하게도 카드 찍는 데가 따로 없길래
오는 기차를 그냥 냉큼 탔다.
의도치 않은 무임승차.
약간 찝찝한 마음으로 2 정거장을 갔지만
사실 꺼먼 속으로 "오 개이득" 이러고 있었다.
그럼 그렇지, 나갈 때 카드를 찍고 나가려고 했는데
빨간불이 들어오면서 삐삐삐!
절대 게이트를 열어주지 않았다.
들어올 때 카드를 찍고 들어오지 않았으니, 정상적으로 나갈 수 없는 게 당연한 것.
sos 버튼을 눌렀다.
한국에서처럼 스피커 밖에서 '무슨 일이세요?'
할 줄 알았는데..... 그래서 뭐라고 설명할지 준비 중이었는데.
삐뽀 삐뽀 경고음이 엄청 크게 울린다.
역에서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이 다 쳐다보고 갈 정도로.
무슨 경찰차 온 줄....?
아마 이 알람 소리를 크게 켜서, 주변의 관계자가 오게 하려는 건가 보다.
휴.... 쪽팔리게 한 1분을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는데,
역 관계자가 왔다.
-헤이 컴히얼
-쫑쫑쫑. 쏘리...
벌금 내야 하는 줄 알고 졸았는데,
그냥 지나가라고 문을 열어줬다.
앞으론 제발 조심하자.
-나 그냥 가도 돼? 오브리가도!
그렇게 혼자서 우여곡절을 겪고
어떤 길로 가고 있는데, 커피 냄새가 좋은 로스터리 카페가 보인다.
오랜만에 접하는 한국에 있는 힙한 카페 느낌쓰.
여기는 웬일로 아이스커피가 있다.
날이 더우니 아아 한 잔 마시면서 잠시 쉬면서 책이나 읽어야겠다.
(아아 라고 주문하면 못 알아듣겠지?)
한량이 따로 없구나, 에헤라디야
시원하게 얼음 가득 차 있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기대했으나
괜한 기대를 했다.
얼음 하나 동동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온더락인줄?
그래도 커피맛은 괜찮았다, 난 산미 있는 커피 좋아서.
앤트러사이트 커피 먹는 느낌!
그나저나 포르투갈에까지
내가 데리고 온 책 중 하나는 법정 스님 무소유.
그냥 이 책을 가져와서 읽고 싶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집에 있던 오래된 책인데, 다시 읽어보고 싶어 졌다.
필력 너무 좋으시다.
나이가 들어 읽으니, 공감 가는 부분도 얻게 되는 지혜도 많아서 밑줄 열심히 그어가며 한참을 읽었다.
"오늘 나의 취미는 끝없는, 끝없는 인내다"
두 손 두 발 다 들었습니다 스님.....
오늘은 해지기 전에 집으로 들어왔다.
오늘은 내 방 테라스에서 책을 마저 읽어야지.
집에 왔더니 오늘은 살로메가 외출을 하지 않았다.
손님도 계셨다.
귀여운 포르투갈 꼬마 숙녀들 ㅎㅎㅎㅎㅎㅎ
오노.....
밤 9시가 되니
비가 미친 듯이 온다
포르투갈에서 첫 비
오늘 하루는 비로 차분하게 마무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