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다마를 기억하고 추모하며
거센 폭풍우가 몰아치고 나면
많은 것이 휩쓸려 사라지고
아직 흔적은 남아있어도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세상은 고요하다.
내 인생에도
지난 일주일 그런 폭풍우가 지나갔다.
아침에 깨어나면 생각한다.
그래 "아다마는 죽었지"...
그리고 다시 생각한다.
그런데 "왜 죽어야만 했지?"
잊혀지지 않는
모든 순간 순간의 장면들
내가 조금만 다르게 행동했더라면
결과는 다르지 않았을까 하는
부질없는 후회들
수 많은 위로가 쏟아지고
수 없이 기도하고 있지만
지금은
그 이유가 들리지 않는다.
지구 한편에
지금 내가 땅을 밟고
같이 숨쉬며 사는 삶의 터전에서
죽지 않았어야 하는
소중한 한 아이가 죽었다.
인생을 한 번 꽃피워 보지도 못한채
오랜 시간 고통속에 지내다가..
하지만 누가 그랬다.
살고 죽는 것..
우리가 어찌 할 수 없는 것이
"삶" 이라고.
하지만
이렇게 차고 넘치는 세상에
돈이 없어서
의료혜택을 받지 못해서
아프리카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서
그래서 죽어야 한다면
나는 그런 "부당한 세상"은
받아들이 수 없다.
뜨거운 가슴
차가운 머리
국제자원활동
국제개발협력
글로벌 시대를 외치고
국제적인 일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문구이다.
그런데
우리의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머리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그 노력들은 정말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것일까?
왜 이런 비극적인 현실이
이렇게 발달된 최첨단 사회에서
아직도 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으며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이 시급한 문제들을 모르거나 무관심하여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을까?
이것은 "한 인간의 생명에 관한 일" 인데 ....
아다마는
마을속에서
그 많은 주민들 속에서
5년이나 방치되었다.
왜 그들은 한번이라도
아기를 큰 병원에 데려가
치료하려고 애쓰지 않았을까?
왜 더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아이를 그렇게 내버려 두었을까?
돈과 능력이 없어서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을까?
또한 많은 구호 자금과 단체들에서는
20분 밖에 떨어지지 않은 빌라지에 있는
이 아이를 왜 발견하지 못했을까?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서야
뒤 늦은 치료를 시도했던
Adama는 과연..
정말 죽어야만 하는 운명이었을까?
이제는 돌이킬 수 없고
여전히 답을 구할 수 없는 질문들
개인적인 감정이 많이 포함된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가 직시해야 하는 현실이 아닐까?
실제 우리는
뜨거운 가슴도
차가운 머리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가지고 있지 못하다.
죽음 이라는 단어 앞에서
먹먹하고 답답하다.
부족하다 너무 부족함을 느낀다.
신앙인으로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
그래서
아다마의 죽음은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이해할 수 없어도
하늘의 뜻 이라 믿으려한다.
하루 일찍
집에서 간호를 하고 있을때가 아니라
한참 치료가 진행되어서
많은 모금이 진행되었을 때가 아니라
입원하고 첫 날 밤.
부모님만 남아 간호를 하고 있던
새벽시간 아이가 죽은 사실이나,
수술이 진행되었어도
치료를 마쳤더라도
다른 아이처럼 뛰어놀지 못하고
결국 장애와 편견을 안고 살아가야 했으니
그 힘든 삶보다는
가장 정확한 하나님의 때에
하늘나라로 부르신 것이 아닐까 하는
그런 인간적인 생각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위로이자 이해이다.
그렇지만 한 사람으로 느끼는 무력감은 어찌할 수 없다.
하지만 이렇게 멈출 수가 없다.
하나님이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그 분의 영역을 남겨두셨듯이
반대로 나는
우리에게 남겨진 몫을 생각해본다.
아다마의 죽음이
나와 우리에게 남기는 메세지.
그 메세지를 듣기 위해서
죄책감이나 안타까움, 슬픔의 감정을 나는 잠시 내려두었다.
보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그 몰아치던 폭풍우를 피할 방법은 없었는지
또는 앞으로 피할 방법은 없는지 생각하게 된다.
"그래 폭풍우 자체는 어쩔 수 없겠지."
하지만 건물을 튼튼하게 짓고
사람들에게 빨리 알려서 대피시키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의 대응을 한다면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것을 아다마에게 적용시켜 본다면
나는 무엇을 했어야 했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이번 일을 계기로
나는 삶의 나침반이 바뀌는 것을 느낀다.
"아다마와 같은 아이들을 살려야 한다."
실체적이고 구체적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우리의 노력 부족과 실수로
무고한 생명을 희생시키지 않아야 하고
그것을 예방하고 교육하고 막기 위한
필사적인 변화의 노력을 해야한다.
그러나 사실
생각해보지 못했던
이 낯선 길이 나는 두렵다.
그 과정에서 또 얼마나 많은 아이들을
"Adama" 처럼 보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아다마가 죽음을 통해 나에게 준 메세지이다.
아다마에 대한 마음의 빚
그것을 갚기 위한 사람으로서의 도리로
나는 그것을 기꺼이 내 길로 받아들이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아무리 험한 길이 되더라도
나는 차근차근 이 문제에 다가가고
그것을 변화시키기 위해 싸워나갈 것이다.
하나님의 영역은 넘을 수 없어도
인간이 넘을 수 있는 영역까지는 가야한다.
그리고 그것은 삶을 걸어야 하는 일이다.
나 혼자 배부르고 풍요한 세상의 일부가 되지 않고,
더 많은 가난하고 소외 받은자가 고통받고 있는
치열한 삶의 전쟁터로 가는 일
그런데 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무고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는
우리가 함께 변해야 하고
같이 이 전쟁에 자원해야한다.
한, 두 사람이 이 일을 할 수 없다.
하지만 한 사람이 아닌 다수가,
점점 더 많은 사람과 전체가 변화한다면..
우리는 수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고
그들과 같이 살아갈 수 있다.
내가 내 삶을 걸지 않으면
다른 생명을 구할 수 없다.
그것은 나와 그 생명이
정말 동등하게 가치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나는 다시 한번
인생의 다짐을 한다.
폭풍우가 다시 밀려오면
그때는 그 폭풍우에 내가 휩쓸려 가더라도
제2, 제3의 아다마를 꼭 구해야만 한다.
그 죽음을 방관하는 것은
내 스스로를 죽이는 것과 같다.
한 귀한 생명이
나의 생명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것을
아다마의 죽음을 통해 뼈저리게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뜨거운 마음을 다시 지피되,
보다 냉정한 이성으로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그것을 용기와 행동으로 바꾸어
보다 근본적이고 실체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협력하고 연대하며 움직이고, 실천해 나가야 한다.
그 길이 험하고 멀지라도
함께 가는 사람들이 있을 것을
결국 부당한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을
나는 굳게 믿는다.
언젠가 먼 미래에
다시 아다마를 만나게 되면
지키지 못한 약속을 사과하고
미처 못다한 말들을 꼭 전하고 싶다.
"구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너를 통해서 너와 같은 수 많은 아이가 살 수 있었고
우리는 그것을 위해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다고..."
이제는 꼭 행복한 곳에서 편히 쉬기를 소망하며
이 약속과 다짐을 Adama의 죽음 앞에 바친다.
기도하며
2012. 3. 25
세네갈의 한 봉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