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리의 테이블 Jun 16. 2023

책을 읽는 이유

나로부터 벗어나서 타자의 세계로 

이기기 위한 책 읽기

한 학생이 저에게 책을 추천해 준 적이 있었습니다. 

그 책은 '리딩으로 리드하라'라는 책이었습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책 제목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책을 읽는데 꼭 리드까지 해야 하나?"


근데 뭔가 내 안에서 대안적 대답이 없다는 것도 동시에 느꼈습니다. 


"이기기 위해서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면... 무엇을 위해서 읽어야 하는 걸까?"


고전 100권 도전하기

또 한 번은 고전 100권을 읽어내려고 노력한 적이 있었습니다. 고전이라고 하는 것은 역사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상황을 통해서 검증되어 그 안에 불편하는 가치를 지닌 책을 말합니다. 


고전을 'Classic'이라고 하는데, 로마의 시민계급 중 가장 높은 계급인 'Classicus'로부터 유래한 말입니다. 클라시쿠스는 로마가 전쟁을 하게 되면 국가를 위해서 배를 내어줄 수 있는 재정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었는데, 어려운 시기에 기댈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를 함께 갖게 되었습니다. 어원을 통해서 고전 Classic의 의미를 바라본다면, '인생의 어려운 순간에 길을 찾을 수 있는' 책이라는 의미로 통하게 됩니다. 


저는 계획을 세우고,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오디세이아', 헤로도토스의 '역사'등을 읽어 갔습니다. 

알고는 있었지만, 읽어보지 못했던 책들을 읽으면서 재미있고,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한 권 한 권 읽어나가면서 한 가지 질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왜 이 책들을 읽는 거지?" 


머리만 커진다는 것의 의미 

철학적으로 보면 현대사회를 '포스트 모던' 사회라 합니다. 

사실 '포스트 모던'이라는 말은 여러 가지 의미와 다양한 철학적 개념들을 모두 내포하고 있는 말입니다. 


'Post-modern'


우리말로 번역해 보면 '근대 이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근대란, 일반적으로 산업혁명 이후 18, 19세기를 말합니다. 


즉, 근대의 다양한 결함들을 극복하기 위한 사상적, 예술적, 종교적 몸부림이 바로 포스트 모던에 모두 포함이 됩니다. 예술적으로는 '다다이즘', 철학적으로는 '해체주의', '비판철학', '실존주의', '구조주의' 등으로 대표됩니다. 


근대의 결함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성중심주의 또는 수리자연과학 중심 주의를 일컫습니다. 

쉽게 말하면, 모든 것을 숫자로 측정가능한지를 묻고, 숫자로 사람의 마음도 측정하고, 숫자로 사회현상도 파악하고, 인간을 효용가치로 바라보는 방식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수학과 과학을 신봉했던 근대사회는 과학기술을 발전시켰고, 이 과학기술을 통해서 대단한 물건들을 많이 만들어 냈습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모든 풍요(음식, 옷, 전자기기, 자동차, 비행기 등)는 근대의 산물입니다. 

하지만, 근대는 머리만 커지는 비정상적 인간이었습니다. 

효용과 효율에만 매몰되어 인간의 내면과 따뜻한 마음을 상실했습니다. 

그 결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나라를 점령하는 제국주의가 탄생하고, 세계 1차, 2차 대전이 벌어져 유럽 전체가 망할 수도 있는 순간까지 도달하게 되어서야 비로소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는 목적에 대하여 

책은 크게 2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지식가 기술을 습득하기 위한 책과 나 자신에게 매몰된 나를 끌어내어 타자, 세계, 하나님에게로 나아가는 책이 있습니다. 

전자의 책들은 일반적으로 '실용서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교과목들이 그렇습니다. 

반면, 우리를 나 자신으로부터 더 넓은 세계로 인도하는 책들이 있습니다. 

(물론 그 경계는 애매한 면이 있습니다. 실용서적이라 하더라도, 다른 방식으로 다가올 수가 있습니다) 

저는 그러한 책들이 '고전'으로 분류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때 저도 다른 사람에게 '똑똑한 사람'이고 싶어서 책을 읽었던 적이 있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도 그렇고, 고전을 읽을 때도 그렇습니다. 

자랑하고 싶은 것이죠. 

그러니 더 많이 읽어야 하고, 더 많은 지식을 기억하여,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내면의 목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다양한 책을 많이 읽는 것은 유익합니다.) 

하지만, 내가 무엇인가를 더 많이 아는 것과 내가 어떤 사람으로 변하는 것은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일 수 있습니다. 고전을 100권 다 읽는다고 해도 나의 존재는 전혀 변하지 않고, 이 작은 머리통을 수박만큼 키우는 기형적 인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어느 순간 깊게 다가왔습니다. 


나를 나 밖으로 끌어낼 수 있는 1권의 책

이면 충분한 것은 책 1권이 충분해서가 아니라, 조금이라도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때부터 저는 많은 책을 읽기보다는 깊게 읽기 시작했습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내 삶을 투영해 보면, 내가 타자와 세계 그리고 하나님께 나아가고 있는지를 점검해 보게 되었습니다. 나 중심으로 지식을 수집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세계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표면만 건드리는 책이 있습니다. 나에게 즐거움을 주지만, 내 마음을 부술 수는 없는 책들은 가끔 필요는 하지만 크게 의미는 없습니다. 나의 마음의 깊은 내면을 울리는 책들... 


그 책 한 권이면 충분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정희네' 같은 서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