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트르와 자코메티의 상상력
청소년들과 함께 생활한 지 약 17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교회에서도 중고등부를 가르치고, 약 4년 정도 유학생들을 돌보기도 했고, 지금은 대안학교 교사로 13년째 일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알게 되는 몇 가지 사실이 있는데, 하나는 청소년들은 정서적 안정과 학습능력이 상당 부분 정비례 관계에 있다는 점과 다른 하나는 정서적 안정은 절대적으로 가정의 안정에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학교는 부모를 넘어설 수 없다'
부모가 1이라는 힘을 사용해서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을 놓치면, 학교가 10이라는 힘을 써도 극복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만들어 낸 '해석의 세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나만의 철학'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세계관이라고도 부르지만, 사람들이 각자 가지고 있는 것은 단순한 관점이나 생각이 아닌 하나의 '완벽한 세계'입니다.
사람들은 하나의 사건을 보고 그 사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각자의 해석을 통해 각자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자신의 해석을 통해서 만들어진 그 세계 안에 존재하면, 다른 세계가 이상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이때 다른 세계와 소통해보고자 하면 '대화'가 되는 것이고, 대결하고자 하면 '갈등'이 되는 것입니다.
각자의 세계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측면에서 '다르다'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어떤 세계는 '잘못된 것'일 수 있습니다. 특히 아이들이 경험한 부정적인 경험은 외부세계와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부정적인 해석 도구' 갖게 합니다. 아이는 부정적인 세계에서 살아가며 움츠려 들고, 폐쇄적인 상태가 되어갑니다.
요즘 유행하는 넷플릭스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를 보면 '서완님'이라는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서완님은 공시에 6차례 떨어진 후 절망의 세계를 회피하여 망상의 세계에 자신의 세계를 구축합니다. 그 세계에서 자신은 용을 죽이고 왕국을 구하는 위대한 인물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청소년들 사이에 정상 범주에 있으면서도 폐쇄적인 세계 안에 갇힌 아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세계는 잘못된 세계입니다. 각자의 세계는 당사자와 타인에게 유익을 주어야 하며, 상호 연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잘못된 세계는 서로를 단절시키고, 당사자를 고립시켜, 상호 불 익을 주게 됩니다.
사르트르는 인간이 두 가지 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하나는 익히 알고 있는 인식적 의식입니다. 물리적인 세계를 보고, 인식하는 의식입니다.
다른 하나는 상상적 의식입니다. 이는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하는 의식입니다.
우리가 그림을 보고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캔버스에는 말을 탄 한 남자가 위풍당당하게 서 있습니다. '나폴레옹'입니다.
우리는 나폴레옹의 그림을 보면서 나폴레옹의 감정과 그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즉각적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인식적 의식(감각적 인식) 측면에서 보면, 우리는 그저 '말을 탄 한 사람을 그린 그림' 앞에 서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상상적 인식은 그 그림에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과 경험을 동원하여 '상상력'을 발휘하며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늠름하다'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은 '거만하다'라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듯 동일한 물리적 공간 안에서도 인간은 각자 자유롭게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해 내는 자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사르트르가 '상상적 의식'을 통해서 말하고자 했던 바입니다. 그는 '인간은 자유로우며 스스로 책임지는 존재'라는 철학적 중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실존주의 예술가인 '자코메티'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관객의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려고 했습니다.
그는 기괴한 모습의 완성되지 않은 사람을 창조했습니다. 거친 피부에 푹 들어간 눈을 가진 사람을 조각했습니다. 좀비 같기도 한 조각의 모습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의외의 부분은 '눈'입니다.
자코메티 조각의 인간들은 모두 '무언가를 응시'하는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 그는 평범한 사람의 모습이 아니라, 완성되지 않은 기괴한 사람을 조각했을까요? 그것은 자코메티가 상상하는(생각하는) 인간의 본질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조각을 통해서 관객들도 상상하기를 바랐습니다.
자코메티의 조각을 보는 관객은 처음부터 '이상하다'라고 느낄 것이고, '왜 그가 이런 조각을 했는가?'라는 생각으로 이어집니다. 자코메티는 자신의 조각을 통해서 관객의 상상력을 불러일으킵니다.
사르트르에 따르면, 상상력은 창조력이고, 자유이며,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것입니다. 작품에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함으로써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사르트르가 자코메티의 작품을 높이 평가한 것은 바로 그가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 관객에게 자유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인간은 해석이라는 방식을 통해서 자신의 세계를 창조하는 존재입니다.
중년의 나이에 들어 선 저는 요즘 새삼스럽게 어린 시절의 나에 대해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어린 시절의 나는 직면한 삶을 어떻게 해석해 왔을까? 그때 그러한 해석은 과연 유익했던 것인가? 깨어진 관계들과 지나치게 단정적인 태도에 대해 다시 한번 돌아보는 시간은 결국 그 당시 나의 해석이 어떠했는가 하는 생각으로 이어집니다. 사르트르는 인간은 상상력을 통해서 세계를 해석하며, 창조하는 자유로운 존재라고 했습니다. 이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는데, 나의 해석이 과연 타인과 세계에 유익을 주는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