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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rpeBM Aug 15. 2023

LUCK(행운)


‘오직 단 한 명만이 먹을 수 있는 약.’ 처음에 이 문구를 봤을 땐, 생동성 알바도 사람을 못 구하고 있나 싶었다. 저런 마케팅 문구까지 필요할 일인가란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급전이 필요한 나였기에 구인 공고를 살펴봤다. 웬만하면 다른 일을 구했겠지만 이 약 실험 알바 공고는 달랐다. ‘이 약은 당신의 [운]을 높여줍니다.’ 말도 안 된다 생각했지만 속는 셈 치고 한 번 가보기로 했다.

 

실험 대상자로 선정되기 위해선 몇 가지 검사를 거쳐야 했다. 검사 대기실엔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오징어 게임’이 현실에서 펼쳐진다면 이런 모습일 것 같았다. 저 사람들도 나만큼 거지 같은 삶을 살아왔겠구나. 그래도 나만큼 풀리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작은 것 하나쯤은 내가 생각한 대로 풀릴 법도 한데, 왜 나는 그 작은 것 하나마저도 생각대로 되는 것이 하나 없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중, 담당자 한 명이 들어왔다.

“네 여러분 반갑습니다. 우선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급여는 공고에 나와 있는 대로 드릴 거고... 그전에 이 약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담당자는 이 세계는 양자로 되어 있고 우리 몸이 양자로 되어 있으며 서로 상호작용한다, 양자는 불확정한데 이 약은 우리 몸의 양자에 영향을 끼쳐 불확정성을 줄인다는 둥 어쩐다는 둥 어려운 소리들만 늘어놓았다.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 약을 드시면 여러분은 본능적으로 양자를 컨트롤할 수 있게 되고 운을 다룰 수 있게 됩니다.” 담당자는 만족스럽다는 듯 설명을 끝마쳤다.

“그런데 왜 이 약은 한 명만 먹을 수 있나요?” 참가자 중 누군가가 물었다.

“그건 양자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존재가 둘 이상이 되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도저히 예측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뚫는 창과 모든 것을 막는 방패가 마주치면 결과를 알 수 없듯이 말이죠.” 질문자의 표정은 불만족스러웠지만 담당자는 애써 무시했다.

“그럼 지금부터 검사를 진행하겠습니다.”

 

검사는 간단한 신체검사 뒤 주사위 던지기, 가위바위보 등의 게임들을 진행했다. 참가자의 운을 미리 시험하는 것 같았다. 역시나 나는 하는 것마다 안됐다. 주사위는 1이 나오기 일쑤고 가위바위보도 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에도 안 되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며칠이 지나고서 연락을 받았다. 생동성 실험 대상자에 선정되었다는 연락이었다. 그렇게 나는 전 세계에 하나뿐인 약을 먹었고 그게 1년 전이었다.

 

내가 처음 했던 일은 로또를 산 것이었다. 결과는 놀랍게도 1등이었다. 나는 로또를 다시 한번 구매했다. 이번에도 역시 1등이었다. 2회 연속 1등 당첨이라는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온 세상의 관심이 내게 집중되었다. 역시나 운이 좋게도 내 신상이 밝혀지는 일까진 없었다. 하지만 모두가 나의 존재를 궁금해했고 그 일로 복권 구매를 그만두었다.

 

평생 해보지 못했던 연애도 해보았다. 하지만 내가 생각한 그런 느낌은 아니었다. 상대는 내게 모든 것을 맞춰주었다. 처음 만난 날 바로 교제에 응해주었고, 이후 데이트 때도 항상 내 말을 따라주었다. 화 한 번, 짜증 한 번 내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사람이 아닌 AI 프로그램과 연애를 하는 것만 같았다. 나는 이별을 고했고, 이별조차 별다른 말없이 받아들여주었다.

 

약을 먹기 전과는 달리, 내가 원하는 대로 무엇이든 되는 인생이었지만, 삶에 대한 재미는 점점 줄어들었다. 무얼 해야 할지도 몰랐고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인생이 재밌었던 것은 약을 먹고 첫 한 달뿐이었다.

 

그렇게 의욕 없이 지낸 지 일 년이 지났다. 그리고 일 년 전, 처음 이 약을 설명해 줬던 담당자가 찾아왔다. 그는 내게 몇 가지 질문을 했다.

“지난주했던 건강검진 결과 보면... 크게 몸도 아프신 데는 없는 것 같고... 뭐 문제없으시면 저는 이만 가보도록 할게요.”

“네? 이러고 끝인가요?” 나는 무언가가 더 있을 거라 생각했다.

“뭐가 더 있어야 하나요?” 담당자가 내게 되물었다.

“다시 예전처럼 되돌린다거나 뭐 약 효능이 얼마 지나면 사라진다거나 이런 거 없어요?”

“약효는 영구적입니다.” 나는 그의 대답이 잔인하게 느껴졌다.

“더 질문 없으시면 그럼...”

“... 전 행복하지 않아요...” 참고 참았던 말을 하고야 말았다. 담당자는 내 말을 듣더니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이 약은 행운을 주는 약 이지, 행복을 주진 않습니다. 그건 선생님의 몫입니다.”

나는 더 이상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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