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내일 죽는다면...” 또 시작이구나 싶었다. 그는 허구한 날 이런 식의 질문을 던지곤 했다. ‘내일 죽는다면 뭘 먹고 싶어?’, ‘내일 죽는다면 어떤 영화를 보고 싶어?’, ‘내일 죽는다면 어디 가보고 싶어?’ 처음엔 나도 이런 질문들에 답하는 것이 즐거웠다. 때론 그 대답으로 내가 가장 좋아한다고 생각한 것들을 답하기도 했고, 때론 당시의 순간적인 감정이 내뱉는 대답을 하기도 했다. 그의 질문은 나도 모르던 나의 취향을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하지만 계속 반복되는 그의 질문은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대단한 의미를 지닌 듯했던 ‘내일 죽는다면’이란 가정은 점차 흔한 미사여구 중 하나가 되어버렸을 뿐, 점차 의미를 잃어갔다. 굳이 없어도 될 사족처럼 느껴졌다. 나중에는 “모르겠어.”라고 답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나는 반복되는 그의 질문에서 어떤 성의가 없다고 생각했고 자연스레 나의 대답도 성의가 없어졌다. 피상적인 대화의 일부일 뿐이었다. 이번에도 나는 질문이 이미 끝나기도 전에 “몰라”라고 답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어진 그의 질문은 나를 당혹시켰다. 이번에는 진짜 그 답을 알지 못했으나 차마 모르겠다고 답할 수 없었다.
“만약 내일 죽는다면, 사람은 자신이 경험했던 것을 다시 해보고 싶을까 아니면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을까?” 보통은 답이 없는 질문이라도 하나를 택했을 나이지만, 이번만큼은 쉽사리 택하지 못했다. 나는 대답을 하기 보단 다시 되물었다. “그게 무슨 뜻이야?” 생각할 시간을 벌고 싶었다. “예를 들면 이런 거지. 내일 죽는다면 이미 가본 여행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을 다시 한 번 가고 싶을까? 아니면 정말 가보고 싶었지만 아직 못 가본 여행지를 갈까? 꼭 여행이 아니더라도 다른 것도 마찬가지고” “그야 당연히... 사람마다 다르지 않을까?” 난 이번에도 답을 피했다. “물론 그러겠지. 근데 그러면 이런 궁금증들이 아무 의미가 없어지잖아. 딱 간단하게, 가장 기억에 남았던 기억, 가장 원하는 소망. 죽기 직전이라면 사람들은 둘 중 무얼 경험하길 원할까?” 그는 내가 명확한 답을 해주길 원하는 듯했다. 나는 이런 곤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오는 습관이 있었다. “글쎄, 넌 어떤데?” 난 대답을 하지 않고 그에게 되물었다. “너도 알다시피 난 궁금증이 많잖아? 난 내가 모르는 걸 조금 더 알고 싶을 것 같아” 그는 좀처럼 이렇게 쉽게 대답을 하는 편이 아니었다. 스스로의 질문에 확고한 답을 가지고 있는 모습은 그의 새로운 모습이었다. 왠지 그의 의견에 심술궂게 반박해보고 싶어졌다. “그런데 어떤 사람을 보고 싶다고 치면,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을 다시 보고 싶지 않을까? 새로운 인연을 만들기 보단 소중했던 인연을 다시 보고 싶어 하지 않을까? 가족이든 친구든.” 나의 반박에 그는 마치 준비라도 했다는 듯 고민도 없이 답을 이어갔다. “물론 그렇지.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아직 경험하지 못한 소망의 대상이란 거야. 불치병에 걸린 아이들이 병원에 찾아온 (영웅을 연기한) 영화배우를 보고 정말 좋아하는 모습들도 그렇고, 누군가는 이전에 사랑했던 인연을 다시 보고 싶을지도 모르지만, 또 누구는 아직 말 한마디 못해봤지만 마음속으로만 담아뒀던 대상과 마지막 밥 한 끼 해보는 게 소원일수도 있으니까” 그는 마치 이 질문에 대해 오랜 시간 고민해본 것만 같았다. 어떤 토론을 하는 게 아니었음에도 나는 반칙이라 느꼈다. “이미 답을 생각해놓은 거 아냐? 질문을 할 필요가 없었던 거 같은데?” 그가 내게 이런 질문을 한 이유는 그저 자신의 의견에 대한 자랑을 하기 위해서 아니었을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가? 근데 왠지 내가 틀린 것 같다는 생각이 떠나지가 않더라고. 물론 단순히 나 하나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아직 인생의 마지막에 대해 얘기하기엔 어리기도 하고, 약간 자기중심면도 나한테 있는 거 같고... 네 말이 맞는 거 같아. 사람마다 다른 거겠지?” “뭐 그러겠지” 나는 마지막까지 얼버무렸다.
그런데 그 이후로. 이상하리만치 그의 질문이 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만일 내일 죽는다면 난 기억과 소망, 둘 중 무얼 택할까. 무얼 더 간절하게 원할까. 영원히 답이 나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내일 죽는다면... 내겐 너무 먼 미래의 일로만 느껴졌다. 그의 말처럼 나도 아직 어리기 때문인 걸까. 어쩌면 어떤 기억이 가장 기억에 남는지, 어떤 걸 소망하는지조차 모르겠다. 내게 그런 것들이 있긴 한 걸까. 다시 보고 싶은 사람이 있는지, 새로 보고 싶은 사람이 있는지 확실치 않았다. 무언가 텅 비어버린 공허함만 남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