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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아니라 철학함을 배워라

by 행복한 시지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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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아니라 철학함을 배워라” 칸트가 한 유명한 말이다. 여기에서 “철학”은 지식의 습득을 말하고, “철학함” 은 비판적으로 스스로 생각하는 태도를 말한다. 지식에 일방적으로 의존하는 학습자가 되는게 아니라, 자율적인 사유자가 되길 칸트는 바랐다.


철학은 알지만 철학함은 모르는 사람이 많다. 다른 말로 하면, 지식을 잘 알고 시험은 잘 치지만, 그것의 본질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애자일(Agile) 방법론은 알지만, 애자일의 본질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외부적 지식을 내면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의 바깥에 있는 지식을 단지 하나의 지식으로 받아들일 뿐, 그 지식까지 온 과정을 보지 않거나, 비판적으로 수용하지 않거나, 내 삶과의 연결성을 고민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시를 들어보자. 르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는 말은 너무나 유명하다. 이 말을 아는 것은 철학을 아는 것이고, 이 말의 의미와 타당성/건전성을 재고해보는 것이 철학함을 아는 것이다. 데카르트가 어떤 시대적 배경, 맥락과 논리적 사고 과정 속에서 이런 말을 했는가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철학함이다.


다른 학문도 똑같다. 애자일 방법론을 적용하기 위해, 스크럼, 칸반, 회고 등을 도입하곤 한다. 맹목적인 도구 도입은 애자일을 보장하지 않는다. 애자일함은 무엇인가?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도 빠르게 실행하고, 피드백을 받으며 가치를 전달하는 것이다. 애자일함 없는 애자일은 사상누각이다.


나는 철학만 아는 사람이 철학함을 아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지식 대결이 아니기 때문이다. 데카르트가 무슨 주장을 했는지 안다고 하여, 삶의 문제를 풀 수 없다. 심지어 특정 철학자의 견해를 몰라도, 철학함만 배워도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학문은 시간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 학문의 자세가 마음에 든다면, 나의 사상과 잘 맞아떨어진다면, 그 학문에 오랜 시간 정진하면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식을 배워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철학함을 배우기 위해서이다.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우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소프트웨어 공학함을 배우기 위해서이다.


누구든 학습할 때 지식의 저주에 빠지기 쉽다. 지식을 알아야만 해결이 될 것 같다고 느낀다. 또는 지식이 남들에게 말하기 좋기 때문에 매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하여 책을 읽을 때도 빠르게 읽는 데만 집중하여, 핵심 메시지를 꿰뚫지 못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하나의 지식이라도 충분히 내면화하는 것이다. 그게 충분히 쌓이고 나면, 전혀 모르는 지식도 같은 원리로 간파해 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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