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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Oct 10. 2024

적막하고 일렁이는 이별 노래의 품격


제목만으로 감동을 주는 노래가 있다. 산울림의 '창문 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 강산에의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잔나비의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 마침 제목들도 다 길다. 악뮤의 이 곡도 그렇다.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냐고, 사랑한 건 그저 너였을 뿐이라고 제목은 말하고 있다. 음악은 아직 흐르지도 않았건만 노래가 전하려는 바는 저 단 두 구절에 이미 다 들어 있다.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이하 '어떻게 이별까지')는 그렇게 시작도 전에 헤어진 사람들을 풀썩 주저앉힌다. 그리고 음악은 그 주저앉은 이들을 더 서럽게 만든다.


적막한 피아노 멜로디가 물결처럼 일렁이고  노래가 들어온다. "일부러  발자국 물러나 / 내가 없이 혼자 걷는  바라본다." 이별의 순간이다. 그리고 시작이 반이다. 헤어진 연인을 묘사한 수현의 발성 하나로 곡은 처음부터 듣는 사람의 신뢰를 얻는다. 특히 노래에서 가장 강렬한 "그때 알게 되었어"라는 소절은 정말이지 슬프다. 덩그러니 놓인 혼자된 자의 슬픔이 수현의 짧은 탄식에 모조리 실린다. 이후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  사랑하는 거지"라는 후렴에서 수현과 깊이 어우러지는 찬혁의 노래는 '성숙'이라는  앨범의 의미를  말해준다. 뒤로 수현과 찬혁은 계속 앞서거니 뒤서거니 서로의 노래를 어루만지며 단단히 지탱해준다.


'어떻게 이별까지'는 악뮤의 세 번째 앨범에서 얼굴 역할을 한 곡이다. 2017년 7월에 내놓은 'SUMMER EPISODE' 이후 2년 2개월 여만이었다. 팀의 메인 송라이터 이찬혁은 이 사이 군복무(해병대)를 했다. 그는 바다 위에서 곡을 썼고 곡을 쓰면서 "온전히 표현하고 싶은 걸 다 표현"했다. 앨범 제목이 '항해'가 되고 앨범의 첫 곡이 '뱃노래'가 된 건 그래서 필연이었다. 찬혁은 수첩과 녹음기로만 그렇게 한 달 여를 녹음했다.



언제나처럼 찬혁은 악뮤 3집의 모든 곡을 썼다. '어떻게 이별까지'는 입대 전 한 음악 페스티벌에서 미리 공개한 곡이지만 더 다듬어 3집의 타이틀곡이 됐다. 찬혁은 자신들의 세 번째 앨범에서 작품의 키워드인 항해와 성숙을 음악으로 구현해 들려준다. 장르에 억눌리지 않고 장르를 지배하는 찬혁의 작법은 "대중음악 작곡가는 팻 메스니와 트와이스를 모두 좋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 작곡가 김도훈의 말을 곱씹어보게 한다. 탁월한 작곡가는 스타일을 목적으로 두지 않으며, 수단으로서 스타일을 대한다. 악뮤 3집의 경우 '뱃노래'에서 'Freedom'을 지나 '고래'로 나아가는 트랙의 여정이 그걸 잘 보여주고 있다.


'어떻게 이별까지'는 수현과 찬혁의 곡이지만 사실 이 곡의 숨은 영웅은 이현영이다. 이현영은 곡에서 가장 중요한 장치인 건반과 스트링을 비롯해 베이스와 퍼쿠션, 편곡까지 맡아 남매가 고이 쌓아 올린 슬픔의 성을 고독의 바다로 띄워 보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낸다. 그의 전방위적 지원이 없었다면 이 노래는 감동도 여운도 지금에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좋은 곡 하나가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섬세한 조율이 필요한지 이 노래는 온몸으로 들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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