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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터리 Feb 24. 2021

어디가 아파서 오셨어요 - 편집자의 직업병

에세이 편집자 에디터리 - 편집자는 무슨 일 하세요 29

처음에는 '직업병'이라는 소재로 맞춤법, 띄어쓰기에 집착하는 편집자 이야기를 쓰려고 했다. 방송 자막을 보다가도(유튜브 자막은 생략하자...), 식당에 가서 메뉴판을 보더라도, 길을 가다 현수막을 봐도 맞춤법이나 오타가 있으면 혼자 부들부들하는 사람. SNS에 짧은 글을 올릴 때도 헷갈린다 싶으면 사전을 찾아 제대로 쓰려고 하는 사람(폰에는 '더 좋은 국어사전'이라는 앱이 깔려 있다. 출근하면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한 탭을 당당히 차지하고 언제나 열려 있다). 책속에서 오타를 발견하면 '엇!' 눈이 커졌다가도, 담당자가 속상하겠지 싶어 얼른 그 페이지를 넘겨버리는 사람... 이런 이야기.


그런데 실제 상황이 발생했다. 요 며칠 오른쪽 목, 어깨에 담이 와서 고생 중이다. 지난 주 목요일, 자고 일어난 직후 목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느낌이 심상치 않았다. 기억에 따르면 마지막으로 담이 왔던 이후 거의 7~8개월 만이어서 일단 풀어주면 나아지겠지, 착각했다. 그날 아침에는 땅콩볼(야구공만 한 크기의 마시지볼 두 개가 이어져 있는 모양의 기구. 독일제로 처음 살 때 가격은 좀 비싼 편이었는데, 가볍지만 단단한 땅콩볼은 뒷목 부근과 척추 마디마디를 마사지하기 좋아 만족스럽다)로 뒷목과 연결된 양쪽 오목한 머리 아랫부분을 집중적으로 마사지했다. 그리고 목 바로 아래 승모근을 풀어주고 점차 척추를 타고 내려가면서 ‘헉’하고 숨이 절로 막히는 통증 부위를 꾹꾹 눌러줬다. 양쪽 어깨 날개뼈(그러고 보니 부위 이름이 왜 ‘날개’일까, 인간에게도 날개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인가…… 아래의 ‘꼬리’뼈도 그렇고)까지 내 체중을 더 해서 뭉친 근육에 힘을 가했다. 그렇게 한결 가벼워진 어깨를 하고 잘 돌아가지 않는 목을 조심스럽게 가누며 출근을 했다. 그날 하루는 무사히 지나갔다.


금요일 아침, 머리가 아파 잠에서 깼다. 왼쪽 귀 위쪽의 관자놀이 부근으로 따끔따끔했다. 숙취도 아니고 머리가 아파서 깨는 건 또 처음이었다. 잠시 출근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지만 해야 할 일들이 있어 이불을 박차고 욕실로 달려갔다. 어깨와 머리 쪽으로 따뜻한 물줄기를 쏘며 최근의 나를 돌아보았다. 주마다 마감을 하고(팀원들 마감을 함께했다), 기획서를 쓰고 평가서를 쓰고 만들 책에 대해 고민하던 날들이 스쳐지나갔다. 새해가 되고 어떻게 팀을 꾸려나갈 것인가에 대해 잔뜩 어깨에 짐을 지고 잔뜩 긴장 중이었는데, 구정 설이 지나면서 (늘 그렇듯이 뾰족한 답은 없다. 주어진 매일을 열심히 살자 다짐하며) 이제 좀 마음이 놓였다 싶은 차에 담이 왔다. 살고 있는 동네에 자주 가던 통증의학과를 갈지, 회사 근처 신경외과를 갈지, 마음이 왔다 갔다 하는데 명치께 타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아차차, 내과도 가야지.


금요일이라고 여유가 있기는커녕, 스트레스가 온몸을 통해 발현하는 가운데 병원 투어를 결심했다. 회사 근처에 필요한 병원들이 몰려 있어서 다행이었다. 도수 치료라도 받게 되려나 하며 신경외과를 들어가려는 순간 ‘초진 환자는 신분증이 필요합니다’라는 안내문구 앞에서 멈칫. 카드만 갖고 다니는 나는 어쩔 수 없이 발길을 돌려 다음 병원인 내과로 향했다.


나의 증상 설명을 들은 원장님의 말씀,

“전형적인 식도염 증상이시네요. 진단 받은 적 있나요?”

“(그간 증상은 있었지만 병원은 처음이라) 아니요.”

“식도염은 먹고 나서 바로 눕는 경우(저요), 기름진 음식이나 술, 커피를 자주 먹는 경우(저요), 식사를 꼭꼭 씹어 삼키지 않는 경우(저요) 발생합니다. 자기 3시간 전에는 아무것도 먹지 마시고 기름진 음식, 술, 커피는 피하시고 식사는 천천히 하세요.”

다시 태어나라는 선고를 받은 것 마냥 헛웃음이 나오는 가운데 일주일치 약을 받았다. 그리고 회사로 복귀했다.


점심을 먹고 일을 하려는데 두통이 스멀스멀 뒷목을 타고 올라왔다. 처음에는 묵직하게 뒤통수 부근을 울리다가 귀를 타고 양옆 관자놀이 부근으로 올라오더니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시작되었다.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하고 있던 일들을 모두 멈추고는 아무래도 병원을 들렀다 집에 가서 쉬어야겠다고, 반차를 쓰고 컴퓨터를 껐다. 가까운 한의원으로 달려가면서도 통증이 심해서 이를 악물었다.


한없이 무해한 얼굴을 한 선생님 앞에서 머리가 너무 아프다고 울먹였다. 바로 엎드리라고 하시고는 아팠던 양쪽 머리에 침을 각각 두 방 놓고, 뒷목 우묵한 자리에도 침을 두 방 놓고 양 어깨와 팔에 침을 주르륵 놓았다. 따끈한 침대에 엎드려 있는데 침이 아픈 건지 아픈 게 서러운 건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또르르 흘렀다. 그간 불안과 책임감으로 종종거린 마음이 온몸으로 비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한 해가 흐를수록 떨어지는 체력에 어제 같지 않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편집자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컴퓨터 앞에 수험생처럼 붙박이로 앉아 일하는 시간이 많았다. 편집자는 엉덩이로 일한다는 선배들 말처럼, 책상 앞에서 원고를 보고 또 보고 진득한 시간이 필요했고 그 시간은 나의 척추와 어깨가 굳어가는 줄 모르고 흘렀다. 20대 후반쯤부터 마사지를 받으러 가면 마사지사 선생님들이 그랬다.

“무슨 일을 하는데 이렇게 어깨가 굳었어요? 어깨로 일하나 봐.”


서른이 되었을 때, 세 번째 직장을 다니면서부터 한의원을 드나들었다. 특히 마감이 있는 주에는 점심시간이 되면 매일 부리나케 달려가 한의원 침대에 누웠다. 치료받고 김밥 한 줄 먹고 들어가서 다시 원고에 집중했다. 지난 직장에서는 처음으로 근육주사를 맞아보았다. 주변에 믿고 다닐 만한 한의원이 없어서 ‘통증’이라는 이름이 붙은 병원에 처음 가보았다. 목을 움직이는 게 불편하다는 말에 “조금 아프실 거예요”하더니 정말 뭔가 쑤욱 강한 통증이 느껴졌고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근육주사와의 첫 만남은 강렬했고, 잠시 약이 도는 동안 일산 시내를 바라보며 앉아서는 돈 버는 거 참 쉽지 않다 감상에 젖었다. 그렇게 주사를 맞고도 일을 하러 늦은 출근을 했더랬다.


합정에는 이 업계에서 편집자들에게 유명한 한의원이 있다. 원장님이 동굴 같은 목소리로 “어디가 아파서 오셨어요”라고 말을 건네는 순간 그냥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나만 그런 거 아니죠. 무엇이든 다 털어놓고 싶어진다). 여기저기 아프다고 하면 왜 이렇게 일을 열심히 하셨냐, 환자분이 사장이냐, 사장도 아닌데 퇴근하면 그만이지 왜 회사 일 걱정을 계속하냐 차근히 묻는 이야기들이 굳은 근육들을 살살 풀어주었다. 소화력이 떨어지니 적게 먹고, 스트레스를 받는 게 있으면 말로 다 풀라고 했다. 음식을 먹는 것도 화를 참는 거라서 나중에 화병으로 온다고. 마치 영화 속에서나 보던 구루를 만난 느낌이랄까. 원장님의 이런 진료 덕분에 소문이 많이 나서 당일 예약 진료가 어려울 만큼 환자가 많은 곳이다(소문나면 더 가기 힘들어지니까 이름을 말하진 않겠다). 다시 원장님이 보고 싶어졌다. 그만 열심히 일하고 화를 담아놓지 말라던 잔소리를 듣고 싶어서.


앉아서 일하는 현대인의 고질병이랄까, 편집자들 중에는 허리로 고생하는 선배, 동료들도 꽤 많다. 그런 것들을 달고 살고 ‘신경성’ 증상도 많다. 신경성 두통, 신경성 위염, 신경성 장염, 신경성 알러지 등등. 아플 때마다 먹고사는 거 참 쉽지 않지, 이 몸이 내 재산 전부네 싶어 거울 속 내가 안쓰럽다.


일에만 매달리는 것도 ‘자기 통제력’을 잃는 거라던 어느 심리학자 분의 말이 떠올랐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도 건강을 잃으면서까지 할 가치는 없다. 몸과 마음이 우선, 오늘도 마음속으로 “적당히”를 외친다. 잘하는 것보다 적당히. 더불어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경력만큼 잘 해내야 하는 부담감 앞에서, 최근 읽은 요조의 에세이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의 대목이 떠올랐다.


"저 이제 사십 대잖아요. 보통 나이 앞자리 수 바뀔 때 늙는다는 체감이 확 오면서 이런저런 생각도 많아지고 한다던데 전 조금도 그런 게 없었거든요. (생략) 근데도 나아지지 않고 계속 골골하니까 이제야 실감이 나고 신경 쓰여요. 제 나이가, 나이 드는 게 별게 아니잖아요. 되던 게 안 되는 거잖아요."
트레이너는 내 한쪽 다리를 든 채로 잠깐 생각에 잠겨 있다가 이렇게 말했다.
"그거 정말 생각해볼 문제 같아요. 저 역시 지금 제 목표를 더 잘하는 데 두고 있지 않아요. 최대한 오랫동안 그저 즐겁게 운동할 것을 목표로 두었어요. 계획도 다시 짰고요. 그 계기가 저에게도 나이였던 거 같아요. 수진도 한번 정말 나이 때문인지 차분히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그게 맞는다면 거기에 맞춰 다시 목표를 세우고 계획을 짜보세요. 이건 슬플 일도, 아쉬울 일도 아니고, 그냥 하나의 변화니까요."
(p.82-83)     


‘최대한 오랫동안 그저 즐겁게.’

2021년 올해의 목표가 드디어 정해졌다. 그리고 이번 주말부터 1년 만에 케틀벨 운동을 시작하기 위해 1:1 PT를 신청했다. 운동 목표를 적으라는 신청서에 1년 전과 똑같이 적었다.

코어.

부디 내 몸의 중심을 잘 잡고 오래오래 건강할 수 있기를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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