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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터리 Nov 17. 2021

<내 인생도 편집이 되나요?> 출간되었습니다

에세이 편집자 에디터리 -편집자는 무슨 일 하세요 37

인생의 페이지를 편집하며


책을 만드는 ‘편집자’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만의 특유한 분위기가 있다. 차분한 말투로 조근조근 설명을 잘한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을 줄 알고 더 많은 이야기가 나올 수 있도록 리액션을 아끼지 않는다. 현재 맡고 있는 책과 관련한 데이터를 모으기 위해 레이더를 수시로 작동시키며, 평소에는 말을 아끼다가도 흥미로운 것을 발견하면 누가 말릴 때까지 말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좋은 것이 왜 좋은지 구체적으로 말하게끔 훈련받은 사람이 편집자니까.


나는 편집자들이 일하는 방식에 대해 무한한 신뢰를 보낸다. 그들은 섬세하고 배려하는 태도를 유지한다. 상대의 말과 말 사이에 생긴 찰나의 머뭇거림이나 잠시 떨린 눈빛도 놓치지 않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준다. 제멋대로 떠들어대며 흘러가는 세상과 책을 만드는 이들의 속도는 다르게 흘러간다. 편집자는 오랫동안 고심하고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을 가치에 대해 골몰한다. 무엇보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자부심을 지니고 자신이 만드는 책과 삶을 일치시키고자 노력한다.

편집자인 나 또한 책을 중심에 두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아침에 일어나 잠들 때까지 누가 무엇을 읽는지 궁금해하고, 사람들이 어떤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지 염탐하며, 세계 곳곳 전국 방방곡곡 어딜 가든 서점을 기점으로 돌아다니길 좋아한다. 늘 무슨 책을 만들면 좋을지 궁리하고,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이야기가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다.


학창 시절을 무난히 지내고 우연히 책을 만드는 편집자로 출판사에 취직했다. 그로부터 만 14년간 꾸준히 책을 짓고 있다. 몇 문장으로도 충분히 요약되는 지난 시간은, 문장 사이사이에 생략되었던 추억들을 펼치자 책이라는 존재에 온 마음을 쏟고 있는 내가 있었다. 그 발견만으로도 매일 아침 한 시간씩 일찍 일어나 출근하기 전까지 이 책을 쓰는 시간이 너무 소중했다.


일본 드라마 <중쇄를 찍자>에는 운을 모으는 출판사 대표가 나온다. 그는 좋은 일을 하면 운이 쌓인다고 믿는다. 그래서 길거리 쓰레기를 줍고 잔돈은 기부함에 넣는 등 평소에 소소하게 좋은 일을 하며 차곡차곡 운을 모으고, 그렇게 모은 운을 책이 잘 팔리는 데 쏟아붓고 싶다고 말한다. 그 드라마를 본 뒤로 나도 남몰래 운을 모으고 있다. 길을 물어보는 사람에게 친절히 알려주고, 산책길에 만난 작은 달팽이를 나무 곁으로 옮겨주고, 누군가가 도움을 요청하면 해결책을 성심성의껏 알아본다. 적은 돈이지만 매달 꾸준히 아동 단체에 후원한다. 혹시나 내가 돌려받을 몫의 복이 있다면, 지금 하는 이 일이 조금 더 잘되는 데 보태지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편집자는 타인의 면모에 쉬이 감탄하는 재능과 진심을 다해 응원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는 잘 보이지 않는 사소한 부분도 기꺼이 발견해주고 박수 쳐주고 오래 기억해두었다가 기회를 연결한다. 창작의 세계라는 기약 없는 멀고도 험난한 길. 그 길 앞에 선 누군가에게 줄 수 있는 건 애정뿐이라며 의욕을 북돋아주는 데 기운을 아끼지 않는다. 좋은 기운을 나눠주기 위해서, 언제든 돌아보면 그 자리에 있기 위해서 자신의 생활을 단단하게 가꾸고 보살핀다.


해를 거듭할수록 책을 만드는 일은 나의 한계를 그리는 일 같아 점점 어렵기도 하다. 나의 체험 그 이상의 세계를 상상하기 위해서는 생각을 유연하게 유지해야 하는데 점점 더 큰 노력이 요구된다. 그럼에도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해서라면 좋은 사람이 되고 싶고 좋은 삶을 꾸려가고 싶다. 여전히 좋은 글을 보면 그것을 책으로 만드는 그림을 그리고, 사람이 궁금해지면 당장 연락할 방법을 수소문한다. 시간을 돌려서 직업을 다시 선택하라고 해도 이 길을 처음부터 제대로 걷고 싶을 만큼.


나의 곁에는 늘 좋은 편집자들이 많다. 책의 기획, 구상, 콘셉트를 잡는 방식부터 분야가 다른 책을 진행하는 매뉴얼, 저자와 관계를 잘 유지하고 동료들과 소통을 잘하는 법까지 그들과 소통하며 나누었다. 회사 안팎의 동료들에게 많은 빚을 지며 여기까지 무사히 올 수 있었다. 모쪼록 이 책이 동료들에게 작은 감사 인사가 되었으면 좋겠다. 덧붙여 원고를 읽을 줄만 알았지 원고를 쓸 기회가 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내가 첫 책이라는 시작을 할 수 있도록, 내 안에 가루처럼 흩어져 있던 이야기를 뭉치게 해준 박선주 편집자님께도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내 직업이 편집자라고 하면 편집자는 무슨 일을 하는지 다시 묻는 사람이 많았다. 책은 작가가 쓰는데 왜 편집자가 마감하는 것인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차근히 설명해주고 싶었다. 책을 만드는 것보다 쓰는 게 더 의미 있지 않겠냐는 타박 같은 잔소리와 혹시 작가 지망생인데 편집자 일을 하는 것이냐는 의심의 눈길을 보낸 사람들에게 책을 만드는 내 일이 얼마나 재밌고 보람 있는지 친절히 알려주고 싶었다.


무엇보다 책이 좋아서, 손에 들고 있는 책 사이사이에서 벌어지는 일까지 궁금한 독자들이 편집자라는 직업의 세계를 흥미롭게 탐험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독자들의 세계에도 나를 초대해주시기를. 나도 여러분의 일의 세계가 너무 궁금하다.


그럼 지금부터 많은 편집자를 대신하여 책을 만드는 일의 기쁨과 슬픔을 낱낱이 보여드리겠다. 서점을 가득 채운 책들이 저마다 만든 사람들의 애정과 수고를 품고 있다는 걸, 책을 펼칠 때마다 떠올려주시길 바란다.



저의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감격스러움과 얼떨떨함이 아직도 현실로 잘 느껴지지 않네요. 브런치와 함께 아침마다 원고를 쓰고 출근을 하는 일이, 매일의 나를 단단하게 붙들어주었습니다. 글을 쓰면서 내가 되고 싶은 편집자로 살기 위해 조금 더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브런치를 읽고 응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서점에서 만나주시기를, 편집자라는 직업과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 즐거운 탐험을 해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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