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인간보다 인간미 있는 로봇을 보여준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by 구모양

지지직 거리며 돌아가는 LP소리와 함께 올리버가 잠에서 깬다.

낡은 턴테이블을 타고 재즈 선율이 흘러나온다.

'우린 왜 사랑했을까. 우린 왜 끝이 정해진 길을 함께 걸어갔을까.'



잘 잤다. 화분~ 좋은 아침!

올리버. 지금은 구형이 되어버린 헬퍼봇5 로봇이다.

재즈를 좋아하는 그는 주인에게 버려진 헬퍼봇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에 거주한다.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겁 많은 성격인지라 화분이 그의 유일한 친구이자 대화 상대다.



거기 누구 없어요? 도와주세요.

클레어. 그녀 또한 버려진 구형 헬퍼봇이다.

올리버보다 한 세대 높은 버전인 헬퍼봇6지만 내구성이 약하고 방전이 빠르다.

고장 난 충전기 때문에 생을 마감할 위기에 처한 클레어는 이웃(?) 올리버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우편배달부와 화분을 제외하면 대화라는 걸 하지 않고 지내온 올리버는 갑작스러운 클레어의 도움 요청에 당황하는데..



도와줄게요.

올리버가 충전기를 빌려주기로 합의한다.

똑! 똑! 똑! 매일 정해진 시간에 클레어가 문을 두드리면 빌려주고 한 시간 후에 반납한다.

그렇게 두 로봇의 생존이 걸린 충전기 거래가 시작된다.

찌릿찌릿. 둘은 충전기를 빌려주고 돌려받으며 점점 가까워진다.



만나러 갈 거예요.
누구를? 제임스를?

클레어는 올리버의 옛 주인 제임스에 대해 듣게 된다.

자기를 버린 주인인 줄도 모르고 제임스를 만나러 가겠다는 올리버.

그의 생각이 한심한 생각인 줄 알면서도 말리지 않는 클레어.

클레어는 올리버에게 같이 제주도에 가자고 제안한다.

그렇게.. 둘의 제주도행 모험이 시작된다.



올리버. 약속해줘.

제주도로 가는 길에 둘은 약속한다. 서로에게 사랑에 빠지지 않기로..



미안. 나 약속 못 지켰어.

둘은 약속을 어기고 사랑에 빠진다.

서로를 통해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알게 된 로봇들.

자율적인 사랑이 불가능한 줄로 착각하고 있던 그들은 처음 배운 사랑을 함께 노래한다.

'난 니 덕분에 처음 믿게 됐어 이 사랑이라는 걸.'



누굴 사랑하는 게 이렇게 슬픈 일인 줄 몰랐어.
사람들은 어떻게 이걸 하지?

점점 낡아져 가는 구형 로봇 올리버와 클레어.

더 이상 그들의 부품조차 생산되지 않는다. 클레어가 멈추게 될 날이 다가오지만 속수무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이어가는 올리버와 클레어.

생각만큼 즐겁지만은 않을 걸 알지만, 그들의 사랑은 끝이 정해져 있는 결말을 향해 간다.



공연이 끝나고, 순수함과 따스함이 사라져 버린 요즘의 우리들이야말로 로봇이 아닐까 생각했다.


새 것이라는 간판을 달고 반짝이며 등장하는 신상품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오래되고 낡았다는 이유로, 새 상품이 나왔다는 이유로, 멀쩡한 것들을 무심코 버릴 때가 많았다.


스스로를 되돌아봤다. 올리버에게만 있고 나에게는 없는 면을 생각해봤다.

먼지 쌓인 턴테이블을 버리지 않는 마음

오래된 레코드판에 울리는 지지직거리는 음악을 듣는 모습

화분을 고이고이 모시는 행동

충전기를 고쳐서 사용하거나 낡은 부품을 고치고 고쳐서 다시 사용하는 일

구형 로봇인 올리버가 나에게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아끼는 일 보다 버리는 일에 익숙해져 버린 탓에, 오래된 마음마저도 낡은 것으로 치부하고 있진 않느냐고. 사람의 마음을 가볍게 여기고 있는 건 아니냐고. 도움을 요청하는 이웃들을 매몰차게 버리고, 마음을 준 사람에게 상처 주고, 사랑했던 사람을 쉽게 지워버리고 있는 우리들이 어쩌면 올리버나 클레어보다도 인간미가 없는 '잔인하고 무서운 괴물 로봇'이 아닐까라고 말이다.


'영원한 마음 같은 건 없어.' '우린 왜 사랑했을까.' 사실은 우리가 로봇보다 더 비인간적인 모습이란 걸 알고 있기에 클레어와 올리버가 노래하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에 감동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해피엔딩] 한 줄 감상평

사랑, 로봇들로 부터 배웠어요. 고마워요. (천만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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