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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모양 Mar 24. 2021

저기요 잠깐만요! 이게 호랑이 우유라고요?

남미 여행기 #15. 타이거 밀크

마추픽추가 있는 마을 아구아스깔라엔떼에 도착하자 이미 저녁시간이 되어있었다. 곧 어둠이 찾아올 것 같은 쌀쌀한 저녁. 더 늦기 전에 밥을 먹어야 한다. 그래. 빨리 어디라도 찾아 들어가자.


그렇게 찾아간 식당에는 사람 좋은 웨이터가 있었다. 늦은 시간이라 손님은 우리 세명뿐이었다. 마지막 손님인 우리는 전체 식당을 빌린 부자처럼 웨이터 청년이 제공하는 친절을 팍팍 누렸다.


그는 서비스 정신이 온몸에 배어있는 사람이었다. 자리로 안내할 때나 주문을 받을 때나 음식을 내어줄 때에나 한결같이 공손했다. 우리에게 차근차근 설명을 해줬다. 배고픈 와중이라 그의 영어 설명이 윙윙거리는 소리로 들렸지만 그래도 웃었다. 못 알아듣겠을 땐 더 활짝 웃었다. 늦게 온 우리들을 환영해주고 성심성의껏 서비스해주는 웨이터 청년이 고마워. 조그만 말에도 과장되게 끄덕이며 땡큐라고 말해줬다.


‘아 영어 너무 많이 했다. 좀 피곤한데. 음식 설명 사양할테니 맛있는 거만 가져다다오. 꼬륵. 음식 나와라. 음식 나와라. 맛있는 음식아 어서 나와라. 꼬르륵.’


음식 생각이 간절해질 즈음 메인디쉬가 나왔다. 배꼽은 빨리 음식을 먹겠다며 그릉거렸지만, 웨이터는 또 메인 요리에 대한 부연설명을 시작했다. 세비체 어쩌고저쩌고 하는데 도저히 그 말을 끊어낼 수 없어 그냥 설명을 들었다.


‘그래그래. 내가 들어줄게. 얼른 설명을 끝내다오.’


나는 그저 그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영혼이 나간 표정으로, 그릇을 응시하며, 소리나지 않게 침을 꼴깍 삼키며, 그의 설명을 들었다. 웨이터의 말이 오른쪽 귀로 들어와 왼쪽 귀로 흘러나갔다. 그런데 중간에 불쑥 신경 쓰이는 단어 하나가 뇌리에 박혔다. 신경 쓰인다기보다는 믿기지 않는 단어였다.

타이거 밀크!

아 그렇구나 하며 그덕그덕 하기엔 많이 꺼림칙한 단어였다.


‘잉? 타이거는 호랑이고 밀크는 우유인데? 그럼. 그렇다면.... 이건! 호랑이 우유?! 에이 설마. 말이 안 되잖아….’

그렇게 퀘스천 마크가 떠올라 되물었다.


“저기요 잠깐만요. 이게 타이거스 밀크라고요?”

나는 갸우뚱하는 눈빛을 그에게 보냈다.


“예스!”

진짜라는 표정으로 끄덕끄덕하는 웨이터. 나는 그와 잠시 눈빛 교환을 했다. 웨이터 얼굴엔 화색이 돌았다. 나는 미간을 쭈그러트렸다. 아니 여기가 아무리 남미라고 해도 이건 너무하잖아.


나는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재차 확인했다.

“레알뤼?”


그는 기뻐하며 또 대답했다.

“예스. 예스. 디스 이즈 타이거스 밀크.”


“아.... 오케이. 땡스!”

나는 뜨뜻미지근하게 알겠다고 고맙다고 답하고 그를 보냈고, 우리 일행은 식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이윽고 사라졌던 그 친절한 웨이터 청년이 다시 나타났다. 손에는 접시나 쟁반 대신 휴대폰이 들려있었다. 내가 '타이거 밀크'라는 단어를 모른다고 생각했는지 청년은 구글 번역 결과를 가져와 상냥하게 내 앞에 들이밀었다. 그 휴대폰 화면에는 ‘호랑이 젖으로 만든 소스입니다.’라고 또박또박 쓰여있었다.


'나는 못 알아들은 게 아니라 똑바로 듣고도 납득하지 못한 건데. 이 웨이터 친절이 과하군.'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했지만 겉으로는 놀라는 체했다. 언빌리버블 하는 표정으로 “레 알뤼?” “오-와우” 하며 오버스러운 리액션을 건넸다. 우리의 반응을 확인한 웨이터는 그제야 뿌듯한 표정으로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가 멀어진 후, 우리는 한국말로 이 음식의 정체에 대해 떠들었다. 우리끼리만 알아들을 수 있으니까 맘 편히. 말도 안 된다. 호랑이 젖을 짠단 이야기는 살다 살다 처음 들어본다. 아니다. 여기는 남미니까 가능할지도 모른다. 페루인들은 호랑이를 키우는 게 아닐까. 에이 말도 안 된다. 등등의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갖은 추측과 상상을 더해봤지만 똑 부러지는 결론을 찾지는 못했다. 결국 우리는 끄끝내 '타이거 밀크'의 정체를 알지 못한 채 메인 요리 세비체를 먹었다.


음냐음냐

“정체는 모르겠지만 호랑이 우유 맛있네요.”


아무튼 타이거 밀크는 맛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건 실제 호랑이의 우유가 아니라 페루의 특제 소스 이름이었다. 붕어빵에 붕어가 들어있지 않은 것처럼. 타이거 밀크에는 진짜 호랑이 젖이 들어가는 게 아니었다. 다만, 이걸 먹으면 호랑이 기운이 난다고 해서 ‘타이거스 밀크’라고 불렀다고 한다. 호랑이 기운이 난다고 광고하는 시리얼처럼. 비유적인 이름이었다.


진실을 알고 나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던 나 자신이 웃겼다. 이 곳에 오니 객관성을 잃어버린 나란 여행자. 진짜 호랑이 굴에 들어가 젖을 구해오는 페루인들을 상상했던 나란 사람. 요리를 냠냠 먹으며 왠지 호랑이 냄새가 나는 것 같다고 생각했던 나. 남미에선 모든 게 상상초월이니까, 호랑이 젖을 구하는 것도 진짜 가능할 거라고 생각한 내가 웃겼다. 가끔은 바보스러운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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