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여행기 #18. 우로스 섬
우리는 야간 버스를 타고 페루에서 볼리비아로 넘어갔다. 시간이 촉박한 대부분의 여행객은 육로 이동을 하지 않지만, 우리는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티티카카 호수를 보기 위한 선택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큰 호수, 티티카카.
호수는 바다인가 싶을 만큼 드넓었다. 꽤나 장엄하고 놀라운 스케일이었다. 하지만 내게 더 큰 감흥을 남긴 건 호수가 아니라 호수 위에 사는 사람들이었다. 우로스 섬의 사람들.
티티카카 호수 위에 동동 떠 있는 우로스 섬은 볼리비아의 땅이다. 사실 땅이라고 부르기 모호한, 인공 갈대 섬이다. 100% 갈대로만 이루어져 있는 섬이기 때문에 갈대 더미라는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는 곳. 바람 불면 날아갈 것 같은 섬. 그게 우로스 섬이다.
거기에 가면 아직도 전통적인 방법으로 갈대를 쌓고, 호수의 물고기를 낚아 끼니를 해결하고, 물물교환으로 거래를 하는 원주민 우로족이 있다. 우리는 통통거리는 보트를 타고 그들을 만나러 갔다.
‘꽤 깊이 들어가는데?! 호수가 크긴 크구나.’
혼잣말로 이런 생각을 한 다섯 번째 정도 반복했을 때쯤, 우리가 탄 작은 배가 섬에 도착했다.
가이드의 안내를 따라 들어가서 섬 한가운데 마련된 지푸라기 단에 철퍼덕하고 앉았다. 생각보다 만듦새가 훌륭한데. 오오. 대단한걸. 우리는 생각보다 안락한 그 지푸라기 소파에 앉아 부스럭거리며 들려오는 가이드의 설명을 들었다.
투어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우로스 섬사람들은 '타타로'라는 식물 줄기를 엮고 또 엮어서 섬을 만든다고 했다. 호수 바닥을 지탱하도록 끈으로 연결해두고, 여러 덩어리의 갈대 더미를 가로 세로로 엇갈려 쌓고 또 쌓으면 섬이 완성된다며 섬의 구조를 설명해줬다. 그리고 그들은 계속해서 낡은 갈대 위에 새 갈대를 얹는다고 했다. 안 그러면 섬이 가라앉기 때문에 쉬지 않고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가꾸어야만 한다고 했다.
그곳에서 나는 거대한 호수의 크기에 한 번 감탄했고 인간들의 커다란 생존력에 두 번 감탄했다.
돌아오는 배에서 호수를 다시 봤다. 호수는 반짝이고 있었다. '부아앙-'하며 시끄럽게 달리는 모터 소리가 들렸다. 볼귀를 스치는 바람이 제법 차가웠다.
이곳 사람들은 날이 추워도 바람을 피해 동굴을 팔 수 없었겠구나. 더운 여름 태양을 피해 숨을 나무 그늘도 없었겠구나. 봄소식을 알려주는 생긋한 꽃망울도 없었겠구나.
타타로를 엮어 섬을 가꾸는 사람들의 눈을 떠올리며, 반짝이는 호수를 보며, 기도했다. 갈대를 쌓고 또 쌓는 이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편할 수 있도록 바람이 덜 불었으면 좋겠다고.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그것뿐이 없었지만. 이 사람들을 기억해주리라 다짐했다. 세계 이쪽 편에 경이로운 사람들이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겠다고.
나중에 돌아와 우로스 섬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니, 그들은 외세의 침입 때문에 갈대로 인공섬을 만들어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호수 바닥에 지탱해놓은 끈을 풀면 언제든지 섬 전체를 이동시켜 피신할 수 있으니까. 호수 위에 섬을 세우고 건물을 만들었다고 한다. 참 그러고 보면 인간은 대단해. 정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살아온 이들이었다. 침몰하는 섬에 지푸라기를 쌓고 또 쌓아 올리는 우로족 사람들. 잡으면 똑똑 끊어져 버릴 것 같은 얇고 긴 갈대 줄기들이 힘을 합쳐 서로를 지탱해주고 있는 것처럼 한 명 한 명의 연약한 인간들이 서로에게 기대고 의지하며 튼튼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강인한 인간, 꾸준한 정성, 살아남겠다는 의지가 켜켜이 쌓여있는 곳. 그곳에게서 배웠다. 인간은 강한 존재다!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서면 대자연 앞에서도 둥둥 떠다니며 생존할 수 있는 그런 존재.
육로로 이동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커다란 호수를 만날 수 있었고, 우로족과 눈을 마주칠 수 있었고, 그곳은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장소였으니까.
'항공편으로 이동했다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겠지만 이 깨달음은 없었겠지.'
별로 볼 게 없다며 이곳을 그냥 지나쳐갈 뻔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