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봐봐봐 여름성경학교 후기 #1
“선생님 언제 끝나요?”
성경학교에서 아이들과 공과공부를 하며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다.
여름성경학교 첫 번째 날, 5~6학년 남자아이들은 공과 시간을 시작하자마자 언제 끝나냐는 투정을 쏟아냈다.
“선생님 이거 하기 싫어요.”
“레크레이션 시작하기로 한 시간 이미 지났어요. 도대체 언제 끝나요?”
아직 아이들이랑 친해지지 못한 나는 말을 아끼며 조용히 앉아있었다. 보조교사라 다행이다 생각하며. 적당히 근엄한 눈빛으로. 그렇게 나는 애들을 지켜봤다.
첫 공과공부 주제는 안드레와 베드로를 제자로 부르신 예수님이었다.
예수님을 만난 안드레가 가서 형제 베드로에게 예수님을 전하고, 예수의 제자가 되는 이야기다.
아이들은 성경공부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 왜 이렇게 안 끝나요.”
시종일관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아이들. 예전부터 오래 주일학교 교사를 한 다른 선생님은 아이들이 집중을 하든 말든 말씀을 모두 이야기해 주고 꾸역꾸역 공과공부를 진행해 나갔다. 아이들의 아우성을 이겨내는데 아주 능숙해 보였다.
그에 반해 나는 자꾸만 일그러지는 표정을 관리하기 힘들었다. 웃지는 못해도 인상은 쓰지 말아야지 생각하며 나는 무표정한 얼굴과 건조한 말투로 아이들을 타일렀다.
“자! 이제 거의 끝났어. 다들 각자 책에 있는 질문에 답을 적어봐 얘들아.”
안드레가 그랬듯 예수님을 만나서 예수님을 따르게 사람은 다른 이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한다. 자신이 만난 예수님을 증언한다. 공과공부 책에는 본문말씀을 나에게 적용해 보는 질문이 있었다. 나에게 예수님을 소개한 사람은 누구인지, 예수님이 우리를 부르신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답하도록 되어있었다.
나는 질문지를 읽어본 후 아이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빨리 끝내고 싶어 대충 끄적이는 아이들의 행동이 눈에 들어왔다. 연필을 잡는 손 마저 성의가 없다. 필기를 하라고 연필을 주니 연필심이 부러져서 쓸 수가 없다 하고, 볼펜을 쥐어주니 볼펜이라 지울 수 없어서 망쳤다고 한다. 투덜대는 잼민이 들을 보니 기도가 절로 터져 나왔다.
'오 주여! 이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에게 인내를 주소서.'
다른 선생님은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이런 아이들의 태도가 익숙한 듯했다.
“자 그럼 이제 한 명씩 돌아가며 발표해 보자.”
아이들은 빨리 놀고 싶어 몸을 베베 꼬면서도, 각자 나름대로 적은 답을 나눴다.
“D를 처음 예수님께 인도한 사람은 누구야?”
“부모님이요.”
“그럼 다음 질문. 예수님께서 D를 하나님 나라로 초대하신 이유가 무엇일까?”
.
.
.
“그러게 말입니다.”
아이들의 답은 참신함을 넘어 기상천외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게 대답이야?
당혹스러웠다. 지금까지 평온하던 다른 선생님도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모르겠는지 말을 더듬거렸고, 나는 고장 난 장난감 로봇처럼 아무 리액션도 하지 못했다.
“음.. 그래 알겠어. 그럼 다음.”
그렇게 조금 어색해진 분위기를 적당히 무마시키고 다음 순서로 넘어갔다.
가장 말 수가 적고 차분했던 S의 대답은 다른 아이들의 대답에 비해 사뭇 진지했다.
“예수님께서 S를 하나님 나라로 초대하신 이유가 무엇일까?”
“저를 사랑하셔서?!“
딩동댕을 외치고 싶었다. 그만큼 선생님들 마음에 쏙 드는 사랑스러운 대답이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하나님 나라로 초대하셨다는 예쁜 답을 적은 S는 천사가 아닐까 생각했다.
다른 선생님도 꽤나 감동한 것 같았다.
“와 맞아! 정말 맞는 말이야.”
고장 났던 나의 리액션 세포가 다시 살아났다. 진심으로 감격했기에 기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선생님은 너무 감동했어.”
정작 대답을 한 S와 다른 아이들은 별 감흥이 없어 보였다. 아이들은 시종일관 언제 끝나는지만 기다리고 있는 눈치였다.
마침내 모든 아이들의 발표가 끝나자 한 아이가 또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선생님! 이제 끝났어요?”
귀에 딱지가 앉겠다 싶을 정도로 하도 들어서 이제는 놀랍지도 않았다.
“그래. 이제 끝났으니까 나가봐.”
우여곡절 끝에 예정된 모든 공과공부 분량을 마쳤고, 드디어 수업종료 선언이 내려졌다.
아이들은 선생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호다닥 방을 나가버렸다. 순식간에 선생님 둘만 방에 남겨졌다. 덩그러니 남아 방 안에 널브러져 있는 교재와 필기도구를 정리하며, 다른 선생님이 구시렁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노는 것만 좋아하지...”
성경학교를 마친 지금, 이때 나누었던 두 아이의 대답이 자꾸 머릿속에 맴돈다.
참 이상하게 시간이 지날수록 D의 대답이 더 크게 마음에 남았다. 당시에는 그저 철없어 보였지만, 곱씹어보니 맞는 말이었다. 어쩌면 D가 대답한 ‘그러게 말입니다.’라는 답변속에 담긴 겸손이 나에게 회복되어야하는 신앙고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 왜 맨날 배신하고 원망하고 죄를 짓는 인간들을 그렇게까지 사랑하셨나요? 도대체 왜죠?
인간의 상식으로는 '그러게 말입니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입니다.!'라는 대답이 절로 나온다. 우리가 받은 복음은 이렇게 설명할 수밖에 없는 은혜가 아닐까 싶다.
지금까지 교회를 다니며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는 말씀을 수천 번쯤 들었다. 그러면서 내가 이 큰 사랑을 받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누려왔던 모든 것들이 당연한 것 아닌데. 한 없는 은혜를 받은 건데. 선하지도 의롭지도 않으면서 충분한 자격이 있는 줄로 착각하고 교만에 빠져 지낸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어 반성문 비슷한 기도를 드렸다.
주님.
어린 시절부터 복음을 알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특별히 올해는 여름 성경학교에 참여하며 아이들과 함께 주의 말씀을 나누고 배울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지금의 저도 저 아이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저도 노는 것만 좋아합니다.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따뜻한 말만 들으려 하고, 제가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만 기억하려 했습니다. 사랑을 나눠주는 존재가 되어야 함을 망각했습니다. 듣기 싫은 말은 외면했습니다. 놀기만 좋아하고, 받기만 좋아하고, 누리기만 좋아했습니다. 그러면서 주의 말씀에 집중하지 않는 아이들을 못마땅해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다른 이들에게 잘 전할 수 있도록 사용해 주세요.
못난 저를 살리신 주님의 사랑을 이번 기회를 통해 더 깊이 깨닫습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겠습니다. 복음의 감격 가운데 거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도록, 필요한 곳으로 불러주세요.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아이들에게 가르쳐주러 와서 내가 더 많이 배우고 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