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 물류 센터 10. 짧지만 달콤한, 휴식시간
10. 작지만 소중한 순간들 : 짧지만 달콤한, 휴식시간
우리는 달린다. 너도나도 웃으며 달린다. 우리는 어디를 향하는 것인가.
그렇다. 우리는 밥 먹으러 간다.
물류센터의 점심시간은 꼭 고등학생 때로 돌아간 것 같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관리자님의 방송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들 작업용 장갑을 벗어던지고 줄을 서러 간다. 사원증을 찍기가 무섭게 식당의 밥을 향해 달린다. 관리자님의 안내는 덤
"오늘은 스파게티라 줄이 길 수도 있어요! 위험하니까 뛰지 마세요!"
관리자님에게는 미안하지만 스파게티라면 더 뛰어야지. 다들 밥을 향해 이렇게 뛰는 게 어이없긴 한데 그래도 뛴다. 이유는 없다. 그냥 밥 먹으러 가는 거잖아.ㅋㅋ 자율배식답게 우리는 식판에 무시무시한 양을 쓸어 담는다. 공짜 점심으로 뽕을 뽑겠다는 일념으로 쓸어 담는 사람도 있다. 나는 나와 친한 사원님들과 옹기종기 모여 앉아 오손도손 수다를 떨며 밥을 먹는다.
"이야~ 오늘 오토백 아주 대박이었다"
"오늘 싱귤 물량 장난 아니었어요~"
"언니, 오늘 집품 어땠는 줄 알아?'
각자 맡은 업무가 다르지만 다 함께 이야기꽃을 피운다. 아저씨도, 동생도, 친구도 다 같이 밥을 먹는다. 정말 딱 고등학생 때 같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다 함께 야외 휴게장으로 간다. 흡연자인 분들이 담배를 피우고 나서 우리는 그 근처에 마련된 피크닉 벤치에 옹기종기 모여 앉는다. 마치 소풍을 나온 것 같은 기분으로. 벤치 주변에는 꽃밭의 꽃들이 사시사철 한가득 피어 있다. 우리는 그곳에서 함께 웃고 떠들며 15분 남짓한 쉬는 시간 동안 이야기 꽃을 피운다. 우리는 그 순간 그림이 된다. 꽃밭 속 벤치에 앉아 나누는 별것 아니지만 소소한 즐거운 이야기들, 이런 순간들 15분이 나를 왕복 3시간, 8시간의 업무시간을 감수하고 여기를 오게 한다. 이 15분이 매일 있다면 나는 얼마든 감수할 수 있다. 좋은 사람들과의 이 잠깐의 수다가, 나를 여기에 오게 하고, 버티게 하고, 일하게 한다.
가끔 벤치에 다른 사람들이 이미 있어서 앉을 수 없을 때도 있다. '결투를 신청해 볼까?'농담에 다들 폭소하며 우리는 건물 입구 쪽 계단으로 향한다. 사람이 잘 안 다니는 계단 구석에 앉아 동료들과 함께 햇살을 맞는다. 햇살 속에서 우리는 이야기를 나눈다. 자리가 좋고 나쁘고는 상관없다. 그냥 우리가 이 순간 여기에 함께 웃으며 있다는 그것이면 충분하다.
원래 팔레트에 앉아있으면 안 된다. 가끔, 다른 조들이 다들 쉬는 날이라 나 홀로 출근일 때, 나는 몰래 관리자님들이 안 보이는 집품 구역 구석 팔레트에 앉아 쉬는 시간 동안 꾸벅꾸벅 존다. 그곳의 공기, 종이 상자 냄새, 몇 시간 만에 앉는 다리의 편안함, 고단함을 푸는 그 잠깐 동안의 쪽잠이 나에게는 너무나 달콤하다.
이런 작지만 소박한 순간순간들이, 사실 나를 살아있게 한다. 삶은 순간들의 모임이니까, 이런 작은 행복들을 모으면 내 삶은 행복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