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날
히가시야마의 음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3일째 겪는 교토의 아침 더위, 이제는 조금 익숙해질 때도 되지 않았나,싶었다. 안일하게 생각한 나를 벌 주는지, 등골로 땀이 주룩주룩 흘렀다. 버스를 타러 내려가는데 눈 앞의 아이스바를 놓칠 수 없는 날씨였다. 과일을 섞은 설탕물을 얼린 아이스크림과 에어컨 바람으로 땀과 열기를 조금 식혔다. 그리고 다시 버스. 이번에는 다시 기온을 지나 남쪽으로 조금 내려갔다.
교토 여행자들 사이에 널리 알려진 교토 3대 비경이란 것이 있다. 먼저 서쪽 산맥과 교토 시내를 배경으로 웅장하게 절벽 위에 걸쳐 있는 기요미즈데라의 무대가 첫번 째요, 기타야마 자락의 거울 연못 위에 수줍게 앉아 있는 로쿠온지의 금각이 두번 째다. 나머지 하나는 지금 가는 곳인 산쥬산겐도(삼십삼간당)의 1001개 관음상. 지금 가는 곳이 바로 산쥬산겐도다.
나머지 두 비경에 비해서 산쥬산겐도는 한국인 여행객에게는 다소 생소한 장소다. 산쥬산겐도는 12세기에 은퇴한 고시라카와 천황의 명으로 창건된 사찰인 렌게오인의 사찰 본당이었다. 창건된지 백년이 채 되지 않은 1249년에 화재로 전소했는데, 충실한 복원 노력으로 1266년에 원래의 모습으로 되살아났다. 현재의 산쥬산겐도는 1266년에 복원된 모습 그대로이며 그 역사성으로 일본의 국보로 지정됐을 뿐만 아니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돼 있다.
산쥬산겐도는 길이가 122미터의 기다란 목조건축물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33칸의 건축물인데, 서울 종묘의 정전(101미터)보다 20여 미터 더 길어 세계에서 가장 긴 목조건축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실제로 느껴진 바로는 종묘 정전이 조금 더 위압감이 있었는데, 아마 정전이 월대 위에 있어서 그런 것 같다. 그래도 나이가 종묘 정전에 비해 약 100년은 더 많은 것에 비해 보존 상태는 탁월한 편이다.
산쥬산겐도의 뒷뜰에서는 에도시대에 매년 활쏘기 대회를 열었다고 한다. 그래서 곳곳에 화살 맞은 구멍이 남아있다. 도대체..
하이라이트는 역시 산쥬산겐도 내부의 1001개의 천수천음 관음상이다. 등신대 비율의 관음입상이 중앙을 기준으로 좌우에 각 500개씩 서있고, 본당 가운데에 거대한 관음좌상이 앉아있다. 맨 앞줄에는 인도의 다양한 신을 조각한 목상이 또 등신대 크기로 서있는데, 그 중에서 좌우 맨 끝의 뇌신상과 풍신상이 가장 유명하다(사진출처 : 엽서)
신발을 벗고 내부로 들어가면 진풍경이 펼쳐진다. 120미터에 달하는 기다란 건물 안은 목재가 채도가 낮고 예전에는 있었을 그림이 벗겨지고 색이 모두 바래서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어둡고 중압감이 느껴진다. 그 와중에 황금빛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1001개의 관음상을 지나는 경험은 가히 환상적이라는 말 외에는 딱히 떠오르는 단어가 없다. 만든 이에 따라서 관음상의 얼굴이 살짝 다른데 불자의 고민에 따라서 33개의 다른 얼굴을 볼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고, 1001개의 얼굴 중에서 자신이 가장 보고 싶어하는 사람의 얼굴이 보인다는 이야기도 있어 나 또한 관음상의 얼굴을 유심히 보며 내부를 걸었다.
뇌신과 풍신
본당 중앙에 위치한 천수천음 관세음보살 좌상
곳곳에 피우는 향으로 본당 내부는 향 냄새로 진동하는데, 이것은 필시 각각 염원의 향일테다. 군데 군데 칠이 벗겨진 관음상의 모습에서 800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그 와중에 가운데의 거대한 천수천음 관음좌상은 나머지 1000개의 관음상을 모두 압도한다. 이렇게나 멋진 장면을 카메라에 담을 수 없다는 사실이 그야말로 좌절스러웠지만, 그렇기에 이런 분위기를 맘껏 즐길 수 있다는 사실에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한 번 지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길이었기에 120미터의 길을 마치 1.2킬로의 산책길처럼 천천히 지나며 이순간을 음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