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가 사는 곳 대구는 비가 자주 오지 않는다. 매년 장마철 물난리에 대한 뉴스를 접할때면 지붕까지 잠길만큼 내리는 비는 어떤 모습인지 도저히 가늠이 되지 않는다. 육아와 일 사이에서 점점 메말라가던 찰나에 내리는 비는 내 마음속 건조경보를 완전히 해제시킨다.
토독 토독 - 빗방울이 창문을 때리면 여유없이 꽉 엉켜 붙었던 시간을 돌로 깨부수 듯 내 일상도 조각 조각 떨어진다. 커피를 마시기 최적의 시간이다. 집에 머무는 것이 좋을까? 창이 넓은 카페로 갈까? 급한일을 처리해야 하면 주로 전자이고 오늘하루 뺑이를 쳐도 괜찮다면 후자를 택한다. 시동을 건다. 엔진소리와 함께 차 안에서 듣는 빗소리는 더욱 운치있어서 가끔은 내리지 않고 주차장에서 10분 - 20분 머물기도 한다.
아, 정말 좋다. 소랑의 My Diary 피아노곡과 함께하면 완벽한 순간이다. 아무리 설명해도 나만 알 것 같은 시간에 머물러본다. 도우너가 깐따삐아를 외치며 우주로 날아가듯 데드라인 없는 다른 차원의 세계로 날아간다. 영원히 머물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 때 쯤 주섬주섬 책과 태블릿을 챙겨서 카페로 들어간다. 평소 좋아하던 쓰리샷 아이스라떼보다 흙냄새 폴폴 올라오는 핸드드립 한 잔이 더 어울리는 날이다. 집 근처에서 가장 가깝고 뷰가 훌륭한 카페, 마고플레인 명당에 자리를 잡고 이런날이 오면 꼭 읽으려고 아껴두었던 책을 꺼낸다. 입으로는 따끈한 커피의 신선함을 마시고 눈으로는 멋진 경치를 마신다.
이토록 완벽한 순간에는 현실의 팍팍한 삶도 한 몫한다. 밤늦게 일을 해야 하는 날에는 종종 빗소리 ASMR을 듣기도한다. 자연스럽게 내리는 빗소리와 물론 차이가 나지만 내가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빗소리도 내 취향대로 고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미 충분하다. 삶의 건조경보를 해제시키는 빗소리로 갈라진 여유를 채우며 마음의 밭을 가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