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 or 비프
기내에서 늘 긴장되는 치킨 or 비프의 순간을 기다리며, 어떻게 치킨 플리즈를 최대한 자연스럽게 말할지 머릿속에서 계속 되뇌고 있었는데 기내식을 바로 주더라고.
처음 겪는 일이라 당황한 나는 또 물었어.
“다른 메뉴는 이미 소진된 건가요? 혹시 무슨 음식인지 알려 주실 수 있나요?”
그러자 승무원은 난감한 표정으로, 하지만 이미 앞열부터 여러 번 대답한 게 분명한 자동응답기 같은 목소리로 답변해 줬어
“그게… 급하게 비행기 편이 변경되는 바람에 음식을 한 종류밖에 못 실어서 단일 메뉴밖에 없어요”
“그러셨군요. 네. 감사합니다.”
난 즉시 받으며 토마토 파스타라고 적힌 라벨을 확인했어. 그래. 토마토 파스타 라면 웬만해선 실패하진 않지. 기내식은 외국 항공기 기본 구성인 빵, 버터, 치즈, 샐러드, 메인 메뉴의 구성이었고, 난 어떻게든 더 맛있게 먹어 보겠다고 딱딱한 빵을 칼로 가르며 버터를 아직 뜨거운 파스타 그릇 밑에 깔았고, 브리인지 까망베르인지 구별이 안 되는 치즈를 슬라이스로 잘랐어.
그리고 그동안 녹은 버터를 빵에 바른 후, 치즈를 깔고, 샐러드를 얹어 즉석 샌드위치를 만들었지.
괜찮아 보였는지 옆 열 사람도 슬쩍 따라 하더라고.
그리고 한 입 베어 먹는데 순간, 설국열차 영화 속 주인공이 바퀴벌레로 만든 프로틴 바를 어떻게든 맛있게 먹으려 하던 한 장면이 오버랩되더라. 언제부터 이렇게 사는 기분이 아니라 생존하는 기분으로 지냈는지 묘한 감정이 느껴지더니 내가 지금 귀국행 비행기가 아닌 세기말 비행기에 탄 기분이 들었어. 그리고 난 어떻게든 잘 지내보려 최대한 노력 중이고 말이야.
생존하려 다들 고생하는구나.
이럴 때 일 수록, 작은 친절이라도 베풀어야 함을 절감하지만 깨끗하게 먹은 기내식 그릇들을 정리하고, 고생하는 승무원 손에 토마토소스가 묻지 않게 냅킨을 펼쳐서 그릇을 덮는 것 이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