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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케 Mar 07. 2022

예비 전남편과 떠난 이혼여행

챕터 4 여독 1

. “그 모든 일이 6개월 안에 겪으신 일이시군요?” “네… 생각해 보니 그렇네요.. 이 모든 게”


내 마음에는 시차가 있어. 먼저 행동을 하고 내 감정이 어떤지 알아채기까지 한참이 걸려.

밤하늘의 별빛이 이미 사라진 별의 흔적일 수 있듯이, 어두운 마음속 희미하게 깜박이는 감정의 빛을 밤마다 그렇게 멍하니 바라보곤 해.


여름휴가 때보다 가볍게 캐리어 하나 들고 한국으로 귀국해 놓고선 네 이름이 천둥도 아닌데 그 세 마디 음절이 울릴 때마다 장대비처럼 눈물을 후드득 흘릴 줄이야. 올해 내 장마는 10월부터 11월까지였나 보다.


존경스러운 사람 유형 중 하나로, 여행 후 돌아오자마자 캐리어를 푸는 사람이 있더라. 난 존경할 만한 사람은 아닌지라 겨우 방까지 캐리어를 끌어다 놓고는 한참을 풀지 않았어. 그 캐리어의 지퍼를 열면 판도라의 상자처럼 온갖 감정이 다 튀어나와 내 세상을 엉망으로 만들 것 같아 그대로 고이 처박아 뒀지.


내 이혼의 결과를 처음으로 부담스럽게 느낀 건 추석 연휴 때였어. 오랜 해외 체류로 인해 우리나라 명절이 어떤 날인지 까마득히 잊어버리곤 호기롭게 추석 전에 돌아와 버렸지 뭐야.


지도 애플리케이션을 켜고 카페를 검색했어, 한국은 많은 가게들이 연휴에도 열더라. 새해나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맥도날드 빼곤 갈 곳 없는 프랑스랑 다르게 참 바지런해.


추석 당일 어떻게든 도망칠 궁리를 잔뜩 세우고 있는데 엄마가 올해는 거리 두기로 직계가족만 모이기로 했다 말했어.

다행이네 정말 다행이지.

적절한 마음의 거리가 필요하던 참이었는데 말이야.


이혼 후 나보다 엄마가 더 곤란해 보이셔. ‘너랑 네 남편이 낳은 애들은 안 봐도 굉장히 독특하고 유별날 거 같아’부터 ‘그 댁 따님같이 멋지고 외국에서 잘 배운 여자가 한국 남자랑 다시 같이 살겠어요? 그냥 혼자 살라고 하세요’까지.


엄마의 교육방식이 딸의 인생에 영향을 미쳤으니 내 결정이 엄마의 잘못인 것처럼 비난의 화살을 쏘기 시작하면 모성애가 엄청난 엄마는 혹여라도 내가 화살 한대라도 스쳐 맞을까 봐 온몸으로 막아. 명절은 그런 날이지.

“내일 추석에는 네 언니네 집 가기로 했다.” 

“잘 됐네. 이사하고 아직 한 번도 못 가봤는데. 가깝고 좋네”

가깝고 좋은 길은 몇 번을 돌아도 얼마 안 걸려 도착했어. 용감한 강아지들이 사는 집이라 벨 대신 카카오톡으로 도착을 알리니 여전히 사람 좋은 인상의, 부들부들해 살짝 무릎이 나온 수면 바지를 입은 형부가 문을 열었고, 그 너머에 같은 부들부들한 옷을 입은 언니가 얼른 들어오라고 손을 휘젓고 있더라. 

“빨리 들어와! 아니 인사는 나중에 해요. 개들 짖어.”


웬일로 손 악수를 하나 했더니 그러면 그렇지 손에 개 간식을 쥐여주며 다급하게 소파에 앉히더라. 사람 마음보다 개의 마음을 먼저 진정시켜야 하는 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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