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 전남편과 떠난 이혼여행

챕터 5 결혼 사유 4

“오늘 너무 추워 보여”     

첫 데이트를 마친 쌀쌀한 가을밤. 우린 파리 3구 마레 지구를 걸었어. 오렌지빛 조명이 너울거리고 주변엔 적당히 와인을 마신 사람들이 넘실거렸지. 파리 사람들의 변덕만큼이나 날씨의 변덕도 잘 못 맞추는 나의 복장은 초봄에 가까웠어. 밥만 먹으면 희한하게 추운 나는 강아지처럼 달달 떨었고, 넌 외투를 벗어 덮어 줬어.     

손을 잡거나 끌어안는 게 아닌, 외투로 너의 체온을 전한 방식이 좋았어. 클래식한 너의 사랑 방식이 좋았어. 성격만큼 클래식한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범적인 스타일인데 유독 눈에 튀는 하늘색 구두끈.     

“근데 그 구두끈은 왜 하늘색이야? 밤에 잘 안 보일까 봐 일부러 튀는 색으로 고른 거야?”     

나보다 7살은 많은 남자가 조금 짓궂게 말했다고 당황하는 눈이라니. 그 예상치 못한 순수함이 좋았어. 이러니까 계속 놀리게 되지.     

“아냐… 원래 살 때부터 이 끈 색이었어. 고무줄처럼 돼있어서 묶을 필요가 없는데 이 색뿐이었거든"    

 

흰 피부에 빨개진 귀라니. 추워서인 걸까 외투를 돌려줘야겠다 싶어 다시 건넨 외투를 넌 집까지 데려다주며 끝까지 입게 했지. 그래서 집에 들어가서 네가 지하철에서 심심할 시간쯤 문자를 보냈어.     

“다음 주에는 같이 쌀국수 어때? 내가 맛있는데 알아.”     

네가 맘에 들었거든. 직업이 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까 설명해 준 거 같았는데 못 알아들었어

디지털 도어가 익숙한 한국인한테 프랑스식 열쇠는 가장 적응하기 힘든 것 중에 하나일 거야.     

호텔처럼 근사하지도 않은 오래된 집이나 가장 최근에 지은 아파트나 할 것 없이 자동으로 잠겨 버리는 통에 가끔 통곡의 문이 된다니까?  한 번은 지인이 부탁한 갓 온 한국 유학생의 집을 구해준 적이 있었는데, 입주하는 날에 부동산업자가 깜박하고 열쇠를 안에 두고 나왔다가 아파트 문이 닫혀버렸어.

파리 1구 생토노레의 오래된 고급 아파트의 유일한 스페어 키는 주인과 함께 500km 떨어진 남프랑스에서 휴가 중이었고, 아파트 안 뜰에는 집에 들어가길 기다리는 가구들, 짐, 그리고 세입자가 기다리고 있었고. 부동산 업자는 당황하며 열쇠공을 불렀어. 그래 그 파리의 열쇠공들 문이 열릴지 확인해 주러 눈 한번 껌뻑이고 문고리 한번 돌려주러 오는 출장비 50€를 받는 사람들 말이야.      

사안이 중대해 보였는지 2명이나 왔지만 둘이 낑낑거린다고 열리진 않더라. 왜냐하면 문고리도 마찬가지로 2인 1조의 이중 잠금이었거든. 심각한 얼굴로 그들의 비장의 무기, 엑스레이 사진을 문 사이에 끼우고 불이 나게 위아래로 움직였지만 문은 꿈쩍하지 않았어.     

결국 문 가운데를 드릴로 뚫어 철사를 끼워 넣어 문고리에 걸어보자며 문에 구멍을 3개나 뚫었지만 역시나 열리지 않았지. 결국 그다음 날 휴가를 망치고 급히 올라온 열쇠에 의해 너덜너덜해진 문은 열렸어.     

프랑스에 온 것을 환영한다며 앞으로 스페어 키는 나에게 맡겨 두라고 갓 파리에 도착한 유학생을 위로했고, 아니다 다를까 몇 달 안가 잠깐 나온 사이에 문이 잠겼다는 전화를 받았어.     

갓 온 초보 유학생들한테는 흔한 실수지. 그런데 그 실수를 11년 차인 내가 할 줄이야. 한국에 여름휴가를 다녀온 지 얼마 안 된 나는 쓰레기를 버리러 내려왔다 그대로 문 밖에 갇히게 됐어.  손에 쥔 핸드폰과 함께. 분홍 수면 바지에 늘어진 티셔츠를 입고 말이야.     

« Oh …. non…. Putain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