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건 뭘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학창 시절은 대학 진학을 위해, 대학 생활은 또 취업을 위해 그때 그때 내 본분에 맞게 한가지 목표만을 위해 살았던 것 같아요. 그 너머엔 뭐가 있을까, 생각할 겨를 없이 말이죠. 만약 내가 선택한 길이 잘못 든 길이면 어쩌지 라는 생각도 하지 못했어요. 길은 오직 하나뿐이라고 믿었고 그러하기에 온갖 지름길을 모두 택해 그 길 끝에 도달하려고만 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다른 친구들이 한국 대학에서 새학기를 시작할때 호주로 연수를 갔고 연수를 마치자마자 호주에서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대학 때는 계절 학기는 꼬박꼬박 들어가며 학점을 채웠고,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미국 금융자격증 취득에, 자격증 취득 후엔 인턴쉽까지 중간중간 쉴틈 없이 취업만을 위해 달렸던 것 같아요. 그 순간순간 제가 느낄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을 모두 취업 후로 미루며 인생을 살았습니다.
다행인건 고등학교 내내 진로 고민 없이 성적에 맞춰 좋은 대학의 내 점수로 갈 수 있는 최선의 학과에 진학하는 것만이 목표였다면, 호주에서 연수를 하며 우연히 대학교 1학년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고 그때 하고 싶은 공부가 생겼다는 거였어요. 그러하기에 호주에서 대학 생활은 무엇보다 즐거웠죠. 좋아하는 공부를 했기에 학점도 좋았습니다. 지금도 어딜 가면 호주에서의 유학은 제 인생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이래 저래 시간을 많이 절약해 다른 친구들보다 졸업이 조금 빨랐고 취업도 조금 빨랐던 것 같아요. 그게 끝인 줄 알았는데 회사 생활은 새로운 인생의 시작과 같았어요. 처음엔 취업한 사실 만으로 목표에 도달했다 싶어 너무 기뻤죠. 신났습니다.
인생 처음의 조직 생활과 다소 부당하게 느껴지는 회사 규율, 직책이 높아 질수록 점점 잃어가는 자신감... 8여년을 회사 생활을 하며 회사 생활의 여러가지가 나와는 맞지 않다고 느껴지는 나날들이었습니다. 회사 생활에 점점 지쳐가는 원인이 회사에만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어느 순간 나 자신에게로 화살이 돌려 다가왔어요. 아무리 싸워도 회사는 내가 바꿀 수 없고 이런 내가 이상한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들이 잦았습니다. 해마다 오는 고비를 8년까지 견딜 수 있었던 건 지금까지 내가 노력했던 것을 한번에 잃는다는 생각때문이었어요. 용기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조직 생활의 시스템에 나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든 시스템 안에서 내 인생을 살아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리곤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돈을 적게 벌어도 좋으니 내 마음이 평온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울까요. 지금까지 해오던 일은 공부랑 회사일 뿐, 이 두가지를 제외하고는 제가 뭘 잘 할 수 있고 뭘 좋아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어요. 마음이 너무 조급해졌습니다. 보통 이직을 해서 회사를 그만두던가 다음일을 정해 놓고 회사를 그만두지만 전 그렇지 못했으니까요. 천천히 장기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봐야지 싶었지만, 뭐부터 시작하면 좋을지 막막했던 것 같아요. 이래서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걸 경험하며 진로를 찾는게 중요한 거구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평생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이 인생을 살면서 얼마나 중요한건지 이제는 알기에 조급해하지 말자 싶었습니다. 회사다니면서 시간이 없어 못해봤던 걸 해봐야지 싶었어요. 제가 하는 어느 무언가가 저의 앞날에 어떠한 식으로 도움이 될지는 몰랐지만 다 해보자 싶었죠.
제일 먼저 그림을 배우러 다녔던 것 같아요. 경제학을 전공했고 하는 일도 숫자를 분석하는 일이 많았어서 다소 딱딱한 분야이기에 제 사고도 같이 틀에 갇혀 버리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습니다. 다소 말랑말랑한 느낌이 드는 걸 배워보고 싶었어요. 처음엔 수채화를 시작으로 민화를 배우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정말 손이 많인 가는 그림이라 내 시간과 공들인 그림이 몇달에 걸쳐 완성이 되었을 때의 그 보람은 시험을 봐서 백점을 맞는 것과는 또 다른, 제가 지금까지 겪어 보지 못했던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고등학교 체육시간 이후로는 운동이란 걸 해 본적이 없는데 운동을 해야겠다 싶었어요. 필라테스를 시작했습니다. 회사 생활로 자세가 많이 안좋아진 상태이기도 했고, 운동이란게 몸의 단련을 통해 마음에도 어느정도 근육이 붙을 거라 생각이 들었거든요. 마음이 많이 혼란한 상태였기에 저의 공백기가 길어지더라도 마음이 지치거나 우울해지지 않기를 바랬어요.
그러다 코로나가 터지기 바로 전 2019년 9월 중순 런던에서 한 달 동안 지내보자 결심했던 것 같아요. 대학교 때 한창 박지성 선수가 맨유에서 뛸 때라 종종 펍에 앉아 축구를 자주 봤었고 그 후에도 A매치나 프리미어리그를 챙겨 보곤 했었는데, 런던에서 프리미어리그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매 경기 스태디움에선 보지는 못하더라도 시간대가 맞으니 현지 분위기를 느끼며 펍에서 많이 보고 와야지 싶었습니다. 스태디움에서 처음 본 프리미어리그 경기가 4:0으로 토트넘이 그 중 2골을 손흥민 선수가 넣어 이겼는데, 내가 운이 좋게 이런 재밌는 경기를 현장에서 보게 되다니 무척 신이 났던 것 같아요. 그렇게 런던에서 에든버러까지 여기저기 숙소를 옮기며 한 달동안 느긋하게 여행을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돌아오자마자 코로나가 터졌습니다.
퇴사를 하자마자 차를 한대 뽑았습니다. 사람 많은 지하철을 타고 회사와 집의 끝없는 반복이었는데 제 삶의 반경을 좀 넓히고 싶었거든요. 다른 일을 시작하게 된다면 그리고 회사를 다닐 게 아니라면 서울과 경기도를 벗어나도 괜찮겠다 싶었어요. 국내 여기저기 많이 다녔습니다. 참 신기하더라구요. 한국엔 참 아름답고 고요한 곳이 너무도 많고 서울과 경기도만 벗어나도 사람이 서울의 반의 반의 반으로 준다는 것이.
이래저래 시간을 보내도 회사를 가지 않으니 시간이 많이 남았습니다. 차를 끌고 서울과 경기도 근교의 카페와 소품 편집샵을 많이 다녔어요. 워낙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았어서인지 저와 취향이 맞는 상업공간의 인테리어 구경을 하는게 꽤나 힐링이었습니다.
그렇게 일년 넘게 시간을 보냈을까요. 시골에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항상 시골에서의 평온하고 고요한 일상을 꿈꾸기도 했고 제 생활패턴을 고려하면 서울이나 경기도에 있는 편의시설을 많이 이용하지 않는 편이어서 집이 수도권이 아닌 것에 대한 불편함은 전혀 없겠다 싶었습니다. 저를 모르는 사람들은 모두 신기해 하더라구요. 친인척 하나 없는 곳에 터를 잡고 사는 것에 대해. 호주 유학시절 때부터였을까요. 전 단 한번도 그게 이상한거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거든요. 친구는 그 지역에서 생활하면서 사귀면 되는 거라고 생각했어서인지 전혀 외롭거나 심심할 거라는 생각은 안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저는 2년 전부터 이 곳 시골에 홀로 내려와 생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