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함께 위러브 찬양부흥집회에 다녀왔다.
이번 주는 성탄절(크리스마스), 그리고 위러브 집회가 있어 남편과 함께 일주일에 두 번 이상 교회를 같이 가게 되었다.
할렐루야!
모태신앙이라고 하지만 중, 고등학교 시절 내 안의 신앙 공백이 있던 나로서는 남편의 마음이 조금은, 아니 많이 이해가 간다.
하나님을 영접하지 못한, 모르는 사람들의 눈에 어떻게 보일까 하는 그 마음이 너무나 잘 이해가 가기에 남편이 어제 마지막 기도가 끝나기 전에 밖에서 기다린다고 했을 때 나는 그를 보내줄 수밖에 없었다.
위러브 찬양집회는 세상 사람의 눈으로 볼 때 다음과 같은 형식으로 진행된다.
찬양(노래)
약간의 설교말씀
찬양(노래)
약간의 설교말씀
그리고 클라이맥스인 통성기도
대학교 합격등록을 하고 내가 갔던 미국 한인교회 수련회가 생각이 난다. 그 당시 나와 동갑이었던 남자 신입생은 이렇게 말을 하곤 했다.
"왜 손을 들고 찬양해요?"
"아멘은 언제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내 기억에 따르면 그 친구는 일본 출신의 한국인이었고, 천주교를 믿다가 미국으로 유학을 오면서 교회에 처음 등록했다고 했다.
그리고 대학생 때 선데이 크리스천으로 그나마 신앙을 이어오던 나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여전히 찾지 못한 채 예배만 드리고 남은 주일은 신나게 놀았다.
이제 내가 하나님 앞에 다시 서게 되었다.
하나님은 내게 어떤 은사를 주셨을까 생각해 보았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가르침의 은사인가?
아니면 환상을 보게 하시는 것인가?
나는 10여 년 전 갔던 미국 수련회에서 하나님을 내 인생 처음으로 영접한 것이라고 믿는다.
수련회에서 찬양하고 기도하는데 당시에 병상에 누워계시던 할아버지가 생각이 났다. 하나님은 왜 우리 가족, 특히 장로님이신 우리 할아버지께 이런 고통을 주실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주셨다. 하나님이 우리를 너무 사랑해서 독생자 예수님을 주셨고, 우리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그 죄를 대속하기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처럼.
침대에 누워만 계시는 나약해지고 힘없는 할아버지를 보며 예수님이 떠올랐다.
할아버지는 그 후 3년 정도 더 침대에서 일어나시지 못하고 끝내 그리운 예루살렘, 천국, 본향으로 가셨다.
어제 위러브 집회에서 내가 본 환상은 이것이다.
내가 혼자라고 생각했던 그 시간들,
1. 노르웨이 기숙사 키를 받지 못해 교외의 잠금장치도 제대로 없는 임시 숙소에 머물게 된 그날 밤
2. 밥 먹고 독서실을 가거나 독서실에서 학원을 왔다 갔다 홀로 걷던 노량진 골목의 오후
3. 진짜 좋을 사람이라고 믿었지만 늘 나는 외롭게 했던, 홀로 두었던 나의 오래전 남자 친구
4. 그리고 만난 내 평생의 짝꿍, 남편 너무 행복한 요즘
하지만 내 남편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
이 세상에 절대적인 신이 존재한다고는 믿을 법도 한데, 어째 그마저도 시큰둥한 눈치다.
그리고 이 남편은 마지막 기도를 앞두고 예배당을 나가버렸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그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세요. 지금 생각나는 바로 그 사람, 가족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고 직장 동료일 수도 있는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세요.
이 말은 결국 나 혼자 듣고 나 혼자 남편을 위해 통성으로 기도했다.
주여!
설교 말씀을 듣다 보면 가끔 목회자 어머니께서 예배당에서, 교회에서 울면서 기도하셨다는 그 말씀을 들은 적이 있다.
어제 내가 출석하는 그 교회에서, 아직 태어나지 않은 우리의 아이와 그 아이의 아이, 후손을 위해서 울며 기도하는 내 모습이 꼭 믿음의 어머니 같았다.
하나님, 저희 아이가 이 교회 안에서 자라게 해 주세요. 찬양과 예배를 사모하는 아이가 되게 해 주세요.
저희 가정을 믿음의 가정으로 세워주세요.
우리 가정을 위해 기도하는데 또르륵 눈물이 흘렀다.
남편은 이를 보며 어떻게 생각했을까?
본인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 낯설고 기이한 풍경,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풍경을 보며 불편하고 당장 나가고만 싶었을까?
내 뒤에서 방언이 들려왔다.
저기 멀리서 흐느낌이 들려왔다.
신앙이 없는 사람의 눈엔 이 광경이 마치 이단, 사이비종교처럼 보였을까?
그에 비해 나는 비교적 건조하게 조용히 눈물만 또르륵 흘렸다. 남편이 내가 믿는 하나님을 오해하지 않기를.
이 세상의 주권자 되시고 우리를 위해 죽기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을 오해하지 않기를.
그분의 사랑을, 부활을 체험하고 예배의 자리에 나아오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